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9일 한-러 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로 2015년 러시아 천연가스 도입 합의와 전략적 관계로의 외교관계 격상 두 가지를 꼽았다. 정부는 특히 러시아-북한-남한을 파이프로 연결하는 천연가스 도입(PNG)이 현실화되면, 자원 확보뿐 아니라 남북관계에도 새로운 진전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자원외교 러시아 천연가스 도입 사업 추진은 천연가스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는 우리나라와 동시베리아 가스전 개발로 극동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다. 정부는 이번 사업으로 중동과 동남아시아 위주였던 천연가스 도입원을 러시아로 다변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파이프라인을 통한 천연가스 도입으로 가격인하 효과도 바라보고 있다. 3천㎞ 이하의 근거리일 경우 가스배관을 통한 천연가스 도입이 배로 액화천연가스(LNG)를 실어나르는 것보다 비용면에서 유리하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는 700㎞에 불과하다. 1992년과 99년에도 민간업체의 주도로 몽골과 중국을 파이프로 연결하는 방식의 러시아 천연가스 도입이 추진된 바 있다.
이 사업의 성패는 북한 내 가스배관 설치 및 통과 문제에 달려 있다. 정부는 천연가스 공급국인 러시아가 북한과의 협의에 적극 나서고 있고, 북한으로서도 한 해 1억달러 이상의 배관통과료 수입을 챙길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성사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경색된 남북 관계를 고려할 때, 북한이 가스배관 통과를 허용할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도 많다. 실제 과거 이런 방식의 사업이 구상됐지만, 북한의 수용 가능성이 낮고 공급 안정성과 에너지 안보 문제가 걸려 있어 미뤄져 왔다. 두 나라는 만약 북한 경유 가스배관 도입이 좌절될 경우,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액화천연가스를 배로 실어 나르기로 했다.
■ 북핵 문제와 관계 격상 북핵 문제와 관련해 두 나라는 “6자 회담 틀 안에서의 협의와 협력을 강화해 9·19 공동성명의 목표를 조속히 실현한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남한의 대북정책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두 나라는 공동성명에서 “이 대통령은 상생·공영의 남북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고자 하는 한국 정부의 노력을 러시아 쪽에 설명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남북 대화 및 협력을 지지함을 확인하고 이것이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두 나라 입장을 각각 병기하는 방식은 과거 노무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 남한의 대북정책에 대한 러시아의 지지 의사가 분명히 표명됐던 것과 비교된다. 러시아가 북한을 배려함과 동시에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나타낸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한국과 러시아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관계를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격상했다. ‘전략적 관계’란, 협력 의제가 양자 차원에서 지역 및 세계로 다양화되고, 협력 범위도 경제 이외의 정치·외교·군사 등 모든 영역으로 확대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러시아는 미국과 ‘전략 대화그룹’, 유럽연합(EU)과 ‘동반자 관계’, 중국과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다. 이번 외교관계 격상으로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와 같은 지위를 얻게 된 것이다.
모스크바/권태호 기자, 이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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