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22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미국외교협회(CFR)의 초청으로 열린 파리드 자카리아 <시엔엔> 앵커와 대담을 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22일(현지시각) 대북 유인책으로 제재 완화를 검토할 때라고 밝혔다.
유엔 총회 기간 미국 뉴욕을 방문 중인 정 장관은 22일(현지시각) 미국외교협회(CFR)의 초청으로 파리드 자카리아 <시엔엔> 앵커와 진행한 대담에서 ‘한-미 양국은 북한을 고립에서 끌어내고 비핵화 프로세스를 재가동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모색해볼 수 있다’며 “우리는 북한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데 소극적이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외교부가 이날 낸 보도자료를 보면 정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제76차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종전선언을 위한 국제협력을 촉구했다는 점을 상기하며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 비핵화 진전과 완전한 평화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대북 인도적 협력, 신뢰구축 조치 및 북한을 대화로 견인하기 위해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상응하는 제재 완화 고려 등을 포함한 적극적인 유인책을 모색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대북 인도적 지원 등 상대적으로 민감하지 않은 분야에서 시작해 종전선언과 같은 신뢰구축 조처로 넘어갈 수 있다며 “그들의 행동에 따라 제재를 완화하는 창을 제시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고 한다. 대신 북한이 합의 사항을 위반할 경우는 제재를 복원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정 장관은 미국 쪽이 아직 대북 제재를 완화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인정하면서도 ‘북한이 4년 동안 (핵·미사일) 모라토리움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이제 그것(제재 완화)을 고려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알려졌다. 그는 “(핵·미사일 실험 중단 등) 북한이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해 보상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유인책으로서 제재 완화를 달성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할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 당국자는 “우리 정부는 비핵화 조치에 따른 상응조치로서 제재 완화를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며 “구체적 내용은 북한이 대화에 복귀하면 폭넓게 논의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정 장관은 또 이날 대담에서 한국을 미국, 일본, 호주와 함께 ‘반중국’ 블록으로 규정하려는 데 대해서는 “그건 냉전 시대 사고 방식”이라고 선을 그어 눈길을 끌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정 장관은 ‘한-미 동맹은 한국 외교의 중심축이고 중국은 가장 중요한 경제 파트너’라고 전제한 뒤 “미국과 중국이 더 안정적인 관계가 되길 희망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정 장관은 ‘중국이 최근 국제사회에서 공세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자카리아의 지적에 “(중국이) 경제적으로 더욱 강해지고 있기 때문에 당연하다. 20년 전 중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공세적'(assertive)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정 장관은 “(중국은) 국제사회의 다른 멤버들에게 중국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싶은 것”이라며 “우리는 중국이 주장하고 싶어하는 것을 듣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이 공세적 외교를 펴고 있다는 오스트레일리아 정부 인사들의 발언을 인용하며 자카리아가 “한국은 오스트레일리아와 다른 상황이냐”고 되묻자, 정 장관은 “다른 국가들의 우려를 잘 알고 있다”고 답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정 장관의 발언에 대해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23일 정례브리핑에서 “정 장관이 중국의 공세적 태도를 자연스럽다고 언급한 것이 아니다. 중국의 외교·경제력 등 국력신장에 따라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 일반적인 국가의 국제 위상변화의 차원에서 자연스러워 보인다고 표현한 것일뿐”이라고 해명했다. 외교부 당국자도 이날 기자들에게 “정 장관 발언 취지는 정확한 대중국 정책이 필요한데 그러면 수십년 전이 아니라 현재 중국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인식, 중국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판단해야 한다는 원칙적 차원이라고 이해해달라”고 덧붙였다.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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