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의 FTA 조건 수용…한-미 FTA와는 충돌할 듯
자국문화 보호 조치 인정…스쿼린쿼터 유지 근거
자국문화 보호 조치 인정…스쿼린쿼터 유지 근거
정부가 애초 방침을 바꿔, 각 나라 문화의 다양성을 국제법으로 보호하는 내용을 담은 ‘문화다양성 협약’의 비준을 추진하기로 했다.
문화체육관광부 핵심 관계자는 21일 “문화다양성 협약의 일부 내용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과 상충돼 고민을 거듭했으나, 유보조항 없이 협약 비준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벌이고 있는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의 한 당국자도 “유럽연합은 문화다양성 협약을 비준한 국가에 대해서만 자유무역협정을 맺는다는 원칙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며 문화다양성 협약 비준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문화다양성 협약 비준안은 관련 부처 협의를 거쳐 현재 법제처의 검토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으며, 빠르면 올해 안에 비준을 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협약이 국회 비준을 거치게 되면,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맺은 조약을 해석, 적용할 때 협약 규정을 ‘고려’(take into account)해야 한다. 또 국내적으로는 스크린쿼터(국산영화 의무상영제) 등 문화부문의 보호 장치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유력한 근거를 확보하게 된다.
문화다양성 협약은 문화를 하나의 산업으로 여기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등 다른 통상 규범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어 논란을 부를 수도 있다. 이 협약에서는 ‘각 체약국이 자국의 문화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2005년 문화다양성 협약이 만들어진 뒤, 지금까지 한-미 자유무역협정 등에 얽힌 예민한 통상 현안 때문에 원안 그대로 비준할 수는 없다고 밝혀왔다. 정부가 방침을 바꾼 것은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 협상 과정에서 유럽 국가들이 협약 비준을 강력히 요구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는 “협약의 국회 비준을 환영하지만, 정부가 외국의 요구에 따라 문화를 통상의 종속변수로만 놓고 판단해온 그간의 과정은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김기태 노형석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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