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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바이든 설득하고 김정은 ‘농성’ 풀어… ‘평화의 문’ 다시 열릴까

등록 2021-05-10 14:44수정 2021-05-10 14:55

평창올림픽 계기 대화 물꼬
‘일촉즉발’ 북·미 관계에도 숨통
하노이 회담 결렬 뒤 다시 안갯속
미 바이든 정부 ‘단계적 접근’ 강조
문 대통령 “끝까지 최선” 강한 의지
2019년 6월3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동을 마친 뒤 문재인 대통령 등과 함께 군사분계선으로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9년 6월3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동을 마친 뒤 문재인 대통령 등과 함께 군사분계선으로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7년 7월6일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오직 평화”라고 간절하게 외쳤다. 독일의 분단과 통일의 상징인 베를린에서 “대한민국 새 정부의 한반도 평화 구상”을 밝히며 호소했으나 메아리는 없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겁쟁이 게임’에 한반도는 1994년 6월보다 깊은 전쟁 위기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었다. 문 대통령이 평화를 호소하기 이틀 전,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의 독립기념일(7월4일)에 맞춰 본토를 사정권에 둔 “화성-14형”을 쏘고는 “미제와의 기나긴 대결이 드디어 마지막 최후계선에 들어섰다”고 포효한 터였다. 유엔이 북의 최대 수출상품인 석탄 무역을 전면 금지하는 결의 2371호를 채택(8월5일)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화염과 분노에 북이 직면할 것”이라는 엄포(8월8일)를 놓자, 북은 “(미군기지가 있는) 괌도 주변 포위사격”(8월9일 조선인민군 전략군) 운운하더니 6차 핵시험(9월3일)으로 맞불을 놨다. 유엔은 전례없이 빠르게 핵시험 여드레 만에 북의 2위 수출품인 섬유·의류 제품 수출을 전면 금지한 결의 2375호(9월11일)로 맞받았다. 김 위원장의 ‘돈줄’을 끊으려 ‘민생경제’까지 옥죄기로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모든 것을 걸고 전쟁만은 막을 것”이라는 결연한 선언(2017년 8월15일 광복절 경축사)과 함께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다. 유엔총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준비가 돼 있다”고 ‘폭탄선언’(9월19일)을 한 날, 문 대통령은 같은 장소에서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장을 만나 2018년 2월 평창겨울올림픽 기간 ‘올림픽 휴전 결의안’을 제출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화성-15’형 시험발사 뒤 “국가핵무력 완성 선언”(11월29일)에서 ‘협상 전환 신호’를 감지하곤 “한·미 연합군사연습 연기 검토”(12월19일)를 밝히는 승부수로 정세 흐름을 대결에서 협력으로 돌렸다.

그리고 한국전쟁의 네 당사자인 남·북·미·중의 ‘평화의 동행’ 속 복잡한 수싸움이 2018년 1월부터 2019년 6월까지 숨가쁘게 이어졌다.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두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 사상 첫 남북미 정상 판문점 만남, 다섯 차례의 북·중 정상회담이 꼬리를 물며 이어졌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과 트럼프 사이에 다리를 놨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과 함께 “우리는 그 어떤 역풍도 두렵지 않다. 언제나 지금처럼 두 손을 굳게 잡고 앞장 서서 함께해 나갈 것”(2018년 9월19일)이라고 다짐했고, 북·미 정상은 “새로운 조미관계 수립”을 문서로 합의(2018년 6월12일)했다. 다들 분단 적대와 갈등을 역사책에 가둘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2019년 2월28일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선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실무 오찬’을 할 예정이었지만 협상 결렬로 오찬도 취소됐다. 하노이/로이터 연합뉴스
2019년 2월28일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선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실무 오찬’을 할 예정이었지만 협상 결렬로 오찬도 취소됐다. 하노이/로이터 연합뉴스

그러나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실패로 지도력과 자존심에 큰 타격을 받은 김 위원장은 “자력갱생, 정면돌파”를 외치며 ‘장기 농성’에 들어갔고,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대유행의 혼란 속에 무대에서 쫓겨났다. 한반도엔 다시 찬바람이 분다.

대북정책 재검토를 마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한테 평화와 협력의 손길을 내밀까? 북이 “패전국한테나 요구하는 것”이라며 비난·거부해온 ‘시브이아이디’(CVID,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포기)가 아닌 4·27 판문점선언과 6·12 북·미 공동성명에 명시된 “완전한 비핵화” 목표와 함께 “외교”와 “현실”을 강조하며 ‘단계적 접근’을 미국이 내비치는 건 좋은 신호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이 대외전략의 기조·초점을 중국 견제에 맞춰 대북정책을 그 하위범주로 설정하고 이란핵협상을 우선 의제로 삼은 건 ‘대북정책 집중력’ 측면에서 좋지 않은 신호다.

문 대통령은 “조급해 하지 말되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며, ‘임기 마지막 해엔 정세 관리만 해도 선방’이라고 생각하는 관료·참모들을 다그치고 있다고 한다. “정부 안에서 남북관계 개선에 의지가 가장 강한 이가 바로 문 대통령”(정부 핵심 관계자)이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21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설득해 김 위원장이 ‘농성’을 풀고 다시 한반도 평화 과정의 주체로 나서게 할 효과적인 대북 제안을 벼릴 수 있을까? 문 대통령은 남은 1년 동안 한반도 평화 과정의 ‘닫힌 문’을 열고 ‘9회말 재역전’에 성공할까, 아니면 ‘십년 공부 도로 아미타불’로 주저앉게 될까? 남북 8천만 시민·인민의 일상과 안녕을 담보로 한 운명의 시계가 돌고 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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