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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서독 지도자들 계주하듯 역사 구간 맡아 통독으로 달렸다”

등록 2020-01-15 19:01수정 2020-01-16 02:42

[짬] 국민의 정부 비서관 출신 이인석씨

이인석 전 인천발전연구원장. 강성만 선임기자
이인석 전 인천발전연구원장. 강성만 선임기자

이인석 전 인천발전연구원장은 1970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에 들어가 17년 가까이 독일에서 근무했다. 통독 전인 1974~77년에는 서베를린에서 독일 분단 현장을 체험했고 1990년부터 4년간은 동베를린에서 통독 전후 과정을 지켜봤다.

그는 김대중 정부 청와대에서 98년부터 2년6개월가량 산업과학기술과 건설교통 담당 비서관도 지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93년 베를린에서 통독 과정을 브리핑하며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그가 최근 <독일은 어떻게 통일되고, 한국은 왜 분단이 지속되는가>(길)라는 책을 냈다. 2015년 독일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 도서관 등을 찾아 배낭 2개 분량의 자료를 구해 꼬박 3년 집필에 몰두했단다. 그는 “한국 사람의 눈으로 독일 분단 극복 과정을 보고, 독일 사람의 눈으로 한국 분단을 살피고 싶었다”고 했다. 14일 서울 광화문역 근처 카페에서 저자를 만났다.

이인석 전 원장이 최근 펴낸 책 표지
이인석 전 원장이 최근 펴낸 책 표지

책은 1945년 패전 뒤 미국과 소련 등 전승국에 의해 영토가 분할된 독일이 통독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치밀하게 짚었다. 저자에 따르면 서독 지도자들은 400m 계주 주자처럼 역사의 구간을 맡아 주권 회복과 분단 극복의 길로 갔다. 대통령이 되면 창업하듯 새로 대북 정책을 짜는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서독 초대 총리 콘라트 아데나워는 서방과의 결속을 다져 미국 등 동맹 신뢰를 얻었고 사민당 빌리 브란트 총리는 독일 통일의 열쇠는 소련이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 소련과 불가침협정을 맺고 폴란드를 찾아 무릎도 꿇었죠. 그 뒤로 헬무트 슈미트 총리는 동서독 공존 정책을, 헬무트 콜 총리는 독일의 유럽화 정책을 폅니다. 이게 다 통독의 토대가 됐죠. 독일 통일은 전승국으로부터의 해방이기도 하죠.”

그는 책 후반부에서 자신이 정의한 19세기 조선의 문제 즉 ‘내부 분열과 외부 종속’에 이르는 과정을 짚고 분단 극복의 길도 모색했다.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하고 어떤 일이 있었길래 30년 만에 천 년 통일 국가가 무너졌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책을 쓰면서 내부 분열과 외부 종속이라는 두개의 큰 흐름이 식민으로 이어졌다는 결론에 이르렀죠. 19세기 조선은 너무 약했어요. 이게 동아시아 안정에 위해 요인이었죠. 러시아, 청국, 일본이 다 들어왔잖아요. 반면 독일은 너무 강해 유럽의 위해 요인이었죠.”

그가 보기에 통독 과정은 우리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통독이 주는 가장 큰 교훈은? 그는 먼저 ‘현실 인정’을 말했다. “서독 헌법인 기본법 전문을 보면 헌법은 독일 국민 전체에 해당하지만, 연방에 참여하지 않은 독일 국민(동독인)은 가입 이후 기본법이 적용한다고 했어요. 헌법 적용 대상을 서독인으로 한정해 동독을 사실상 인정했죠. 우리는 헌법 3조 영토 규정에서 한반도 전체가 우리 영토라고 했어요. 이 때문에 대법원도 북한을 우리 땅을 무단 점유한 불법 단체로 보고 있죠.”

그는 서독이 동독 주권을 인정해 먼저 2개 국가로 분화한 뒤 다시 결합하는 경로를 밟았음을 강조했다. “브란트 총리 시절인 72년 동·서독 기본조약을 체결해 처음으로 동독을 인정했죠. 그 뒤로 수십 개의 파생 협정과 협약을 체결했고 74년에는 본과 베를린에 상주 대표부도 서로 설치했죠. 이게 통일 인프라였어요. 1987년 동독 최고지도자로는 처음으로 에리히 호네커 총서기가 서독 땅을 밟았을 때도 동독 국기가 오르고 동독 국가가 연주됐어요. 콜 총리가 동독을 주권 국가로 대우한 거죠. 사실 서독의 첫 통일방안은 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에야 나왔어요. 분단 44년 만에요. 그 전에는 통일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그는 북한을 주권 국가로 인정하는 게 분단 시대를 종결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봤다. “분단의 끝이자 통일의 출발점이죠. 우리는 북한을 주권국으로 보지 않고 체제만 인정하고 있어요. 지금 뉴욕에 인공기와 태극기가 함께 휘날리고 있잖아요. 평양과 서울에도 태극기와 인공기가 함께 휘날려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91년 남북기본합의서(‘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주목했다. “화해와 교류·협력, 불가침 등 한반도 평화 체제의 골간이 되는 사항들이 담겨 있어요. 그 뒤 나온 남북 간 합의는 이 문건의 변형에 불과해요. 남과 북이 이 합의 내용을 실천하는 게 중요해요. 말은 행동입니다. 현 정부도 이 합의서를 적극 알릴 필요가 있어요. 문재인 정부는 ‘평화 없는 분단 70년’을 끝내자는 데 대북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긍정적으로 봅니다. 하지만 선언만 있고 이행계획은 부족해요. 선언만 반복할 때 정책에 대한 국민 신뢰는 떨어집니다. 하나라도 바늘 구멍 내듯 틈바구니를 찾아 들어가는 그런 고민이 필요합니다.”

1970~90년대 코트라 파견 독일 근무
서베를린-동베를린 통일 전후 ‘체험’
93년 디제이에게 ‘통독 과정’ 브리핑
“사회통합 강조하자 녹음하며 경청”

‘한국은 왜 분단이 지속되는가’ 출간
“독일 분단극복 과정 통해 우리 보고파
통독의 가장 큰 교훈은 ‘현실 인정’”

통독에서 얻는 또 다른 교훈은 한반도 평화와 동아시아 안정이 양립하는 통일이어야 한다는 점이라고 했다. “서독은 미국 동맹이었지만, 소련을 도와 75년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창설에 앞장섰어요. 유럽의 평화 없이 통독은 생각할 수 없었거든요. 우리도 통일을 위해선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지역 안정을 다 같이 보장하는 다자 안보 체제가 필요해요. 한반도가 19세기처럼 너무 약하면 동아시아가 혼란에 빠질 수 있어요.”

그가 통독 과정을 보며 가장 흥미를 느꼈던 점은 서독 정부가 천만 실향민의 반발을 무릅쓰고 패전 뒤 폴란드로 넘어간 영토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독일은 교회가 영토 포기 물꼬를 터주었어요. 서독 개신교협의회에서 65년에 폴란드와의 국경을 인정하자고 했거든요. 그 뒤로 통독의 최대 장애인 국경 문제가 풀리기 시작했죠. 귄터 그라스와 같은 지식인들도 나섰고요.”

그는 한반도 통일이 19세기 조선의 문제인 ‘내부 분열과 외부 종속’을 해결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도 했다. “한국 분단은 이중 구조입니다. 국내 정치적으로는 시계가 48년 4월 평양에서 열린 전조선 사회단체·정당 대표자 연석회의의 실패에서 멈춰 있어요. 그때의 분열이 분단이 됐죠. 국제적으로는 53년 7월 휴전 협정 시계에서 멈췄어요. 내부 문제를 보면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전에는 분열이 결합보다 우세했어요. 지금은 결합이 분열을 누르고 있어요. 언젠가 48년 4월 연석회의와 같은 상황이 옵니다. 그때 누가 결정을 할 것인지, 숙고해야죠. 지금부터 논의해야 합니다.”

그는 버락 오바마 등 미국 역대 정부가 북한 붕괴만을 기다리다 결국 자국 안보가 북에 위협받는 상황을 초래했다고 진단했다. 현 미국 대통령의 대북 정책은 어떻게 보는지 궁금했다. “오바마까지 미국 행정부는 외교라는 마스크를 쓰고 북한 붕괴를 손꼽아 기다렸어요. 트럼프도 2017년엔 붕괴론을 믿었던 것 같아요. 이듬해 돌변해 정치협상에 나섰죠. 이전 행정부와는 다른 행보입니다. 북은 지금 미국에 외교(관계 정상화)와 안보(불가침), 경제 지원의 동시 해결을 요구하고 있어요. 이 가운데 경제 지원이 가장 난제이죠. 트럼프도 지원하고 싶겠지만, 미 의회 승인이 떨어지기 어려울 겁니다. 베트남이나 미얀마처럼 미국이 앞장서야 다른 서방 기업들도 안심하고 북한에 뛰어들 텐데요.”

어떤 전문가보다 통일에 해박한 식견을 갖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선 승리 뒤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98년 1월 초에 저한테 코트라에 사표 쓰고 들어오라고 하더군요. 그때 저는 프랑크푸르트 무역관장으로 있었죠.” 그는 김 전 대통령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회고했다. “93년 2월 김영삼 대통령 취임식이 있던 무렵에 김대중 전 대통령 요청으로 베를린의 한 호텔에서 만나 제가 3시간 가량 브리핑을 했어요. 김 대통령이 카세트테이프로 제 말을 녹음했죠. 통일은 사회 통합의 출발점이며 사회 통합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어요. 김 대통령은 통일에서 관념과 추상의 옷을 벗기면 무엇이 남는지, 그 실체를 독일에서 만져보고 싶어했죠. 김 대통령이 통독 과정을 알아가면서 당장 통일은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분단에서 바로 통일로 가는 길은 없다고요. 경제를 잘 알지 못하는 저를 청와대로 부른 것도 독일 경험을 전달해달라는 바람에서였죠. 김 대통령은 학자들과 이야기하면 머리가 아프다고 했어요.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라고요. 구체적인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했어요.”

인터뷰 말미에 이런 말도 했다. “정치와 역사, 국민과 정치 그리고 국익과 동맹은 가는 길이 달라요. 언젠가 정치가 역사의 피고가 될 수 있어요. 역사를 가로막고 사유화한다면요. 정치가는 역사에 책임지려는 자세가 필요해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콜 총리는 폴란드를 방문하고 있었어요.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거든요. 정치인은 자신이 역사의 어느 구간에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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