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오른쪽)과 성 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한-미 북핵 수석대표 협의에 앞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과 미국이 대북 정책 조율의 틀로 출범시켰던 ‘워킹그룹’을 2년여 만에 사실상 종료하기로 했다. 북-미 간 비핵화·평화체제구축 협상이 교착에 빠지면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행정부가 이 틀을 통해 남북의 독자 접근을 제어했다는 부정적 인식과 비판을 고려한 조처로 풀이된다.
외교부는 22일 보도자료를 내 “21일 한-미 북핵 수석대표 협의 시 기존 한-미 워킹그룹의 운영 현황을 점검하고, 기존 워킹그룹을 종료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한-미는 북핵 수석대표 간 협의 이외에도 국장급 협의를 강화하기로 했으며,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계속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임갑수 외교부 평화외교기획단장과 정 박 미 대북특별부대표가 이날 만나 워킹그룹 종료에 따른 양국의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한다고 외교부 쪽은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한-미 워킹그룹이 한-미 간 대북정책 전반에 대한 의견 조율을 한 중요한 플랫폼이었지만 남북 관계 개선에 장애물이 된다는 비판도 있었던 것도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최 차관은 이후엔 “가칭 한-미 국장급 정책 대화”를 신설해 “외교부 평화외교기획단장과 미 국무부 대북특별부대표가 실무 정책 등 제재와 관여를 포함해 논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워킹그룹이라는 이름의 틀은 종료하되, 한-미가 대북정책을 협의하는 기능 자체는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필요하면 각 부처들이 참여한 협의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는 미 국무부뿐 아니라 재무부, 백악관 등 실무자가 참여해 제재 면제 관련 논의가 효율적으로 이뤄졌던 워킹그룹의 이점은 이후 협의체에서도 이어가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 쪽과 워킹그룹이라는 ‘이름’을 없애자는 데 의견 일치가 있었다”고 전했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도 워킹그룹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온 만큼 여전히 대남·대북 관계 개선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는 북한이 이번 조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지 관심을 모은다. 이와 함께 19일 방한한 성 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22일 오전 이인영 통일부 장관과 최영준 통일부 차관을 직접 만나 남북 협력에 대한 협의를 진행해 눈길을 끌었다. 다만, 정부 고위 당국자는 “(미국이 남북관계의) 주무 부서와도 협의를 강화한다는 차원이지 (그간 외교부와 하던 워킹그룹 등을 통한 협의) 업무와 기능을 나누는 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에 한-미가 이후 워킹그룹을 어떤 방식과 틀로 만들지에 대해 한-미뿐 아니라 한국 정부 내 조율과 협의에도 관심이 쏠린다. 워킹그룹 때와 적잖이 다른 소통의 틀이 마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미 워킹그룹은 2018년 11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유엔 안보리 결의 이행, 남북 협력 등 북핵·북한 관련 제반 현안을 둘러싼 양국 간 소통과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상시 체계로 만들어졌다. 당시 일각에서는 남북관계가 북-미 관계에 앞서가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워킹그룹을 만들었다고 해석했으나, 외교부는 한국 쪽 제안으로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남북 정상이 합의한 협력 사업들을 이행하기 위해서 필요한 ‘제재 면제’ 협의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게 하려는 틀이라는 설명이었다. 실제 첫 회의에서는 앞서 유엔군 사령부의 불허로 수개월 지연됐던 남북 철도 연결 사업 북쪽 구간 공동점검 사업에 대한 미국 쪽 지지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미국 쪽은 ‘사전 협의가 부족했다’는 이유로 금강산 행사에 동행한 취재진의 노트북 반출을 막거나, 독감 치료제인 타미플루의 운반용 트럭이 제재에 저촉될 수 있다고 제동을 걸어 지원사업이 무산되는 결과를 부르기도 했다. 이후 여권을 중심으로 워킹그룹이 남북관계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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