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19일 오전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채택에 따른 후속 대책 등을 논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미 재무차관, 정부 외교안보 고위층 두루 면담
개성공단·금강산관광 등 미 의중 전달 가능성
개성공단·금강산관광 등 미 의중 전달 가능성
레비 차관 뭘 협의했나
스튜어트 레비 미국 재무차관은 18일 서울에서 직접적 협의 상대역인 진동수 재정경제부 제2차관과 유재한 금융정보분석원 원장은 물론, 유명환 외교통상부 제2차관, 송민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등 외교안보 분야 고위 인사들을 두루 만났다. 그만큼 서로 나눌 얘기가 많았다는 것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19일 “레비 차관이 ‘미 행정부 안에서 2000년 6월 발효한 대북 경제제재 일부 해제 조처를 (제재 쪽으로) 복원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 당국자는 “레비 차관의 16~18일 방한 일정은 오래 전에 잡힌 것이고, 정책조율이 아닌 의견교환 성격의 방한”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몰리 밀러와이즈 미국 재무부 대변인의 말은 다르다. 그는 18일(현지시각) “미국 정부는 유엔 대북 결의(1695호)가 이미 채택된 만큼 유엔 회원국들과 협조해 북한의 미사일과 대량살상무기(WMD)를 지원하는 금융망을 차단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레비 차관은 미국 대북 금융제재의 최고위급 책임자다. 그의 방한에 담긴 메시지를, 그가 무슨 말을 했건 의견교환으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다. 한국에 이어 베트남·싱가포르·일본으로 이어지는 이번 순방에서 북한으로 가는 돈줄을 차단하려는 조처를 논의할 가능성이 높다.
레비 차관은 또 송 실장 등과 면담 때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대한 조처는 불가피한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그렇다고 미국이 중국에서 가져간 방코델타아시아 관련 장부에 대한 조사 결과를 이른 시일 안에 내놓을 것 같지도 않다. 레비 차관은 정부 고위 인사들과 면담에서 “화이트칼라 범죄를 다뤄본 경험에 비춰볼 때 (조사에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6자 회담 복귀의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있는 ‘금융제재 해제’는 당분간은 꿈도 꾸지 말라는 얘기다.
레비 차관이 지난 4월 의회에 나와 “대북 금융제재는 불법활동에 타격을 줘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좌절시키고 있다”고 강조한 점에 비춰보면, 미국은 대북 금융제재의 ‘효과’에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안보리 결의는 추가 제재조처의 명분도 주고 있다.
이와 관련해 레비 차관은 개성공단 및 금강산관광 사업과 관련해 정부 고위인사들과 폭넓게 의견을 주고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우선은 한국 쪽의 의견을 듣는 쪽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관심’ 표시를 통해 의중을 내비쳤을 수 있다. 또, 미국 언론을 통해서든 다른 경로로 어떤 식으로든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은 있다.
정부는 반기문 외교부 장관의 정례 브리핑에서 개성공단 사업은 그대로 간다는 방침을 분명히했다. 송민순 실장도 ‘개성공단과 금강산 사업이 안보리 결의와 상충한다’는 일부의 지적에, “안보리 결의에서 정한 국내 법령, 사법적 판단, 국제법 취지 등의 범주 측면에서 문제가 없다는 생각을 (미국 쪽에) 전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개성공단·금강산관광 등 남북경협사업의 축소 또는 중단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레비 차관은 18일(현지시각) 미국 재무부를 통해 내놓은 성명에서 방한 협의 결과가 “생산적이고 배울 점이 있었다”고 밝혔다. 성명에서 밝힌 ‘배울 점’이 한국정부의 이런 의지를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금융제재 주도 대북 강경론자
레비 차관 누구
스튜어트 레비 미 재무부 테러 및 금융정보 담당 차관은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를 ‘돈세탁 우선 우려대상’으로 지정하는 등 대북 금융제재를 주도했다. 재무부 차원에서 부시 행정부의 확산방지구상을 책임지고 있는 레비 차관은, 정보분석국을 관장하면서 국제테러조직에 대한 자금줄 차단, 이른바 북한 등 ‘불량국가’들에 대한 경제제재,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등을 맡고 있다.
그는 “위폐제조에서 마약밀매, 대량살상무기 확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불법 행위에 관여하고 있는 북한이 전 세계, 특히 미국의 금융체계에 접근할 수 없도록 막는 것이 미 재무부의 역할”이라고 공언할 정도로 대북 강경론자다. 그는 특히 “방코델타아시아에 대한 제재는 불법행위로부터 미국의 금융체제를 보호하기 위한 조처일 뿐, 6자회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타협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여왔다.
그는 2004년 7월 재무부 차관에 임명되기 전까지 법무부 차관보와 차관 비서실장으로 법무부 차원의 대테러대책을 담당해 왔다. 하버드 대학과 법대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뒤 워싱턴의 법률회사에서 11년 동안 화이트칼러 범죄에 대한 변호를 맡았다.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hoonie@hani.co.kr
레비 차관은 18일(현지시각) 미국 재무부를 통해 내놓은 성명에서 방한 협의 결과가 “생산적이고 배울 점이 있었다”고 밝혔다. 성명에서 밝힌 ‘배울 점’이 한국정부의 이런 의지를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금융제재 주도 대북 강경론자
레비 차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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