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재미 통일운동가 최재영 목사
최재영(58) 목사는 지난해 책 <북녘의 교회를 가다>(이하 동연)와 <북녘의 종교를 찾아가다>를 동시에 펴냈다. ‘최재영 목사의 이북교회 제대로 보기’라는 부제가 달린 두 책은 저자가 2014년 전후로 여러 차례 방북해 북의 종교 실태를 살핀 내용을 담았다. 평양 봉수교회와 칠골교회 등 북한 교회 16곳과 북한 기독교의 중심인 ‘가정교회’의 실상을 기록한 <북녘의 교회를 가다>는 지난해 세종도서로도 선정됐다.
미국 시민권자인 최 목사는 남한도 자주 방문해 북한의 본 모습을 알리는 강연을 한다. “작년 10월에 왔을 때는 40일 동안 25차례나 강연했죠. 교회나 성당, 사찰은 물론 학술단체나 지자체에서도 강연했어요.” 그는 지난 26일 다시 한국을 찾았다. 이번에도 스무 군데 이상 강연이 예정됐지만 코로나19로 다 취소했단다. 28일 서울 광화문역 근처 카페에서 최 목사를 만났다.
그는 내재적 시선으로 북한의 종교를 살폈다. 그렇게 얻은 결론은 “북한은 종교의 자유가 있으며 종교를 탄압하지도 권장하지도 않는다. 북한은 기독교를 주체사상과 접목해 고유한 민족종교로 정착시킨 유일한 나라”라는 것이다.
최 목사는 지역 교인 10~12명이 집에서 예배를 보는 가정교회를 예로 들었다. “약 530곳 정도 됩니다. 양강도나 자강도까지 지역마다 가정교회가 있어요. 북한 당과 정부도 인정하는 교회죠. 몇 군데 가보니 다 아코디언으로 찬송가 반주를 하더군요. 예배도 민족통일 염원이 있지만 성경 본문에서 벗어나지 않아요. 남한에서 나온 성경 교재 비디오테이프로 공부하는 모습도 보았죠. 남한 기독교가 교회 중심이라면 북은 가정 중심이죠.” 마을회관 같은 공공기관에서 예배를 보기도 한단다. “처소 교회라고 해요. 가정집과 처소 교회를 오가며 예배를 드리기도 해요. 평양 모란봉 근처 경상골 예배 처소는 지금도 60명이 모여요.” 설명이 이어졌다. “해방 전 평양은 동양의 예루살렘으로 불릴 정도로 기독교가 흥했어요. 그러다 해방과 6·25를 거치며 친일파나 사대주의 성향 교인 등이 월남했고 자주와 주권 의식이 강한 교인들이 남아 처소나 가정교회를 일궈왔죠. 그루터기로 남은 거죠.”
“종교의 자유가 있다”지만 북의 기독교 교인은 대략 1만 5천여명 정도란다. 가정교회 참석자도 50대 이상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그는 먼저 한국전쟁 이야기를 했다. “한국전 때 미군 폭격으로 북한 예배당 천 곳이 파괴됐어요. 신의주 제1, 제2 교회에선 예배를 드리던 교인들이 폭격으로 몰살했어요. 그 상처가 지금도 북한에 남아 있어요. (북한 주민들은) 기독교를 바로 미국과 등치시켜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크죠.” 북에서 기독교가 고유한 민족 종교가 된 데는 이런 역사 배경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북 기독교 교인들은 예수의 지상명령을 조국통일로 이해해요. 예수의 정신과 사상을 역사성과 현실성에 접목해 해석한 거죠. 교리적 도그마를 걷어내고요. 한국의 민중신학자들도 90년대 후반부터 북한선교라고 하지 않고 통일선교나 통일신학이라고 하잖아요.”
그는 강연 때 ‘북한 선교사’로 소개 받으면 바로 ‘대북 사역자’로 정정한다고 했다. “제가 미 풀러신학교에서 선교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어요. 선교학 쪽으로 상당한 명성이 있는 학교이죠. 하지만 최첨단 선교 이론이나 신학도 먹히지 않는 곳이 바로 북한입니다. 한국인들이 착각해 제국주의적 선교를 시도하지만 종교를 전파하는 선교적 관점은 북에서 수용될 수 없는 주장이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하자 그는 예수의 성육신 사랑과 실천을 말했다. “(북한 주민들과) 같이 먹고 마시고 하나가 되는 게 선교이죠. 예수가 그 모델이잖아요.” 종교 전파보다는 주민들에게 먼저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북 라선시에서 20년 이상 거주하며 북한 주민들과 동고동락하고 있는 기독교 신자 크리스 김을 비롯해 자신이 생각하는 성육신적 실천의 사례들도 책에 소개했다.
경기 양평이 고향인 최 목사는 1995년 미국으로 떠났다. 목표가 분명했단다. “대북 사역 통일운동이 하고 싶었죠.” 그는 최근 구속된 전광훈 목사와 같은 예장 대신 교단 소속 목사다. “보수적인 교단이죠.” 왜 통일운동이냐고 하자 최 목사는 5년 전 92세 나이로 별세한 모친 이야기를 꺼냈다. “한국전 때 중공군에 밀리던 미군이 전세를 역전시킨 용문산 지평리 전투가 있어요. 그때 미군 폭격으로 남한강변 제 고향 마을도 쑥대밭이 됐죠. 모친 가슴에는 폭탄 파편 10개가 박혔고요. 늘 가슴 부위가 짓무르고 고통스러워하셨어요. 그렇게 힘들어하며 8남매를 키우셨어요. 모친의 고통을 보며 크면서 통일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했죠.”
2014년 전후 여러차례 북한 방문 기회
‘북녘의 교회…’ ‘북녘의 종교…’ 출간
“예수의 지상명령 ‘조국통일’로 이해” 1995년 ‘대북 사역 통일운동’ 위해 도미
미국서 ‘엔케이 비전 2020’ 설립해 대표로
“선교사 아닌 ‘대북 사역자’ 불러주세요”
그는 98년 통일운동 단체 ‘엔케이 비전 2020’을 만들어 지금껏 이끌고 있다. 엔케이는 뉴 코리아의 영어 약자이다. “남북한과 해외동포 3자가 협력해 통일을 앞당기자는 생각이었죠. 2020년에는 최소한 준 통일은 이루자고 이름에 넣었는데 벌써 올해네요.” 이 기구는 산하에 손정도목사기념학술원과 동북아종교위원회, 남북동반성장위원회, 오작교포럼, 문화예술위원회를 두고 있다. 그는 손정도목사기념학술원장도 겸해 매년 고 손정도(1882~1931) 목사를 조명하는 학술 세미나를 열고 있다. 남한에서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은 손 목사는 북에서도 추앙한다. 손 목사가 고 김일성 주석이 만주에서 옥에 갇혔을 때 구출해줬다는 이유에서다. “남·북이 다 존경하는 손 목사는 통일의 아이콘으로 손색없는 분입니다.” 그는 손 목사 차남인 고 손원태(1914~2004) 회고록도 이달 국내 출간할 계획이라고 했다. “손원태는 두 살 위인 김 주석이 김성주로 지낼 때 형형하며 따른 사이이죠. 회고록 영문판이 2005년에 나왔는데 그간 국내 출판이 쉽지 않았어요. 북 체제를 긍정 묘사하는 일부 대목 때문에 출판사들이 난색을 표했죠.”
그가 쓴 책도 올해 잇달아 나온단다. “북한 국립묘지 60여곳을 다룬 책과 두 권으로 된 <전태일 실록>이 나옵니다. 제가 노동 문제에 관심이 많아 미국으로 간 뒤에도 한국을 찾아 직접 이소선 어머니(전태일 열사 모친)를 장시간 여러 차례 인터뷰했어요. 알려지지 않은 전태일 비사가 많아요. 전태일은 배우 김정훈이 주연한 영화 <꼬마 신랑>에 엑스트라로 나오기도 했죠.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고요. 제 책에 교회와 관련한 전태일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그는 재작년 6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당시 종교와 학계 진보 인사들은 공안탄압이라며 항의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이명박 박근혜 때 저에 대해 조사한 내용을 정리하려고 경찰이 소환했어요. 검찰이 두달 전 무혐의 처분해 재판까지 가지 않고 마무리됐어요.” 경찰이 주로 문제 삼은 게 뭐냐고 하자 이렇게 답했다. “북한에 재북 인사 묘가 있어요. 국회 부의장을 지낸 김약수 등 남한 국회의원 42명이 묻혀 있어요. 춘원 묘도 있죠. 그런데 한국전 때 북으로 올라가다 폭격 맞아 죽은 일부 인사들은 사진을 구할 수 없어 돌비석에 사진이 없더군요. 북쪽 부탁을 받고 제가 사진이 없는 분들의 고향 향토지와 종친들 문서까지 뒤져 몇 분의 사진을 건넸어요. 그게 문제라고 하더군요. 제가 북한의 최근 상황에 대해 팩트 체크하고 그걸 토대로 강연하고 집필하는 게 공안당국은 거북할 겁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최재영 목사. 강성만 선임기자
<북녘의 교회를 가다> 표지
북한 가정교회 모습. 대부분 50대 이상이며 아코디언으로 찬송가 반주를 한단다. “가정교회 교인들은 예배 뒤 친교의 시간도 갖더군요. 남한과 해외 한인 교회들은 북한의 가정교회를 지하교회로 잘못 알고 있어요.” 최재영 목사 제공
‘북녘의 교회…’ ‘북녘의 종교…’ 출간
“예수의 지상명령 ‘조국통일’로 이해” 1995년 ‘대북 사역 통일운동’ 위해 도미
미국서 ‘엔케이 비전 2020’ 설립해 대표로
“선교사 아닌 ‘대북 사역자’ 불러주세요”
평양 칠골교회 준공 뒤 입당 기념예배에서 설교를 하고 있는 최재영 목사. 최재영 목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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