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슬린 스티븐스/주한미국대사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에게 “역대 주한 미국 대사 중 인기가 가장 높은 것 같은데, 비결은 뭐냐”고 묻자,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는 “한국인들이 내가 한국어를 말하려는 노력과 한국에 대해 배운 것들을 좋게 평가해 줘서 매우 감동했다”며 “그런 것들이 내가 빠르게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책에 대한 무거운 질문들이 끝나고 개인적인 질문들이 이어지자, 스티븐스 대사는 유창한 한국어를 섞어가며 유쾌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본인의 한국어 실력에 스스로 점수를 줘보라고 하자, 그는 한국어로 “부족해요. 정치는 C, 경제는 C, 사회에 대해 하면은 C, 알아듣는 능력은 조금 더 강하고, 말하는 능력은 조금 나빠요”라며 ‘겸손한’ 성적표를 매겼다.
-한국어를 배울 때 흥미로운 일화가 있나? 어려웠던 점은?
“한국어는 정말 어렵다. 아이들과 얘기할 때 더 어렵다. (한국어로) 우리 외국사람들이 한국말 배울 때 항상 존대말로 배우잖아요. 그래서 아이들하고 얘기할 때 항상 존대말로 하죠, 그래서 반말 못해요.”
-한국 사회는 아직도 보수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사회인데, 최초의 여성 주한 대사로서 어려움은 느끼지 않는지?
“한국사회에 대해, 한국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해 배우고 있다. 나는 55살이다. 내가 겪은 모든 사회는 남성중심적 사회였다. (웃음) 남성중심적 사회를 많이 경험해 왔기 때문에 익숙하다. 물론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으로 간주되는 부분에서 여성이 일할 때는 더 눈총 받고, 주목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제는 익숙하다.”
-외교관으로서 또는 개인적으로,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단호하고 직접적’(tough and direct)이다.(웃음) 대학교 시절 교수의 충고를 새겨두고 있다. ”외국에 대해 배우려면 현지의 음식을 먹고 언어를 배우라“는 충고였다. 외교관은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는 잘 듣는 사람, 이해하려 하는 사람, 소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한국대사가 되고자 하는가? 대사로서의 목표는? “한미간의 매우 특별한 관계를 새로운 지평에 올리는 것이다. 우리의 아젠다를 진전시키려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인들이 21세기에 마땅히 누려야 할 기회를 누릴 날을 앞당기려 노력하는 것이다.” -한국의 분단은 한국인들이 선택한 게 아니었다. 외세에 의해 분단되었고, 한국인들은 저항했다. 통일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나? “한국의 분열은 20세기의 가장 고통스럽고 비극적인 사건이었다고 생각한다. 조만간 통일이 이뤄지는 것을 보기를 희망한다. 나는 변화를 믿는다. 한국에서 내가 경험한 것들, 유럽에서 냉전 이후의 시기를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도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어쨌든 이제 우리는 변화를 요구하는 대통령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33년 전 평화봉사단으로 처음 한국에 와 영어를 가르친 것을 시작으로 맺은 한국과의 오랜 인연에 대해 그는 “우연이었을 수도 있고, 운명이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왜 한국과 유독 깊은 관계를 맺게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동아시아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었다. 대학시절 미국이 베트남에 관여했다는 것도 이유일 것이다. 대학 3학년이던 18살때 홍콩에 갔고, 평화봉사단에 참가해 한국에 왔다. 한국과의 인연은 우연이었을 수도 있고, 운명이었을수도 있다.” -대학시절 반전 활동에 참가했나? “매우 보수적인 지역, 애리조나에서 자랐다. 적극 반전 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오빠와 사촌, 친구들은 전장에 갔다. 그것은 미국 사회를 분열시켰고, 세계에서 미국의 역할에 대해 혼란스럽게 느끼기도 했다.” -처음 한국에 온 30년 전과 비교한다면, 그동안 한국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70년대에 미국에서 공부하는 한국인은 거의 없었고, 미국인을 본 사람도 별로 없었다. 당시 내가 예산에서 유일한 미국인이었다. 한국인들의 미국에 대한 경험은 거의 없었다. 이제는 서울뿐 아니라, 예산, 광주 등 어느 도시를 가든 많은 한국인들의 친지가 미국에서 공부하거나 일한다. 두나라 사이에 인적 관계가 엄청나게 깊어졌다. 한국은 (한국어로) ‘우물안 개구리’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게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한다.” -30년 넘게 전문 외교관으로서 살아왔다. 왜 외교관이 되었나? 외교관으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아시아 공부를 하고 중국어와 한국어를 배우면서, 미국의 미래는 아시아와 긴밀히 연결될 거라고 생각했다.개인적으로 이 지역에 깊은 관심이 생겼고, 너무나 매력적이고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외교관으로서 국가에 봉사하고 싶었고, 미국이 세계 평화와 더 많은 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데 공헌하고 싶었다.” -아들 제임스와도 한국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하다. 아들은 한국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제임스는 한국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고, 한국인, 한국계 미국인 친구도 많다. 버지니아 북부 애넌데일(한국인들이 밀집해 사는 지역)에서 고등학교에 다닐 때 코리아타운에서 한국 요리도 많이 먹고, 한국어를 배우려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한국어는 못한다. 한글은 읽는다.” 아들이 미국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어, 한국에서 그의 가족은 토종 삽살개 두마리다. -바쁜 업무가 끝나고, 여가 시간에는 무엇을 하는지? “삽살개 두 마리를 기르고 있는데, 여가시간은 삽살개들과 함께 보낸다. 몇 년 전 미국에 있을 때 삽살개에 대해 들었고, 한국에 와서 인터넷을 통해 분양받았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모두 너무나 좋아한다. 하나만 골라 말하기 어렵다. 어제 비보이스 공연을 보러갔다가 삼계탕을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정리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어떤 한국대사가 되고자 하는가? 대사로서의 목표는? “한미간의 매우 특별한 관계를 새로운 지평에 올리는 것이다. 우리의 아젠다를 진전시키려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인들이 21세기에 마땅히 누려야 할 기회를 누릴 날을 앞당기려 노력하는 것이다.” -한국의 분단은 한국인들이 선택한 게 아니었다. 외세에 의해 분단되었고, 한국인들은 저항했다. 통일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나? “한국의 분열은 20세기의 가장 고통스럽고 비극적인 사건이었다고 생각한다. 조만간 통일이 이뤄지는 것을 보기를 희망한다. 나는 변화를 믿는다. 한국에서 내가 경험한 것들, 유럽에서 냉전 이후의 시기를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도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어쨌든 이제 우리는 변화를 요구하는 대통령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33년 전 평화봉사단으로 처음 한국에 와 영어를 가르친 것을 시작으로 맺은 한국과의 오랜 인연에 대해 그는 “우연이었을 수도 있고, 운명이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왜 한국과 유독 깊은 관계를 맺게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동아시아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었다. 대학시절 미국이 베트남에 관여했다는 것도 이유일 것이다. 대학 3학년이던 18살때 홍콩에 갔고, 평화봉사단에 참가해 한국에 왔다. 한국과의 인연은 우연이었을 수도 있고, 운명이었을수도 있다.” -대학시절 반전 활동에 참가했나? “매우 보수적인 지역, 애리조나에서 자랐다. 적극 반전 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오빠와 사촌, 친구들은 전장에 갔다. 그것은 미국 사회를 분열시켰고, 세계에서 미국의 역할에 대해 혼란스럽게 느끼기도 했다.” -처음 한국에 온 30년 전과 비교한다면, 그동안 한국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70년대에 미국에서 공부하는 한국인은 거의 없었고, 미국인을 본 사람도 별로 없었다. 당시 내가 예산에서 유일한 미국인이었다. 한국인들의 미국에 대한 경험은 거의 없었다. 이제는 서울뿐 아니라, 예산, 광주 등 어느 도시를 가든 많은 한국인들의 친지가 미국에서 공부하거나 일한다. 두나라 사이에 인적 관계가 엄청나게 깊어졌다. 한국은 (한국어로) ‘우물안 개구리’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게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한다.” -30년 넘게 전문 외교관으로서 살아왔다. 왜 외교관이 되었나? 외교관으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아시아 공부를 하고 중국어와 한국어를 배우면서, 미국의 미래는 아시아와 긴밀히 연결될 거라고 생각했다.개인적으로 이 지역에 깊은 관심이 생겼고, 너무나 매력적이고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외교관으로서 국가에 봉사하고 싶었고, 미국이 세계 평화와 더 많은 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데 공헌하고 싶었다.” -아들 제임스와도 한국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하다. 아들은 한국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제임스는 한국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고, 한국인, 한국계 미국인 친구도 많다. 버지니아 북부 애넌데일(한국인들이 밀집해 사는 지역)에서 고등학교에 다닐 때 코리아타운에서 한국 요리도 많이 먹고, 한국어를 배우려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한국어는 못한다. 한글은 읽는다.” 아들이 미국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어, 한국에서 그의 가족은 토종 삽살개 두마리다. -바쁜 업무가 끝나고, 여가 시간에는 무엇을 하는지? “삽살개 두 마리를 기르고 있는데, 여가시간은 삽살개들과 함께 보낸다. 몇 년 전 미국에 있을 때 삽살개에 대해 들었고, 한국에 와서 인터넷을 통해 분양받았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모두 너무나 좋아한다. 하나만 골라 말하기 어렵다. 어제 비보이스 공연을 보러갔다가 삼계탕을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정리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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