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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재외동포 예술사 채록해 ‘한민족 통일’ 미래 그려요”

등록 2020-03-10 20:02수정 2020-03-11 02:37

[짬] ‘북한 음악’ 전문가 천현식·김지은씨

천현식(왼쪽) 학예연구사와 김지은(오른쪽) 구술사 연구자가 지난 6일 국립국악원 특수자료실에서 함께 인터뷰를 했다. 사진 김보근 기자
천현식(왼쪽) 학예연구사와 김지은(오른쪽) 구술사 연구자가 지난 6일 국립국악원 특수자료실에서 함께 인터뷰를 했다. 사진 김보근 기자

‘가장 오래된 예술인 국악을 매개로 변화하는 한민족 개념의 미래를 그리기 시작했다.’ 지난해말 국립국악원에서 펴낸 <재외동포 원로예술가 구술채록-일본편>의 의의를 한마디로 표현한 말이다.

이 책은 김경화(1946~2017) 전 금강산가극단 지휘자, 이철우(1938~) 평양 윤이상음악연구소 해외담당 부소장, 임추자(1936~2019) 임추자민족무용단 대표, 정호월(1941~) 전 금강산가극단 배우이자 성악가 등 총련계 재일동포 예술가 8명의 구술 내용을 기록한 최초의 작업이다. 모두 북한으로부터 인민배우·공훈배우 칭호를 받은 이들이다.

2017년부터 3년에 걸쳐 책의 출간 작업을 함께 해온 천현식 국립국악원 학예연구사와 김지은 구술사 연구자를 지난 6일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특수자료실에서 만나, ‘변화하는 민족 개념과 국악의 관계’에 대해 들어봤다.

국립국악원 ‘동포 음악인 구술’ 첫 작업
3년간 재일 총련계 원로예술인 8명 기록
김경화·이철우 등 ‘인민’ ‘공훈’ 배우들
“옛 활동 돌아보며 울던 모습 못잊을 듯”

카자흐스탄 채록 진행중…중국도 예정
“남북 소통·화해 여정의 출발점 기대”

두 사람을 공동작업 파트너로 묶은 열쇠말은 ‘북한 음악’이다. 천 학예사는 대학 때 국문학에 이어 국악을 전공한 뒤,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2012년 ‘북한 가극의 특성과 변화’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2015년부터 국립국악원에서 북한 음악 부문을 맡아 일해오고 있다. 김 연구자는 대학 때 첼로를 전공했다. 그러다 2007년 재일 금강산가극단의 국내 공연 기획 등에 참여하면서 북한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현재 건국대 통일인문학과에서 북한 음악예술론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쓰고 있다.

천 학예사는 “국립국악원에서 2013년부터 북한 음악 중심으로 ‘한민족음악총서’를 발행해오다 2017년 재외동포 음악인 구술 작업으로 이를 확대하기로 했다”며 “그 첫번째 작업으로 일본 총련계 예술가들의 구술작업을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금강산가극단 등 총련계 예술인들과 친분이 두터운 김 연구자가 중심 인터뷰어로 합류하게 됐다. 두 사람은 3년 동안 모두 6차례 일본을 방문해 원로 예술가들을 인터뷰했다.

김 연구자는 “원로 예술인들이 옛 활동을 되돌아보며 눈물을 흘리던 것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재일동포들은 해방 이후 줄곧 조선학교 등에 대한 탄압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투쟁을 강요받는 삶을 살았다”며 “그 투쟁 과정에 예술가로서 참여했던 기억을 되살리면서 ‘우리의 예술은 동포사회의 민족운동으로서 계속 활동했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고 말했다. 천 학예사는 “구술작업이 그 분들에게 말할 기회를 드린 것”이라며 “남북의 화해를 위해 예술적으로 헌신해왔던 자신들의 삶이 공식적이고 뜻깊은 것이었음을 구술과정을 통해 재확인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김 연구자는 인터뷰를 통해 해방 후 황무지 같던 일본땅에서 민족문화를 찾고 발전시키는 구체적 과정, 특히 이 과정에서 1960년대 이후 일본 니가타항에 정박한 북한의 만경봉호에서 재일 예술가들에게 ‘선상 교육’을 지도한 평양 예술가들과 그때 북으로 귀국한 재일 예술가들이 누구인지 확인한 것 등을 대표적인 성과로 꼽았다. 그는 “김경화·임추자 두 분은 책 출간을 못 보시고 돌아가셔서 아쉽지만, 그나마 그 분들의 목소리를 남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천 학예사는 “국립국악원은 지난해부터 카자흐스탄 동포 예술가 구술채록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며 “앞으로 중국 동포 예술가 인터뷰 등으로 작업을 계속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두 사람은 “구술채록을 통해 변화하는 ‘민족’ 개념을 재정립함으로써, 남북이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천 학예사는 “일본이나 카자흐스탄의 동포 예술인들 궤적을 살피다 보면 반드시 북한의 재외동포 예술정책과 만나게 된다”며 “1950~60년대 경제력이 우리보다 앞섰던 시기에 북한이 적극적으로 재외동포 예술 지원정책을 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민족 동포 예술사를 쓴다는 것은 결국 한민족의 근·현대사를 복원하는 것”이라며 “분단과 통일을 중심으로한 재외동포 예술사 연구가 남북간 소통의 새로운 매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자는 “동포 예술을 보면 전통의 계승과 현대화·현지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민족음악 담론도 변화의 기로에 서 있는 듯하다”며 “재일동포 예술가들의 구체적 목소리를 담은 이 책이 앞으로 남북의 재외동포 예술정책과 재외동포들의 예술 활동을 연구하는 데 좋은 참고자료로 쓰였으면 한다”고 밝혔다.

“국악이 오래됐다는 등의 이유로 큰 인기는 없지만, 변화하는 우리 민족 개념을 재규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입니다. 이런 작업을 베토벤 음악으로 하겠습니까. 팝 음악으로 하겠습니까?”

천 학예사의 말대로, 이는 ‘새로운 통일과 남북 화해’의 비전을 세우는 큰 여정의 작은 출발점인지도 모른다.

김보근 기자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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