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2월13일 열린 '투옥문인의 밤' 행사에서 박노해 시인, 황석영 소설가 등의 사진이 걸려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북한 남파간첩보다 죄질이 훨씬 더 중하다고 할 것인데, 남파간첩의 경우 주로 무기징역형이 선고되어 왔다. 합당한 형이 선고됐다고 본다.”
1991년 시인 박노해씨가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활동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것을 두고 주한 독일대사가 “극소수 극렬 테러리스트에게만 무기징역이 선고되는 독일과 비교해 상당히 중형이 아닌가”라고 묻자 당시 외무부 인권과장의 답변이다.
외교부가 1991년 외교문서 40만5천쪽 분량을 15일 공개하면서 당시 노태우 정부가 열악한 국내 인권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을 피하고자 쏟았던 외교적 안간힘도 드러났다.
1991년 9월 외무부 인권과장은 한국 인권상황에 관심을 가졌던 주한독일대사관 1등서기관과 만나 “소위 양심수, 정치범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한결같이 고문을 받았다고 주장하나 그런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으로, 고도의 전술 전략 중 일환일 뿐”이라고 말했다. 당시 인권과장은 “근래 한국의 인권상황은 매우 향상되었다고 생각한다. 인권보장을 위한 각종 제도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수준에 도달해 있으므로, 제도상의 결함으로 인한 구조적인 인권유린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인권과장은 91년 5월 영국 외무성 한국 담당관에게 고문이나 가혹한 행위를 거론하며 “이런 잘못은 그 공무원의 인격과 자질에서 비롯된 문제이지 정부의 정책이나 제도가 잘못되었기 때문은 아니다”라면서 인권 문제를 일선 공무원 개인의 잘못으로 돌렸다.
1987년 ‘김근태 고문사건'을 국제사회에 폭로해 남편(김근태)과 함께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공동 수상한 부인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미국에 열린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가 출국을 막으려던 했던 것도 밝혀졌다.
안기부는 1990년 (인재근 의원에게) “여권 발급을 허가할 경우 정부가 외부 압력에 굴복하는 인상을 주고 향후 유사 사례 발생 시 반정부 인사들이 이를 전례로 삼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방미 불허 입장을 밝혔다. 이후 인 의원이 집시법 위반 혐의 불기소 처분을 받자 외무부는 여권을 발급했다. 이후 외무부 미주국에서는 출국한 인 의원이 참석한 시상식 상황과 하버드대 연구소에서 한 강연의 주요 내용도 정리해 보고했다.
권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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