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지지 확보 선결 요구..상당기간 관망할듯
"우선 동남아의 동의를 받아오라."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유엔 사무총장 출마에 대한 미 국무부의 입장은 반 장관이 먼저 동남아 국가들, 즉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의 지지를 받아오면 지원하겠다는 것이라고 한 정통한 소식통은 13일(현지시간) 말했다.
반 장관 개인에 대한 평가는 "그를 좋아하고, 존경하고, 지지한다"는 것이지만, 미국의 최종 입장은 아세안을 무시할 수 없는 국제정치 역학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소식통의 말을 따른다면, 반 장관으로선 가장 최근 결정된 주요 국제기구의 장인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자리를 태국이 가져간 점을 지적, 이번엔 동북아 차례라는 점을 아세안측에 설득해 아세안의 도장을 우선 받아야 한다.
이 소식통은 "반 장관이 아세안의 동의를 얻으면, 중국과 일본도 동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외교소식통 역시 "아세안은 자신들이 아시아의 목소리를 정하는 데 일정한 몫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중국과 일본도 아세안의 이러한 입장을 용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도 반 장관에 출마에 대한 미 정부 내부의 기류를 "좋은 후보로, 환영한다"는 것이라고 전했으나 "아직 구체성을 띠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미 정부가 앞으로 상당기간은 특정 후보쪽으로 기우는 모습을 드러내거나 지지후보를 공식적으로 밝히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데 두 소식통의 전망이 일치한다.
현재까지 유엔 사무총장 문제에 대한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는 존 볼턴 유엔주재 대사는 지역이 돌아가며 맡아야 한다는 기존 관행을 인정하지 못하겠으며, 지역에 관계없이 유엔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매니저로서 역량을 갖춘 가장 유능한 사람을 선출해야 한다는 말을 되풀이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지역으로 따진다면 아시아는 이미 사무총장을 배출했는데, 동구는 언제하느냐"고 말해 미국이 내심 동구권을 선호하는 것으로 일부에서 해석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굳이 지역이 돌아가며 맡아야 한다면 이번엔 동구 차례가 아니냐는 것으로, 지역 윤번제를 부인하는 데 본 뜻이 있지 동구권이 돼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외교소식통은 설명했다.
미 행정부 인사는 아니지만, 리처드 홀브룩 전 유엔 미대사는 최근 워싱턴 포스트 기고문에서 차기 유엔 사무총장 문제에 대해 "미국으로선 불량정권에 압력을 가할 수 있는 강력한 사무총장이 이익"이라고 말해 한국을 염두에 둔 대목 아니냐는 점에서 주목됐다.
그러나 외교소식통은 '한국내 반미감정 등이 미국의 입장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라는 질문에 "유엔 사무총장은 기본적으로 개인 후보로서, 한국과의 인연이나 한국내 정치 지형과 별 관계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총장이 되면 개인으로 봉사하는 것이지 한국 정부의 입장을 반영하지 않고 그래서도 안된다"며 "그동안 대국 출신이 총장이 안된 것도 이런 점을 감안한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볼턴 유엔주재 미 대사는 지난달 유엔에서 반 장관과 만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나는 반 장관이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 워싱턴에 근무할 때부터 아는 사이고, 그를 매우 존경한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었다.
윤동영 특파원 ydy@yna.co.kr (워싱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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