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5~12일 열린 조선노동당 8차 대회 때 주석단에 앉은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뒤편에 김여정 부부장이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조선중앙텔레비전> 화면 갈무리, 연합뉴스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지난 8일 시작된 한미군사연습을 “공화국(북)을 겨냥한 침략적인 전쟁연습”이라 규정하고 “‘붉은선’을 넘어서는 얼빠진 선택”이라고 16일 비판했다.
김여정 부부장은 “3년 전의 봄날은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다”라는 제목의 개인 담화에서 “우리 당중앙은 남조선 당국의 태도 여하에 따라 3년 전의 봄날과 같은 평화와 번영의 새 출발점에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이것이 북남관계의 마지막 기회로 될 수 있다는 의미심장한 경고였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이어 “남조선 당국은 ‘따뜻한 3월’이 아니라 ‘전쟁의 3월’ ‘위기의 3월’을 선택했다”며 “우리에 대한 비정상적인 적대감과 불신으로부터 출발한 피해망상”이라고 비난했다.
아울러 김 부부장은 “미국의 새 행정부에도 한마디 충고한다”며 “앞으로 4년간 발편잠을 자고 싶은 것이 소원이라면 시작부터 멋없이 잠설칠 일거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는 16일은 미국의 안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의 한국 방문 하루 전이자 일본 방문 당일 아침에 맞춰 나왔다.
김 부부장의 담화는 대외용인 <조선중앙통신>은 물론, ‘인민 필독매체’인 <노동신문>과 <조선중앙방송>으로도 공개됐다. 한국과 미국을 향한 ‘경고 발언’의 성격뿐만 아니라 내부 정치적 수요도 그에 못지 않게 고려한 담화라는 방증이다. 인민들한테 공표된 담화라, 앞으로 어떤 형식과 내용으로든 추가 조처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김 부부장은 “이런 상대와 마주앉아 그 무엇을 왈가왈부할 것이 없다는 것이 우리가 다시금 확증하게 된 결론”이라며 염두에 두고 있는 구체적인 대남 조처를 열거했다. 우선 “현정세에서 더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어진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를 정리하는 문제를 일정에 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를 적으로 대하는 남조선당국과는 앞으로 그 어떤 협력이나 교류도 필요없으므로 금강산국제관광국을 비롯한 관련 기구들도 없애버리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부부장은 “이러한 중대조치들은 이미 우리 최고수뇌부에 보고드린 상태”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김 부부장은 “앞으로 남조선 당국의 태도와 행동을 주시할 것이며 감히 더더욱 도발적으로 나온다면 북남군사분야 합의서도 씨원스럽게 파기해버리는 특단의 대책까지 예견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북관계의 핵심 안전판이자 군사적 충돌 방지 장치인 ‘군사분야 합의서’ 파기를 거론하되 일단은 후순위로 밀어둔 셈이다.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이 지난 2018년 2월 청와대를 방문했을 당시 모습. 방명록을 작성하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도 보인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통일부에 조응하는 북한의 내각 기구인 조평통의 ‘폐지’를 거론한 것은 남북 당국 간 대화 창구를 없애겠다는 엄포에 다름 아니다. 다만 조평통은 2019년 12월 위원장이던 리선권이 외무상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 후임 위원장이 임명되지 않았고 공개 움직임도 없었다. 교류협력 “관련 기구들”의 폐지도 검토한다는데, 그간 남북 교류협력에 깊이 관여해온 여러 기구들이 아닌 이미 여러 차례 자체 개발 방침을 강조해온 금강산관광사업과 관련한 “금강산국제관광국”을 적시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김 부부장은 “행동에는 결과가 따르는 법”이라며 “임기말기에 들어선 남조선 당국의 앞길이 무척 고통스럽고 편안치 못하게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이어 “(노동)당 8차 대회에서 명백히 천명된 바와 같이 대가는 노력한 것만큼, 지불한 것만큼 받게 돼있다”고 재확인했다.
김 부부장의 담화는 “붉은선을 넘어서는 얼빠진 선택” 운운 등 짐짓 발언 수위가 매우 높고 강경하지만 한미훈련에 대한 대응 행동으로 ‘군사 행동’을 언급하지 않았고, “앞으로 남조선 당국의 태도와 행동을 주시할 것”이라는 단서가 달린 점도 함께 염두에 둘 필요가 있어 보인다.
김 부부장은 담화에서, 이번 한미군사연습을 국방부 등이 “연례적, 방어적” “규모와 내용을 대폭 축소한 지휘소훈련”이라 설명한 것과 관련해 “참으로 유치하고 철면피하며 어리석은 수작”이자 “미친개를 순한 양으로 보아달라는 것과 다름 없는 궤변”이라 비난했다. 김 부부장은 “50명이 참가하든 100명이 참가하든 그리고 그 형식이 이렇게저럭헤 변이되든 동족을 견냥한 침략전쟁연습이라는 본질과 성격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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