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선 외교통상부 대변인(왼쪽)이 8일 서울 세종로 외교통상부에서 정부 당국의 사전허가 없이는 이란과의 금융거래를 금지한다는 내용의 이란 제재조치를 발표한 뒤 김재신 차관보와 이야기하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유엔 제재대상 외 단체·개인 추가로 지정
금융거래 사전 허가·신고제 독자추진
한미동맹-이란경협 사이 ‘위험한 줄타기’
금융거래 사전 허가·신고제 독자추진
한미동맹-이란경협 사이 ‘위험한 줄타기’
정부가 8일 오후 발표한 포괄적 이란 제재 조처와 관련한 공식 발표문의 이름은 ‘대이란 유엔 안보리 결의(1929호) 이행 관련 정부 발표문’이다. 그런데 이날 발표의 성격을 두고 외교통상부 고위 당국자와 임종룡 기획재정부 1차관의 추가 설명이 엇갈렸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우리의 독자적 (제재)조처”라고 정부의 자발적인 의지를 강조했다. 반면 임종룡 재정부 1차관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오늘 발표는 유엔 안보리 결의 이행을 위한 조처”라고 정치적 의미를 축소했다.
왜 이런 균열이 발생한 것일까? 국제적 이란 제재 강화를 독려하고 있는 미국 정부와 한-미 동맹 차원의 협력을 중시하는 외교부, 그리고 원유 수입 등 한·이란 경제협력 관계를 중시하는 경제부처의 서로 다른 처지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 유엔 안보리의 이란 제재 결의 1929호 채택(6월9일)과 미국의 ‘포괄적 이란제재법’ 발효(7월1일) 이후 미국과 이란 정부는 한국 정부가 동시에 수용할 수 없는 요구를 해왔다. 미국 쪽은 ‘최대한 강력한 이란 제재 독자조처를 발표하라’고 노골적으로 압박해왔고, 이란 정부는 ‘제재하면 보복한다’고 거듭 경고해왔다.
정부가 발표한 이란 제재 조처는 독자제재 쪽일까, 유엔 결의 이행 범위 안에 있는 것일까? 일단 정부 공식 발표문은 “유엔 안보리 결의 1929호에서 규정하고 있는 금융·무역·운송·에너지 분야의 결정 및 권고사항들을 이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 정부가 발표한 제재 조처 중에는 유엔 안보리 결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도 있다. 제재 대상이 아닌 이란기관과 금융 거래 때 사전허가제(4만유로 이상)와 사전신고제(1만유로 이상)를 도입하겠다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정부 당국자는 “유엔 결의는 자산동결을 규정하고 있지만, 국내법으로는 자산동결을 할 수 없어 취한 조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유엔 안보리 결의 1929호는 전문에서 “이 결의의 어떤 조항도 (유엔 회원)국가들이 이 결의의 범주를 넘어선 조처나 행동을 취할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유엔 결의에 명시되지 않은 조처는 취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정부가 유엔 결의가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 단체(40개)와 개인(1명) 이외에 추가로 102개 단체와 개인 24명을 제재 대상으로 추가 지정한 것도 ‘유엔 결의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 외교부는 “이번 제재 리스트는 (독자 제재조처를 발표한) 유럽연합(EU)의 리스트를 근간으로 일부 미국의 제재 대상자를 추가해 작성됐다”고 밝혔다.
이날 발표된 제재의 강도와 실효성을 두고도 정부 당국자들 사이에 말이 엇갈렸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유럽연합이나 일본의 독자제재조처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정부의 다른 핵심 관계자는 “형식적으로는 유럽연합·일본의 독자제재조처와 수위를 맞췄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늘 발표한 제재 대상 가운데 우리와 실질적으로 관계와 거래가 많은 것은 별로 없다”고 다르게 설명했다.
일단 미국 정부는 공식적으론 한국의 결정에 대해 “환영한다”는 성명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정부의 ‘절묘한 줄타기’가, 오히려 유엔 결의를 넘어선 제재 범위와 관련해서는 이란의 맞대응을, 제재 강도 측면에선 미국의 불만을 살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실제 미국은 한국 정부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을 폐쇄하지 않고 영업정지 조처를 내린 데 대해 강하게 불만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이란 제재 조처와 관련해 전직 고위 인사는 “천안함 대응 및 대북 제재,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 연기 등 여러 분야에서 오바마 행정부에 빚진 게 많은 이명박 정부가 무리수를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태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정부의 이란 제재 조처는 유엔 결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 이란이 보복조처를 취할 경우 보호받을 국제 규범이나 시스템이 없다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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