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슬린 스티븐스 미국대사
동분서주 심은경씨
5일 저녁 주한 미국대사 심은경씨가 서울 종로구에 있는 희망제작소를 찾았다. ‘심은경’은 캐슬린 스티븐스(사진) 미국대사가 1970년대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충남 예산중학교에서 영어 교사를 할 때 지은 한국 이름이다.
스티븐스 대사는 이날 희망제작소에서 ‘오바마 행정부와 미국의 변화 전망’을 주제로 100명 남짓한 청중과 두 시간 동안 대화했다. 미국 대사관 관계자는 “주한 미국대사가 시민운동단체 초청으로 강연을 한 건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요즘은 교통과 통신수단이 발달해 한-미 양국 외교장관들이 전화도 자주하고 상호방문도 많이 하지만, 그런데도 제가 한국에 부임한 것은 한국이 어떤지 느끼고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알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희망제작소 방문 및 강연도 그 일환이라는 뜻이다.
스티븐스 대사한테 한국 시민사회 영역과의 접촉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그는 지난해 9월 부임 뒤 문화·종교·지역·스포츠 등 영역을 가리지 않고 곳곳을 누비고 있다. <한국방송> ‘낭독의 발견’에 나와 김소월의 시와 김구 선생의 백범 일지를 읽었고, 판소리 명창 안숙선의 공연과 비보이 ‘라스트 포 원’의 갈라쇼, 영화 <워낭소리> 등을 봤다. 프로농구 올스타전의 시구를 했고, 해인사 템플스테이에도 참여했다. 6일에는 포털사이트 다음에 개설된 주한 미국대사관 인터넷 커뮤니티 ‘카페 유에스에이’에서 1시간 반 남짓 누리꾼들과 채팅을 했다.
현대사를 둘러싼 ‘인식 균열’이 심각한 예민한 영역도 회피하지 않는다. 지난 1월엔 현직 미국대사론 처음으로 백범기념관을 찾았고, 지난해 11월엔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찾았다. 그리곤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께 경의를 표합니다”라고 방명록에 한글로 적었다.
그는 미국대사관 누리집과 연결해 놓은 ‘심은경의 한국이야기’라는 블로그에 자신의 한국생활을 기록한 24편의 글을 한글과 영어로 적어 올려놨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그를 ‘한글홍보대사’로 위촉했는데, 정작 그는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저는 한국어를 공부한 지 33년이 됐는데도 왜 원하는 만큼 안 되는지 모르겠다”고 ‘겸손의 예’를 보였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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