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용 전 캐나다 대사. 조희용 전 대사 제공
1992년 한국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뭔지 묻는다면, 대다수 한국인은 중국(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를 꼽을 터. 중국은 한국의 압도적 1위 교역국이다. 그러니 2022년을 한-중 수교 30돌로 기념하는 건 한국인과 한국사회엔 자연스런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36년간 외교 현장을 누비다 2015년 퇴직한 조희용(66) 전 캐나다 대사한테 2022년은 “중화민국”(대만)과 단교한 지 30년이 되는 해다. 1992년 8월24일은 한-중 수교일이자, 대한민국과 중화민국의 단교일이다.(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 때 약속한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중화민국’이 아닌 ‘대만’이라 부른다)
다들 ‘중국’을 얘기하는 와중에, 조희용 전 대사는 <대만 단교 회고: 중화민국 리포트 1990~1993>(도서출판 선인)이라는 549쪽짜리 ‘벽돌책’을 세상에 내놨다. 제목에 ‘회고’란 단어가 있고 “중화민국과 외교관계를 단절한 지도 어언 30년이 되어간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지만, 이 책을 회고록이라 부르긴 어렵다. 오히려 한국-대만 단교를 다룬 전문 연구서이자 1차 문헌과 증언을 정성껏 모아 체계적으로 정리해놓은 방대한 자료·해제집에 가깝다. “외교관은 기본적으로 매일 읽고 듣고 말하고 쓰는 직업”이라고 여겨온 그의 꼼꼼한 기록과 오랜 자료 수집과 연구가 밑거름이 됐다.
한국이 중국과 손을 잡느라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고 옛 친구를 버리는 것은 동양의 윤리에 맞지 않다”던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다짐을 뒤로 하고 사전 통보도 없이 대만의 손을 매몰차게 뿌리친 1992년, 그는 주중화민국 한국대사관 1등 서기관이었다. 1979년 외교부에 발을 디뎠으니 경력 10여년의 실무자일 때다. 그런데 그는 왜 외교관으로서 대표 이력이라고 할 외교부 대변인이나 스웨덴·캐나다 대사 시절이 아닌 30대 실무 외교관 때의 경험을 ‘회고’의 대상으로 삼았을까?
“중화민국이라는 나라와 친절한 친구들은 늘 마음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뭔가 그들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고 그는 책에 적었다. 대만(사람들)에 대한 “마음의 빚”은 평생을 외교관으로 지낸 ‘개인 조희용’의 집필을 다그친 가장 강력한 동력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퇴직 외교관 조희용’이 침침한 눈을 비비며 굳이 이 책을 쓴 까닭은 대만과 단교 과정이 “한국 외교의 고질병”을 성찰할 반면교사라 여겨서다.
“단교 당시 실무 외교관인 제가 받은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조직에 대한 배신감, 한국 외교에 대한 회의 탓에 ‘이런 외교관 생활을 계속해야 하나’라고 고민했을 정도예요. 대만 사람들은 오죽했겠어요? 그 사람들이 얼마나 마음의 상처가 심했으면 한국과 대만 사이에 민항기가 다시 오가는 데 단교 이후 12년이나 걸렸겠어요?”
대만은 한국의 단교에 대한 보복으로 민항기 상호 운항을 중단시켰는데, 한-대만 정기 노선 복항은 한국 국적기는 2004년 12월, 대만 국적기는 2005년 3월에야 이뤄진다. 단교 이듬해 비공식 관계 수립에 합의해 상호대표부를 설치·운영(주타이베이한국대표부 1993년 1월, 주한타이베이대표부 1994년 1월)하고도 10년이 더 필요했다. 그만큼 마음의 응어리가 크다는 방증이다.
36년 외교현장 누비다 7년 전 퇴직
주중화민국 대사관 시절 단교 경험
최근 연구서 ‘대만 단교 회고’ 출간
‘1차 문헌·증언 빽빽한 자료·해제집’
“대만에 대한 부채의식이 집필 동력
단교 때 중화민국 존중·배려 크게 결여”
조 전 대사가 문제 삼는 건 ‘한-중 수교, 한-중화민국 단교’ 그 자체가 아니다. “단교라는 (불가피한) 선택보다는, 단교 과정에서 중화민국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크게 결여돼 그간 쌓아온 공통 기반을 무너뜨렸다.” 한마디로 “역사에 대한 이해와 전략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헌법 전문에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일제에 맞설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 나라가 다름 아닌 중화민국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거듭 상기시켰다. 더구나 대만은 한국의 제5위 교역대상(2020년 기준)이고, “트랜스젠더 장관이 있고 여성 의원이 40%를 넘어서는, 민주주의와 거버넌스 측면에선 네덜란드나 벨기에와 어깨를 견줄 강소국”이다.
무엇보다 그는 “외교는 ‘제로섬’이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한다. 그한테 ‘외교’란 “결국 상대국과 공통 기반을 확대하며 현안을 해결하는 작업”이며 “그 과정에 상대방을 역지사지(易地思之)하고 최대한 존중하고 세심히 배려하는 자세가 필수적”이다.
그가 문제 삼는 한국외교의 ‘고질병’은 이렇다. “대국 몇 나라와 북한 중심의 외교를 하다 보니, 다른 주요 국가와 중·소국과의 축적된 교류와 협력 실적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상대국에 대한 시의적절한 배려와 투자를 소홀히 해 결과적으로 대국과의 관계는 물론 대부분의 양자관계에서 질적 변화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물론 다수 언론·전문가가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4국과 북한에만 주로 관심을 두는 현실을 겨냥한 말처럼 들린다.
그래서 ‘외교관 조희용’이 현재와 미래의 한국 외교에 건네고 싶은 말은? 첫째, “세상에 중요하지 않은 나라는 없다”. 둘째, “외교 현장과 실무선에서 모은 게 외교에서 가장 중요하다. 이런 밑바닥 과정이 없이 거창한 위의 것이 나올 수 없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