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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북한은 주체사상의 나라…‘역지사지’ 눈으로 봐야 보인다”

등록 2020-02-17 19:30수정 2020-03-31 14:28

[박한식의 평화에 미치다]
‘이해하는 것과 동의하는 것’ 별개
“북의 행동 동기 알아야 이해 가능”
동기 들여다볼수록 ‘주체사상’ 또렷
“모든 삶의 규율·사회관습에 녹아”

‘국방에서 자위’ 원칙…핵포기 ‘불가’
‘경제에서 자립’ 원칙…개방 ‘경계’
‘정치에서 자주’ 원칙…통일정책 ‘고수’

‘창시자는 김일성·구현자는 김정일’
82년 김정일 ‘주체사상에 대하여’ 발표
85년 ‘위대한 주체사상 총서’ 10권으로
주체과학원 300여 학자와 토론·발표
리지수·박승덕·정기풍 등 기억 남아

황장엽과 90년부터 망명 뒤에도 ‘교유’
“평양과 서울에서 완전히 다른 인물”
‘주체사상 이론화·창조설’ 사실과 달라
‘김일성 회고록 위작’ 주장도 동의 못해
길을 찾아서-24회 주체사상 (1)
길을 찾아서-24회 주체사상 (1)

박한식(왼쪽) 교수는 북한의 주체사상 이론가였던 황장엽(오른쪽) 전 노동당 비서와 1990년부터 97년 남한 망명 이후까지 오랫동안 교유했다. 사진은 1993년 방북 때 평양 주체과학원의 원장 접견실에서 황장엽 원장과 함께한 모습이다. 사진 박한식 교수 제공
박한식(왼쪽) 교수는 북한의 주체사상 이론가였던 황장엽(오른쪽) 전 노동당 비서와 1990년부터 97년 남한 망명 이후까지 오랫동안 교유했다. 사진은 1993년 방북 때 평양 주체과학원의 원장 접견실에서 황장엽 원장과 함께한 모습이다. 사진 박한식 교수 제공

많은 사람들이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그들의 온갖 요구와 협박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자 그들은 북한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온갖 종류의 비난을 퍼부어 대고 각종 제재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북한은 그처럼 혹독한 대가를 치르면서도 핵무기를 포기하려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왜 그럴까?

북한이 경제적 난관을 극복하려면 자본주의적 개혁과 개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북한은 그들이 동원한 온갖 종류의 화려한 설득의 논리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적 개혁과 개방에 나서질 않는다. 그러자 그들은 북한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북한 인민의 경제적 복지를 도외시하는 북한 정권을 강력하게 규탄한다. 그러나 북한은 그들의 설득과 규탄에도 자본주의적 개혁과 개방에 나서려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왜 그럴까?

나는 그 사람들처럼 자신에게 친숙한 이론과 개념과 언어로 북한을 연구하거나 재단하는 행위를 ‘인식론적 제국주의’(epistemic imperialism)라고 부른다. 아울러 인식론적 제국주의를 통해서는 북한을 영원히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북한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인식론적 제국주의를 폐기하고 북한이 고수하는 생각 그 자체에 접근해야만 할 것이다. 나는 북한의 시각에서 북한의 행위를 이해하려는 태도를 ‘역지사지’(empathy)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역지사지를 역설하는 나를 친북주의자 내지 종북주의자 등으로 지칭하면서 비난한다. 하지만 우리는 북한을 이해하는 것이 곧 북한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그동안 북한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않은 상태에서 입안된 모든 대북정책은 결국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실패에 따른 부담과 비용은 고스란히 우리들 자신의 몫 아니었던가?

역지사지의 시각에서 북한을 바라보면, 북한의 행동을 지배하는 동기를 서서히 가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동기에 주목하면 할수록 ‘주체사상’이 점차 선명하게 부각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세상의 온갖 비난에도 불구하고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 까닭은 ‘국방에서 자위’라는 주체사상의 지도적 원칙 때문이다. 북한이 경제적 어려움에도 자본주의적 개혁과 개방을 꺼리는 까닭 역시 주체사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때 중국이 북한에 경제특구를 건설해서 북한 경제를 부양하려는 방안이 논의된 적이 있다. 북한에 경제특구를 건설해서 북-중 간의 경제적 교류가 활성화된다면 북한의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만난 북한의 지도층 인사들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북한이 중국의 경제적 식민지로 전락할 가능성을 크게 우려했다. ‘경제에서 자립’이라는 주체사상의 지도적 원칙을 견지했기 때문이었다.

북한의 통일정책에도 주체사상이 녹아 있다. 6·15 남북공동선언 북측 발표문 제1조는 다음과 같다. “북과 남은 나라의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이 문장은 ‘정치에서 자주’라는 주체사상의 지도적 원칙을 전형적으로 서술한 것이다.

위에서 예시한 몇몇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주체사상은 북한의 삶의 양식을 전반적으로 규율하는 살아 있는 이념이다. 북한은 한마디로 ‘주체사상의 나라’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주체사상을 모르면 북한을 이해할 수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물론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다. 그러나 사회주의에 국한된 시각으로 북한에 접근하면 북한의 실상을 정확하게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사실 역시 거듭 강조하고 싶다.

그런데도 주체사상을 연구하는 학자들 중에는 주체사상의 생명이 냉전 종식과 함께 종식되었다는 견해를 피력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북한에서 주체사상에 대한 논의가 예전처럼 활발하게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주체사상이 북한 사회의 관습에 온전히 녹아 들어간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우리는 추석이나 설날이 되면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간다. 추석이나 설날 아침에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다. 그런데 귀성이나 제사는 유교에서 중시하는 효사상과 조상숭배사상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귀성길에 오르거나 제사를 지내는 누구도 유교 경전에 수록된 효사상과 조상숭배사상을 공부하고서 그런 행위를 취하지는 않는다. 귀성과 제사가 우리 사회에서 관습으로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북한에서 주체사상이 예전처럼 활발하게 논의되지 않는 까닭은 주체사상의 생명이 종식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주체사상이 북한 사회의 관습으로 확고하게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주체사상이란 김일성의 생애의 의미를 후대의 연구자가 개념적으로 정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개념화 작업은 김정일의 주도로 이뤄졌다. 따라서 주체사상의 창시자는 김일성이고, 주체사상의 구현자는 김정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황장엽이 주체사상을 이론적으로 구성했고, 심지어 황장엽이 주체사상의 새로운 버전을 창조했다는 견해가 유통된다. 나는 북한에서 약 8년 동안 황장엽과 만나서 주로 주체사상을 주제로 토론을 했다. 주지하듯 황장엽은 1997년에 서울에 왔다. 나는 서울에서도 황장엽과 몇차례 만나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또한 황장엽이 한국에서 출판한 여러 책의 내용과 강연 내용도 대부분 섭렵했다. 이 시점에서 황장엽과의 만남을 회고하며, 결론적인 얘기를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황장엽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내가 북한에서 만난 황장엽은 서울에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북한에서 만난 황장엽과 서울에서 만난 황장엽은 완전히 다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1930년 6월30일 김일성이 중국 지린성 창춘 카륜회의에서 발표한 ‘조선혁명의 진로’ 연설을 통해 주체사상을 창시했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9년 6월 열린 카륜회의 89돌 기념행사 모습. 연합뉴스
북한은 ‘1930년 6월30일 김일성이 중국 지린성 창춘 카륜회의에서 발표한 ‘조선혁명의 진로’ 연설을 통해 주체사상을 창시했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9년 6월 열린 카륜회의 89돌 기념행사 모습. 연합뉴스

김일성의 생애의 의미는 그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총 8권)에 정리되어 있다. 따라서 <세기와 더불어>에 주체사상이 녹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황장엽은 김일성이 자신의 회고록을 직접 집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세기와 더불어>가 위작이라고 주장했다. 황장엽의 논리에 따른다면 현재 <한겨레>에 연재하고 있는 나의 회고록 ‘평화에 미치다’도 위작이란 말인가? 이 회고록도 내가 직접 쓰는 것이 아니라 집필자가 대필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회고록은 주로 집필자가 대필하는 것이 상식이다. 미국에도 회고록을 전문으로 대필하는 집필자가 수없이 많다. <세기와 더불어>가 위작이라는 황장엽의 주장은 내가 북한에서 만난 황장엽의 주장이 아니라 서울에서 만난 황장엽의 주장일 뿐이었다.

김일성의 회고록 전체를 관철하는 문제의식은 조선의 망국과 독립국가 건설이다. 김일성은 조선 망국의 궁극적 원인을 당쟁과 사대주의로 파악했다. 그런데 김일성은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 역시 당쟁과 사대주의 유산을 탈각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통찰했다. 김일성은 그런 실상을 자신의 아버지 말씀을 빌려서 이렇게 회고했다. “아버지는 이조 시기부터 내려오는 당파싸움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당쟁 때문에 나라가 망했는데 독립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사분오열되어 파쟁을 일삼고 있으니 야단이라고 개탄하였다. 파쟁을 근절하기 전에는 나라의 독립도 이룩할 수 없고 문명개화도 이룩할 수 없다. 파쟁은 국력을 쇠잔케 하는 근원이고 외세를 끌어들이는 매개자이다. 외세가 들어오면 나라가 망하는 법이다. 너희들 대에는 반드시 파쟁을 뿌리째 뽑아버리고 단결을 이룩해야 하고 민중을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하였다.”(<세기와 더불어> 1권)

김일성은 항일운동을 전개하는 와중에 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독립국가를 건설할 능력과 자격을 갖춘 인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런 인재는 일차적으로 조선의 당쟁과 사대주의의 유산을 완전히 탈각한 존재여야만 했다. 그래서 독립국가 건설 과제를 주체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존재여야만 했다. 그러나 김일성은 자신의 주변에서 그런 존재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자 김일성은 독립국가 건설을 주체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는 착상을 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주체사상을 착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일성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해방 후) “쏘미 양군의 주둔으로 하여 우리나라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장으로 될 수 있었으며 그 배경 밑에서 우리의 민족 역량은 좌익과 우익으로, 애국과 매국으로 분열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었습니다. 당쟁이 성행하고 당파와 외세가 결탁하면 그 종착점은 망국으로 되는 법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민족의 자주권을 수호하고 새 조국 건설을 다그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혁명의 주체적 역량을 백방으로 강화해야 했습니다. 우리 혁명의 주체는 우리 인민 자신을 말합니다. 우리는 혁명의 길에 나선 첫날부터 항일혁명의 직접적인 담당자인 인민을 교양하고 동원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왔습니다.”(<세기와 더불어> 8권)

북한은 1982년 3월31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인 김정일이 김일성 탄생 70돌을 기념해 발표한 ‘주체사상에 대하여’(조선로동당출판사)를 주체사상의 첫 체계화 시기로 밝히고 있다. 사진 조선향토대백과
북한은 1982년 3월31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인 김정일이 김일성 탄생 70돌을 기념해 발표한 ‘주체사상에 대하여’(조선로동당출판사)를 주체사상의 첫 체계화 시기로 밝히고 있다. 사진 조선향토대백과

김일성이 항일운동 때 착상했던 주체사상은 1950년대에 행한 연설의 형태로 구체화되었다. 예컨대 김일성은 1955년 사대주의와 교조주의를 극복하고 주체를 세울 수 있는 방법에 관한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은 ‘사상사업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할 데 대하여’라는 문건으로 정리되었다.

북한은 1985년 10월 노동당 창당 40돌을 기념해 주체사상을 집대성한 &lt;위대한 주체사상 총서&gt;(사회과학출판사) 10권을 출간했다. 사진 박한식 교수 제공
북한은 1985년 10월 노동당 창당 40돌을 기념해 주체사상을 집대성한 <위대한 주체사상 총서>(사회과학출판사) 10권을 출간했다. 사진 박한식 교수 제공

&lt;주체사상 총서&gt;는 1989년 서울의 사회과학 전문 출판사 백산서당에서 영인본으로 펴내기도 했다. &lt;한겨레&gt; 자료사진
<주체사상 총서>는 1989년 서울의 사회과학 전문 출판사 백산서당에서 영인본으로 펴내기도 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김정일은 1982년 김일성의 주체사상 구상을 계승하면서 전면적으로 체계화한 논문을 발간했는데, ‘주체사상에 대하여’가 바로 그것이다. 리상걸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의 론문 ‘주체사상에 대하여’의 해설>을 1983년에 펴냈다. 1985년에는 주체사상을 집성한 <위대한 주체사상 총서> 10권이 발간되었다. ‘주체사상에 대하여’는 주체사상의 총론에 해당하고 <위대한 주체사상 총서>는 주체사상의 각론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위대한 주체사상 총서> 각 권 주제는 다음과 같다. 1권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 2권 주체사상의 사회역사 원리, 3권 주체사상의 지도적 원리, 4권 반제 반봉건 민주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혁명 리론, 5권 사회주의·공산주의 건설 리론, 6권 인간개조 리론, 7권 사회주의 경제건설 리론, 8권 사회주의 문화건설 리론, 9권 령도체제, 10권 령도예술.

박한식 교수는 1990년부터 2015년까지 매해 평균 두차례 평양을 방문해 북한의 대표 학자들과 주체사상에 대한 토론과 발표 등 연구를 해왔다. 왼쪽부터 1990년 당시 주체과학원 원장 리지수와 주체과학원 주체사상연구소 실장 박승덕, 전 조국통일연구원 실장이자 현 김철주사범대 교수 정기풍. 사진 조선향토대백과 제공
박한식 교수는 1990년부터 2015년까지 매해 평균 두차례 평양을 방문해 북한의 대표 학자들과 주체사상에 대한 토론과 발표 등 연구를 해왔다. 왼쪽부터 1990년 당시 주체과학원 원장 리지수와 주체과학원 주체사상연구소 실장 박승덕, 전 조국통일연구원 실장이자 현 김철주사범대 교수 정기풍. 사진 조선향토대백과 제공

1987년에는 황장엽의 주도로 용악산 근처에 ㄷ자형 건물의 주체과학원이 설립되었다. 황장엽은 주체사상을 세계에 확산시키려는 포부를 갖고 있었다. 주체과학원은 약 300명의 주체사상 전문가가 상주하는 대규모 연구기관이었다. 300명 전문가의 전공 분야는 학문의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었다. 주체과학원에서 추구한 목적은 주체사상의 보편적 응용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주체과학원 창립 3년 뒤인 1990년부터 2015년까지 매년 평균 2회 북한을 방문했다. 주체과학원에서 주체사상 연구가 활기를 띠는 상황에서 방문했기 때문에 나의 주체사상 연구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나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만나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토론을 하면서 수많은 질문을 제기했다. 주체사상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밝혀보라는 요청을 받아서 여러 차례 발표하기도 하고 그곳의 전문가들 앞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특별히 가까이 지낸 학자들인 리지수, 박승덕, 정기풍 등이 떠오른다. 이제는 나의 삶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집필 이현휘 제주대 특별연구원/구술정리 박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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