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장을 줘도 시원찮을 판에 느닷없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미주지부장 직무정지에 자문위원 해촉 통보까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많아요.”
최광철 ‘미주 민주참여 포럼’(Korean American Public Action Committee: KAPAC) 대표는 최근 민주평통 사무처한테서 미주지부장 직무정지(1월5일)와 민주평통 자문위원 해촉 통보(2월1일)를 잇달아 받은 사실과 관련해 주변에서 의아해하는 반응을 전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사연은 이렇다. 최 대표는 한반도의 평화를 바라는 재미동포들과 힘을 모아 지난해 11월14~16일 미국 워싱턴 디시에서 ‘한반도 평화 회의’(Korea Peace Conference)를 열었다. “미국의 시민권자, 유권자, 납세자로서 ‘한반도평화법안’(HR 3446)에 대한 지지를 천명하고 더 많은 연방 상하원 의원들한테 공동 발의를 촉구”하려는 행사였다. 하원 외교위원장과 법사위원장을 포함해 연방의원 12명이 행사에 참석했다. ‘한반도평화법안’을 대표발의한 브래드 셔먼 하원의원(민주·캘리포니아)은 행사에 참석해 “더 많이 모여, 더 크게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격려했다. 재미동포단체가 주최한 행사에 12명의 연방의원이 참석한 건, 전례가 없을 뿐더러 ‘전설’로 불릴만한 일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셔먼 의원은 최근 ‘미주민주참여포럼’ 새해 행사에 참석해 117대 의회 종료로 자동폐기된 ‘한반도평화법안’을 3·1절에 맞춰 118대 의회에서 다시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셔먼 의원은 “한국민 72%가 북한과 평화협정을 원한다. 특히 휴전선 이북에 가족을 둔 대다수 한국계 미국인이 원한다. 그게 우리가 이 법안을 재발의하려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한반도평화법안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한반도 영구 평화를 위한 청사진 작성 △미국-북한 상호 연락사무소 설치 △북미 이산가족 상봉 추진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국제자유주권총연대 등 미국 내 112개 한인단체가 “최광철과 미주민주참여포럼은 대한민국 전복과 반헌법 행사를 수차례 주도해 교민사회에 분란을 초래했다”며 “최광철을 해임하라”는 긴급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자 민주평통 사무처는 1월5일 최광철 민주평통 미주지부장한테 전자우편으로 직무정지를 통보했다. “부적절한 직무 수행”, “미주지역 내 분란과 갈등”, “다수의 민원이 제기됨” 따위를 이유로 들었다. 부적절할뿐더러 위법한 행정행위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한 자문위원이 사무처에 제기한 비판은 통렬하다. “‘한반도평화법안’을 지지하면 민주평통을 나가라는 얘기냐? 오히려 민주평통 사무처가 격려하고 응원해야 마땅한 일 아닌가? ‘한반도 평화 회의’를 주관한 민주평통 위원들을 조사하고 퇴출시키려 한다면 과연 민주평통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나 민주평통 사무처는 내처 2월1일 최광철 대표의 민주평통 자문위원 자격을 박탈하는 ‘해촉 통보’를 했다.
워싱턴서 한반도평화회의 열어
연방의원 12명 참석, 법안 지지
“전례 없는 쾌거” 찬사 쏟아져
일부 한인단체 “교민 분란” 성명
민주평통, 직무정지·해촉 통보
최대표 등 재미동포들 법적 투쟁
최 대표는 민주평통 사무처의 행태가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심신이 지쳐 ‘저들이 바라는 대로 물러나 줄까’ 고민했다. “그런데 주변에 물으니 25명 가운데 24명이 ‘절대 자진사퇴하면 안 된다’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최 대표, 그리고 그와 뜻을 함께하는 재미동포들은 김관용 수석부의장과 석동현 사무처장이 이끄는 윤석열 정부의 민주평통 사무처를 상대로 법적 투쟁에 나서게 됐다.
최 대표는 1965년생으로 서울에서 대학을 마치고 13년간 회사원 생활을 하다 2004년 뒤늦게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공부를 마치면 귀국할 생각이었는데, 여러 이유로 미국에 정착했다. 백인이 아니면 자리 잡기 어려운 미국 골프업계에서 골프공·인조잔디 등을 납품하는 “작지만 강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특유의 근성과 친화력이 도움이 됐다. 최 대표가 창립을 주도한 ‘미주민주참여포럼’은 ‘재미 한인 사회의 정치력 향상’과 ‘한반도 평화’라는 두 개의 가치에 동의하는 이들이 힘을 모아 두 가치를 현실에 구현하려는 재미 한인 유권자단체다. 그는 재외한인은 조국과 거주국 사이에 가교가 돼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그는 미국 시민권자인데, 주변 사람들한테 “조국을 위해 국적을 바꿔라”라며 거주국 국적 취득에 적극 나서라고 권한다. 지난해 11월 ‘한반도 평화 회의’를 조직한 까닭도 다르지 않다.
지난달 서울 중부경찰서에 고발장을 낸 최광철 대표는 지난 6일 중부서에 출석해 직접 고발인 진술을 했다. 14일 밤 <한겨레>를 만나 “석동현 사무처장은 재미동포사회의 갈등·분열을 부채질할 게 아니라 ‘통일에 관한 국내외 여론 수렴’(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법 2조1항)이라는 민주평통의 초당파적 존재 이유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5일 사랑하는 가족과 회사, 단체가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로 돌아갔다.
이제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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