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북 식량지원 재개 검토뜻에 한국 반대
6자재개-천안함 연계 놓고도 태도 달라
6자재개-천안함 연계 놓고도 태도 달라
미-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정세의 무게 중심이 대북 제재·압박 국면에서 협상 국면으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 정부가 6자회담 재개 분위기 조성의 필요성을 한국 정부에 계속 요구하고, 한국 정부는 이에 버티는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다.
우선 제임스 스타인버그 미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 26일 방한 때 한국 정부 당국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북한이 최근 북-미간 뉴욕채널을 통해 미국 정부에 2009년 중단된 식량 50만t 지원을 재개해달라고 요청한 사실을 전달하고,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의향을 물은 것으로 28일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정부는 지난해 5월24일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한 대응조처로 남북간 교류 및 지원을 모두 끊은 사실을 들며 부정적인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정부 당국자는 “미국도 북한에 식량 지원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물어본 것은 아니다”라고 공식 해명했다. 하지만 방한한 미국 관료들이 통상 간접적인 화법으로 미국 정부의 의중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미국이 북한과 신뢰구축을 위한 상징적 조처의 일환으로 대북 식량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정부의 다른 관계자는 “(미국의 대북 식량 지원 검토 등이) 대체로 맞다”고 확인했다.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스타인버그 부장관의 방한 다음날인 27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 참석해 “김정일과 그 지도층에 의존하는, 쌀·비료 갖다주고 사는 평화는 뇌물 갖다주는 것을 중단하는 순간에 깨진다”고 발언한 시점도 미묘하다. 언뜻 지난 정부의 대북 쌀·비료 지원을 비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발언 시점을 고려하면 미국 정부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한국 정부가 공식·비공식적으로 반발하면 미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대북 식량 지원을 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또한 대북정책의 전략적 방향이 결정되지 않다 보니, 정부 안에서도 똑같은 사안을 두고 다른 말들이 나오고 있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27일 한국정책방송(KTV)에 출연해, “천안함·연평도 사태에 대한 북한의 책임있는 조치와 비핵화 조치가 있어야 실질적이고 본격적인 6자회담이 재개될 것”이라며 천안함·연평도 문제를 6자회담 재개조건과 강하게 연계시켰다.
그러나 불과 하루 전인 26일 정부 고위당국자는 스타인버그 부장관과의 면담 내용을 설명하며 “6자회담 재개 과정으로 가는 트랙에서는 천안함과 연평도 문제가 직접적인 조건은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 고위당국자가 ‘한-미가 협의한 것’이라고 말한 점에 비춰보면, 현인택 장관의 발언은 미국의 기류와 어긋난다. 미국이 대북정책의 수정을 ‘부드럽게’ 압박하고 있는 것에 대해 한국 정부 내 강경파들이 보수층을 중심으로 ‘거칠게’ 버티고 있는 셈이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한국 정부 입장에선 ‘(대화를) 하고 싶지 않은데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며 “6자회담 시계가 돌아가는 데도 계속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버티면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책이 갖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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