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한겨레 자료사진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낸 6·15선언 20주년 메시지에 대해 “혐오감을 금할 수 없다”면서 “철면피하고 뻔뻔스러운 내용만 구구하게 늘어 놓았다”고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김 제1부부장이 17일 본인 이름으로 낸 ‘철면피한 감언리설을 듣자니 역스럽다’는 제목의 담화 내용을 보도했다. 김 제1부부장은 담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6·15선언 20주년 기념행사 등에서 낸 여러 메시지를 정면으로 비난하면서 “민족 앞에 지닌 책무와 의지, 현 사태수습의 방향과 대책이란 찾아볼래야 볼 수가 없고 자기변명과 책임회피, 뿌리깊은 사대주의로 점철된 남조선 당국자의 연설을 듣자니 저도 모르게 속이 메슥메슥해지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이날 김 제1부부장이 낸 담화는 모두 4800자 분량이다. 앞 부분은 문 대통령이 최근 낸 북한 관련 메시지에 대한 비난이 대부분이고, 뒷 부분은 한국 정부가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남북이 합의한 내용들을 이행하지 못했음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겼다. 같은 내용의 담화는 북한 주민들이 매일 챙겨보는 대내용 매체인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도 실렸다.
김 제1부부장은 문 대통령의 6·15 계기 연설 내용을 “마디마디에 철면피함과 뻔뻔함이 매캐하게 묻어나오는 궤변”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북남관계가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있는 것이 죄다 그 무슨 외적요인에 있는 듯이 밀어버리고 있다”며 “(문 대통령의) 연설대로라면 북남관계가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것이 남조선내부의 사정 때문이고 미국과 국제사회의 지지가 따라서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과거 그토록 입에 자주 올리던 ‘운전자론’이 무색해지는 변명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또 “(문 대통령이) ‘기대만큼 남북관계의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나 또한 아쉬움이 크다’고 하였는데 막연한 기대와 아쉬움이나 토로하는 것이 소위 ‘국가원수’가 취할 자세와 입장인가”라고 지적했다.
김 제1부부장은 담화에서 한-미 외교 당국자들이 대북 제재 관련 사안을 조율하기 위해 만든 ‘한-미 워킹그룹’을 언급하며 비난을 이어나갔다. 그는 “북남합의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남쪽 당국이 “‘한미실무그룹’이라는 것을 덥석 받아물고 사사건건 북남관계의 모든 문제를 백악관에 섬겨 바쳐온 것이 오늘의 참혹한 후과로 되돌아왔다”며 “북남 합의보다 ‘동맹’이 우선이고 ‘동맹’의 힘이 평화를 가져온다는 맹신이 남조선을 지속적인 굴종과 파렴치한 배신의 길로 이끌었다”고 꼬집었다. “훌륭했던 북남합의가 한 걸음도 이행의 빛을 보지 못한 것은 남측이 스스로 제 목에 걸어놓은 친미사대의 올가미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어 김 제1부부장은 한국 정부가 남북 협력에 있어서 “‘제재의 틀안에서’ 라는 전제조건을 절대적으로 덧붙여왔다”면서 지적하면서 “오늘 북남관계가 미국의 농락물로 전락된 것은 전적으로 남조선당국의 집요하고 고질적인 친미사대와 굴종주의가 낳은 비극”이라고 말했다.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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