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남북 쌀 직교역 등을 미국이 반대했던 내용이 담긴 외교문서가 30년 만에 공개됐다. 외교부
노태우 정부가 1991년 남북관계 개선 방안으로 추진했던 남북 쌀 직교역 등이 미국 농업계의 반대로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던 상황이 30년 만에 드러났다. 당시 미 국무부는 “미국이 남북 쌀 직교역을 중단 요구했다”는 보도를 부인했지만, 외교부가 15일 공개한 비밀해제 외교문서에는 당시 미국의 반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1991년 남북 쌀거래는 한미 관계 현안으로 등장했다. 한국 천지무역상사는 1991년 3월 북한 금강산국제무역개발회사와 쌀 10만t을 북한산 무연탄 3만t 및 시멘트 1만1천t과 교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이상옥 외무부 장관은 4월 5일 주미대사에게 거래 사실을 미국에 설명하라면서 “국가 간의 교역이 아닌 남북한 간의 물물교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으로 미국의 대외 쌀 수출시장을 교란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 바람”이라고 지시했다. 당시 정부는 쌀 직교역을 계기로 남북 간접 교역을 남북 직교역 전환 및 합작투자 촉진 등 남북 경제협력으로 본격 추진할 계획이었다.
4월17일 주미대사관과의 면담에서 미 국무부는 쌀 교역 총 규모가 10만t이라는 언론 보도에 관해 물으면서 “미국 양곡 도정업자 협회 등에서 남북한 간 직교역이 국제 쌀 거래 질서에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를 남기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금번 거래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남북관계에서 이번 쌀거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상업적 시각에서만 계속 문제시하는 경우 한국 국내 여론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미국 농무부가 계속 이의를 제기했다. 미 농무부 무역과장은 4월18일 주미대사관과 면담에서 한국이 1990년 말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서 보여준 입장에 불만을 표시하며 “대북 쌀수출도 미국의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해 7월 2일 국무부에서 열린 한미 외무장관 회담에서도 이 문제가 주요 안건으로 논의됐다.
로버트 젤릭 국무부 경제차관은 쌀 거래 규모가 더 커지거나 한국이 국내 쌀 시장을 개방하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이 한국산 쌀을 재수출할 경우 “미국 내 쌀 생산업계 등 이해관계 단체를 납득시키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쌀 생산업계가 법적 조처를 취할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한국이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의 의무면제(waiver) 규정을 통해 남북 쌀 거래를 국내거래로 인정받을 것을 제안했다. 미국은 7월18일 “기본적으로 미국으로서도 남북한 간 쌀 거래에 반대하지는 않으나 유사한 거래가 GATT나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등의 테두리 내에서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본다”는 입장을 통보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GATT로부터 의무면제를 확보하기 쉽지 않다고 봐서 미국의 제안에 부정적이었다. 결국 90년대 중반 이후 핵문제 등으로 남북관계가 얼어붙고 미국을 비롯한 쌀 수출국들과 통상 마찰 우려로 남북 쌀 교역은 확대되지 못했다.
권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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