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왼쪽)이 10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운데),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와 한-중-일 3국 정상회의를 하기에 앞서 손을 맞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한-중-일 새 협력시대 오나] ‘북핵 해법’ 미묘한 갈등
중, 북-미 북-일 관계 중재…양자협상뒤 6자 추인
일본도 ‘납치자 문제’ 핵·미사일과 병행 해결 거론
중, 북-미 북-일 관계 중재…양자협상뒤 6자 추인
일본도 ‘납치자 문제’ 핵·미사일과 병행 해결 거론
6자회담이 조속히 재개돼야 한다든가, 김 위원장의 발언이 북-미 대화를 앞세운 ‘조건부 6자회담 참가’이므로 신뢰하기 어렵다는 이명박 정부의 평가나 견해는 설 자리를 잃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거창하게 밝힌 ‘그랜드 바겐’(일괄타결) 구상은 외교적 수사로는 가장 낮은 수준의 ‘공감대 형성’에 그쳤다. 공감대라는 말도 청와대의 자평일 뿐이고 원 총리는 “개방적 태도로 협의해 나가겠다”고만 밝혔다. 무시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도 “정확하고 올바른 생각”이라던 9일 발언과 달리 “이 대통령의 그랜드 바겐에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정도로 동의 수위를 낮췄다.
원 총리는 또한 한국 정부 안에서 중국의 대규모 대북 원조계획이 유엔 안보리 제재에 저촉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 걸 겨냥한 듯 단호하게 말했다. 원 총리가 “북한에 원조를 제공했고,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개선에 썼다. (이는) 안보리 결의 정신과 일치한다”고 강조한 것은 거의 반박에 가깝다.
원 총리가 이번 3국 정상회의에서 새롭게 밝힌 대목은 한국·일본과도 관계개선을 하겠다는 김 위원장의 뜻이었다. 사실 새로운 건 아니다. 김 위원장은 이미 지난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남쪽에 보낸 특사·조의 방문단을 통해 이 대통령에게 그런 뜻을 밝힌 셈이고, 북-일 양국은 비공식 실무접촉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오카다 가쓰야 일본 외상은 9일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 뒤 “북한이 일본과의 대화를 열망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원 총리는 김 위원장과 가장 긴 면담 4시간을 포함해 10시간 동안 만났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일에 대한 김 위원장의 관계개선 의사를 “이번 방북에서 얻은 가장 큰 느낌이다”라고 표현했다.
원 총리의 이런 발언들은 과거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뒤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했던 역할을 연상시킨다. 김 전 대통령은 미국·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김 위원장의 뜻을 전달하고 중재하는 역할을 맡음으로써 북-미, 북-일 관계 진전의 길을 열었다. 지금 북한은 중국에 그런 구실을 맡겼고, 중국은 원 총리의 표현을 빌리면 이번 방북에서 얻은 ‘적극적 성과’를 바탕으로 “(이번) 기회를 제대로 틀어쥐지 못하면 사라질 수 있다”며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의 이런 역할은 미국과의 사전 조율 속에 진행되는 것이다. 북-미 양자협상은 시기와 장소, 대화형식, 대화상대, 협상 팀의 범위 등을 조율하고 있으며, 리근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이 26∼27일 미 샌디에고 인근 라호야에서 열리는 ‘동북아시아협력대화(NEACD)’에 초청을 받은 상태다. 중국 쪽으로부터 김 위원장의 좀더 구체적인 메시지를 전달받았을 것으로 보이는 하토야마 총리는 (김 위원장의) “말을 믿고자 한다”며 두가지 점을 분명히 했다. 하나는 총리가 직접 ‘선 북-미 협상, 후 6자회담 개최’를 명시적으로 밝힌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과거 자민당 정권의 ‘납치자 문제 우선 해결’ 접근법과 달리 핵·미사일과 병행해 납치자 문제를 거론했다는 점이다.
한국은 어떤가? 이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는 게 전제가 됐을 때 북한이 원하는 협력을 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선핵폐기론’에 다름 아니다. ‘그랜드 바겐’에 대해선 “제안이 아니고 6자 회담 국가들이 공통으로 평소 생각하던 것인데 이제 해야 될 단계가 왔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낮췄다. 남북 대화는 ‘열린 자세’라고만 할뿐 여전히 핵폐기와 연계시켰다. 남과 북이 따로 할 일은 없다는 것인데,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일본(11일), 중국(12일)을 방문하면서도 한국엔 들를 필요가 없는 이유다. 강태호 남북관계 전문기자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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