정부가 내년 2월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에서 임무교대하는 청해부대의 작전범위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호르무즈 해협에 파병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18일 알려졌다. 미국이 호르무즈 파병을 계속 요구해온 가운데 한미동맹을 고려한 움직임인데, 실제 파병으로 이어질 경우 국제 분쟁지역에서 우리 함정과 병력이 활동하게 되는 셈이어서 적잖은 논란이 예상된다.
현재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에선 청해부대 30진 강감찬함(4400t급)이 해적 퇴치 작전을 펼치고 있다. 청해부대는 6개월 단위로 임무를 교대하기 때문에 내년 2월엔 31진 왕건함(4400t급)과 교체된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청해부대의 작전범위를 호르무즈 해협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아덴만에서 호르무즈 해협까지는 직선거리로 1800㎞여서 왕건함으로 늦어도 사흘이면 닿을 수 있다.
정부는 이를 위해 내년 초 바레인에 있는 연합지휘통제부에 해군 장교를 파견할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주도로 지난달 창설된 이곳은 호르무즈 해협 호위를 위한 국제해양안보구상(IMSC)을 실행하는 작전사령부에 해당한다. 우리의 장교 파견은 호르무즈 해협의 전반적인 작전 상황을 파악하고, 청해부대의 역할과 무장 수요를 가늠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왕건함이 호르무즈 해협에 파견되더라도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 연합체제에 참여할 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미국은 한국의 참여를 기대하고 있으나, 정부 안에선 이란과의 관계를 고려해 독립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만만찮은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요구와 독자적인 선택 사이에서 팽팽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미국의 국제해양안보구상에는 현재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사우디아라비아 등 7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정부는 독자적인 파병 방침을 정한 일본의 움직임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본은 해상자위대 구축함과 초계기를 ‘조사·연구’ 목적으로 호르무즈 해협에 파견한다는 방침을 밝혔고, 조만간 각의를 열어 확정할 계획이다. 일본은 안전을 위해 호르무즈 해협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오만만의 북서부를 작전범위에서 제외하고, 이 해역에서 일본 선박이 공격을 받더라도 다른 나라 함정에 도움을 요청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청해부대를 호르무즈 해협에 파견할 경우 국회 동의 여부가 쟁점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청해부대의 작전범위를 ‘우리 국민의 보호를 위한 활동 시에는 지시되는 해역’까지로 정했기 때문에 새로운 동의가 필요없다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호르무즈 파병은 해적 퇴치라는 청해부대의 애초 임무와 달라 논란의 여지가 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청해부대가 국회의 동의 없이도 호르무즈 해협에 갈 수 있다는 해석은 초법적 발상”이라고 지적한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도 “정부가 청해부대의 작전지역을 변경하려면 별도의 국회 동의 절차를 밟아 파병의 타당성과 위헌성을 검증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청해부대가 지금 수준에서 호르무즈 해협에 투입될 경우 안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청해부대는 해적 퇴치 임무에 맞춰 병력과 장비를 편제했기 때문에 잠수함 등 첨단 무력을 보유한 이란을 상대로 임무를 수행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이를 감안해 청해부대의 병력과 장비를 강화할 경우 새로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청해부대 파병 동의안은 ‘4000t급 이상 구축함 1척과 링스헬기 1대, 320명 이내의 병력’으로 규모를 제한하고 있다.
유강문 선임기자
m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