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가 18일 오후 서울 종로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인권 문제가 전면에 대두되면 대북 협상이 깨질 위험이 크다. 핵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이 8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대북정책 ‘재검토’를 진행 중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향해 “북한은 미국이 인권을 앞세우면 ‘체제 전복’을 노린 적대 행위라 여겨 대화를 거부한다”며 ‘인권 문제’보다는 ‘핵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인권’을 대외정책의 핵심 가치로 내세우며 중국 등 버겁거나 불편한 상대를 대할 때 ‘인권’을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을 염두에 둔 우려 표명이다.
문 이사장은 문재인 정부가 안고 있는 또 하나의 난제인 한-일 관계에 대해선 “바이든 행정부가 동맹과 일본을 중시하는 만큼 앞으로 일본 변수의 비중이 높아질 것”이라며, 바닥을 모르고 나빠지는 한-일 관계를 ‘갈등’에서 ‘협력’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문 이사장은 “미국과 중국이 신냉전 대결 구도로 가면 한반도 상황이 대단히 어려워진다”며 문재인 정부에 전략적 균형과 슬기로운 대처를 거듭 당부했다.
문 이사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줄곧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 자리를 맡았다가 지난달 14일 직을 내려놓고, 다음날 3년 임기의 세종연구소 이사장에 취임했다. 문 이사장은 코로나19와 미-중 갈등의 시대에 한국의 선택을 분석·전망한 단행본 <문정인의 미래 시나리오>를 최근 출간하기도 했다. 인터뷰는 2~3월에 걸쳐 대면(2월18일, ‘아시아태평양핵비확산군축리더십네트워크’(APLN) 광화문 사무실)과 서면(3월2·8일) 등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바이든 행정부는 대외정책에서 인권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대응 방법은?
“미국이 아무리 강대국이라도 북한을 상대로 인권과 핵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는 어렵다. 선택을 해야 한다. 인권 문제를 앞세우면 북은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강화한다’며 핵무장력 강화 쪽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러면 게도 구럭도 다 놓친다. 인권을 앞세우는 메가폰 외교로는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오히려 핵 문제 진전과 함께 제재가 부분 완화되고 인적 교류가 활성화되면 북한 인권 개선의 길이 열릴 수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정책의 뼈대를 추린다면?
“다자주의, 미국 리더십의 회복, 동맹 복원, 중산층 외교가 핵심이다. 다자주의와 동맹 복원이 트럼프 외교와 반대 방향이라면, 중산층 외교는 트럼프와 같은 흐름에 있다. 중산층 외교는 미국 중산층의 삶에 보탬이 되는 외교를 하겠다는 것이다. 주목해야 한다.”
―바이든 정부의 대외정책의 핵심은 대중정책이 될 듯하다.
“<뉴욕 타임스>에 재밌는 기사가 실렸는데 협력(Cooperation)·경쟁(Competition)·대결(Confrontation), 곧 ‘3C’라 짚었다. 협력·경쟁·대결이 동시에 작동하는 중층적 대중정책을 펴리라고 본다. 기후변화·전염병·대량살상무기·북핵 문제는 중국과 ‘협력’, 무역·기술은 ‘경쟁’, 지정학·가치 영역에선 ‘대결’이다. 북핵 문제는 중국과 협력을 모색하겠지만, 남중국해·동중국해·한반도·대만해협에서는 동맹 강화로 중국의 팽창을 막겠다는 것이고, 홍콩·위구르 문제는 미국이 아주 강하게 나갈 것이다. 특히 가치(민주주의 10개국)와 지정학(쿼드, 쿼드 플러스) 측면에서 동맹 강화로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바이든 정부의 전략은 우리의 선택을 어렵게 할 수 있다.”
―미-중 관계의 향방과 시진핑의 대미 전략은?
“간략하게 짚으면 미-중 경쟁 구도는 지정학(전략적 군비경쟁), 지경학(관세전쟁·불공정무역·통화경쟁), 기술민족주의, 민주주의·인권의 4개 전선에서 이뤄질 것이다. 미국이 거세게 압박할 텐데 중국도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고 본다. 시 주석은 마오쩌둥의 ‘지구전’을 준비하는 것 같다.”
―한반도 평화 과정에서 미-중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가?
“한반도 평화는 ‘북핵 문제’를 풀어야 가능한데, 중국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결국 미-중 관계가 좋아야 한다. 역설적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만드는 과정에서 미-중 협력의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예컨대 우리가 ‘쿼드 플러스’에 참여했는데, 미-중 관계가 나빠져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사드 추가 배치나 중거리탄도미사일의 전진 배치를 요구할 수 있다. 이걸 안 받으면 한-미 관계가, 받으면 한-중 관계가 망가진다. 중국은 우리가 미국 편에 서서 중국에 적대한다고 판단하면, 북·중·러 삼각동맹 구축과 함께 1990년대 초반 이후 중단해온 북한에 대한 재래식 군사력 지원을 재개할 수도 있다. 그러면 우리의 안보 환경이 심각하게 나빠진다. 미-중 신냉전 구도의 대두를 막을 외교적 상상력이 절실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런 상황을 어찌 볼까?
“김 위원장은 ‘미국과 관계 개선’ 의지를 거듭 밝혀왔다. 지금도 바이든 행정부와 대화·협상을 기대하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의 주장을 무시·외면하면, 북은 중국 쪽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면 남북관계와 평화체제는 매우 어려워진다.”
―김 위원장이 지난해 하반기 이후 미사일 시험 발사 등 군사 행보를 자제하고 있는데, 이 기조가 유지되리라 보나?
“‘국가 핵무력 완성’ 선언(2017년 11월29일)을 한 터라 미국의 시선을 끌려고 군사적 도발을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당분간은 이대로 가리라고 본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기다림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2017년 위기의 재연을 막으려면 한국과 미국 모두 빨리 움직여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재검토는 어떻게 되고 있나?
“바이든 대통령 취임 뒤 지금까지 대북 비난 발언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협상’을 공개적으로 얘기하는 사람 역시 한명도 없다는 사실도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선 핵해체, 후 보상’을 주장하는 강경파와 단계적 협상파가 치열한 토론을 하고 있다. 최종 결정은 바이든 대통령이 할 텐데, 세가지 변수가 있다. 북한이 어떻게 나오느냐, 한국 정부가 얼마나 설득을 잘하느냐, 그리고 세번째가 일본 변수다.”
―일본 변수가 그렇게 중요한가?
“바이든 정부가 동맹 강화와 함께 일본 중시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은 ‘선 시브이아이디’(CVID,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고집하고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앞세우는데다, 장거리 미사일에 집중하는 미국과 달리 단거리 미사일을 포함한 모든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중지를 주장한다. 일본의 목소리가 커지면, 한·미·일 3국 공조가 어려워질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 담긴 대일 메시지를 어떻게 보나?
“피해자가 있는 역사 문제는 시간을 두고 풀어나가고 미래 지향적 협력을 강화하자는 것으로, 문 대통령의 일관된 판단이다. 한-일 협력을 복원해 한·미·일 관계를 활성화하자는 발언은, 미국에 대한 화답이자 건설적 대화에 나서라는 일본을 향한 주문이다. 또한 2018년 2월 평창겨울올림픽을 롤 모델 삼아 도쿄올림픽을 북-일·남북·북-미 관계 개선의 기회로 삼자는 것이다. 올림픽이라는 이벤트를 계기로 새로운 평화의 여건을 만들어내는 ‘올림픽 평화론’을 이야기한 것 아닌가 한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바이든 행정부가 지금 무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북-미 관계 정상화, 항구적 한반도 평화체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담은 2018년 6·12 싱가포르 북-미 공동성명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상원의원만 36년을 했기에 대화와 협상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게 몸에 밴 사람이다. 가치지향성보다 실용적 해결에 관심을 많이 둘 것이라고 본다. 그 점에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
이제훈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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