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왼쪽)이 지난 24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5차 아세안지역포럼(ARF) 전체회의에서 조지 여 싱가포르 외무장관과 이야기하고 있다.
싱가포르/연합뉴스
[책임지는 사람 없는 ‘망신외교’]
더 얼어붙은 남북관계
더 얼어붙은 남북관계
정부 ‘10·4선언 부정’에 북과 대립 격화
금강산 피격·대북식량지원 현안 더 꼬여 “남북관계에 큰 악재다.” 통일부 고위당국자가 사석에서 하는 말이다. 아세안지역포럼(ARF) 외무장관 회담 의장성명에서 ‘10·4 정상선언’ 관련 문구 삭제는 가뜩이나 경색된 남북관계를 더욱 얼어붙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이후 6·15선언과 10·4선언과 관련해 조금씩이나마 전향적으로 나아가던 이명박 정부의 태도가 정권 출범 초기로 다시 후퇴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남과 북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다섯달 째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계승·이행 여부를 놓고 팽팽히 맞섰다. 북쪽은 6·15와 10·4선언 계승·이행 의지 표명을 남북관계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에 맞서 남쪽은 6·15와 10·4선언 계승·이행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모호한 태도를 고수했다. 북쪽은 의장 성명의 삭제 과정을 지켜본 뒤 이명박 정부가 6·15선언의 실천강령인 10·4선언에 대한 존중 의지가 없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은 “의장 성명 파문은 10·4 선언에 대한 한국의 부정적 인식을 국제사회와 북쪽 모두한테 공표한 셈”이라고 말했다. 당분간 남북 사이에는 남북관계 경색의 책임을 서로에게 돌리는 거친 말싸움과 대립이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금강산 총격 피격 사건, 금강산 관광 재개, 대북 식량 지원 등 남북간 현안들도 상당기간 풀리지 못하게 된다. 정부 관계자는 “금강산 사건 진상 조사 요구를 북쪽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더욱 줄었다”며 “남북관계 냉각기가 더욱 길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여당 쪽도 ‘10·4선언 전면 부정’ 여파를 우려한다. 이에 따라 남쪽이 싱가포르에서 10·4 관련 내용을 모두 삭제하도록 요청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의장 성명 문안 중 “10·4선언에 기초해”란 부분만 빼달라고 했다는 것이지, 한국 정부가 10·4선언 자체를 부정한 적이 없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남쪽의 대북 정책에 대한 불신이 깊은 북쪽이 이런 설명을 받아들이긴 어려워 보인다. 정부는 지난 4월까지 6·15와 10·4란 단어 자체를 공식적으로 언급하기 꺼렸다. 지난 3월26일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남북간 기본 정신은 1991년 체결된 기본합의서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6·15 선언과 10·4선언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이다. 정부의 태도는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김하중 통일부 장관은 지난 5월 이후 “정부는 상호존중의 정신하에서 남북협의를 통해 실천 가능한 6·15와 10·4 등 이행방안을 검토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여러차례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1일 국회 개원 연설에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등에 대한 이행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남북관계 전문가들은 이 대통령 제안을 ‘진일보한 의미있는 입장 변화’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의장 성명 파문으로 대북 정책이 다섯달전 정권 초기 입장으로 되돌아갔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게 됐다. 남북관계 경색 장기화도 불가피해 보인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금강산 피격·대북식량지원 현안 더 꼬여 “남북관계에 큰 악재다.” 통일부 고위당국자가 사석에서 하는 말이다. 아세안지역포럼(ARF) 외무장관 회담 의장성명에서 ‘10·4 정상선언’ 관련 문구 삭제는 가뜩이나 경색된 남북관계를 더욱 얼어붙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이후 6·15선언과 10·4선언과 관련해 조금씩이나마 전향적으로 나아가던 이명박 정부의 태도가 정권 출범 초기로 다시 후퇴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남과 북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다섯달 째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계승·이행 여부를 놓고 팽팽히 맞섰다. 북쪽은 6·15와 10·4선언 계승·이행 의지 표명을 남북관계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에 맞서 남쪽은 6·15와 10·4선언 계승·이행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모호한 태도를 고수했다. 북쪽은 의장 성명의 삭제 과정을 지켜본 뒤 이명박 정부가 6·15선언의 실천강령인 10·4선언에 대한 존중 의지가 없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은 “의장 성명 파문은 10·4 선언에 대한 한국의 부정적 인식을 국제사회와 북쪽 모두한테 공표한 셈”이라고 말했다. 당분간 남북 사이에는 남북관계 경색의 책임을 서로에게 돌리는 거친 말싸움과 대립이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금강산 총격 피격 사건, 금강산 관광 재개, 대북 식량 지원 등 남북간 현안들도 상당기간 풀리지 못하게 된다. 정부 관계자는 “금강산 사건 진상 조사 요구를 북쪽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더욱 줄었다”며 “남북관계 냉각기가 더욱 길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여당 쪽도 ‘10·4선언 전면 부정’ 여파를 우려한다. 이에 따라 남쪽이 싱가포르에서 10·4 관련 내용을 모두 삭제하도록 요청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의장 성명 문안 중 “10·4선언에 기초해”란 부분만 빼달라고 했다는 것이지, 한국 정부가 10·4선언 자체를 부정한 적이 없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남쪽의 대북 정책에 대한 불신이 깊은 북쪽이 이런 설명을 받아들이긴 어려워 보인다. 정부는 지난 4월까지 6·15와 10·4란 단어 자체를 공식적으로 언급하기 꺼렸다. 지난 3월26일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남북간 기본 정신은 1991년 체결된 기본합의서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6·15 선언과 10·4선언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이다. 정부의 태도는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김하중 통일부 장관은 지난 5월 이후 “정부는 상호존중의 정신하에서 남북협의를 통해 실천 가능한 6·15와 10·4 등 이행방안을 검토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여러차례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1일 국회 개원 연설에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등에 대한 이행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남북관계 전문가들은 이 대통령 제안을 ‘진일보한 의미있는 입장 변화’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의장 성명 파문으로 대북 정책이 다섯달전 정권 초기 입장으로 되돌아갔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게 됐다. 남북관계 경색 장기화도 불가피해 보인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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