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보즈워스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맨앞)와 성 김 미국 6자회담 특사(왼쪽 둘째)가 17일 오전 우리쪽 6자회담 수석대표인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회담한 뒤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통상부 청사를 나서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킹 북한특사 방북, 2009년이후 고위당국자론 처음
“상황보고 결정” 발표에도 식량지원 절차밟기 분석
“상황보고 결정” 발표에도 식량지원 절차밟기 분석
로버트 킹 미국 국무부 북한인권특사가 미국의 ‘북한 식량평가단’을 이끌고 이르면 오는 24일께 평양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식량지원과 관련한 미국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음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일부에선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 결정이 초읽기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스티븐 보즈워스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17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에서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회담한 뒤 기자들과 만나, 킹 특사의 방북 일정을 “수일 내에 미 국무부가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는 이날 회담에서 “북한 식량상황에 대한 양국의 평가를 교환하고, 그런 평가를 더 정확히 하기 위해 평가단이 북한에 가서 상황을 살펴보는 등의 노력을 기울인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정부 고위 당국자가 설명했다.
킹 특사의 평양행은 2009년 12월8~10일 보즈워스 대표의 방북 이후 미 고위당국자의 첫 북한 방문이다. 미국 평가단은 최근 세계식량계획(WFP)이 발표한 북한 식량상황에 관한 보고서 내용을 확인·점검해 북한의 정확한 식량수요를 파악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북한과 식량 분배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모니터링 시스템의 강화 방안을 중점 협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평가단의 방북 협의 대상과 관련해, 정부 고위 당국자는 “미국은 기본적으로 (핵문제 등 협의를 위한) 특사단이 아니고 식량평가를 위한 팀을 보내겠다는 것”이라며 “킹 특사의 임무는 식량 사정에 관한 평가로 제한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평가단 방북이 곧바로 미국의 식량지원 결정을 뜻하는 것도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고위 당국자는 “미국은 식량지원 여부를 미리 예단하고 있지 않다”며 “가서 보고 줄지 말지를 판단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평가에 따라선 식량을 지원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대북 식량지원을 북한 핵 문제 협상의 지렛대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평가단이 북한에 들어가는 것은 사실상 식량지원을 전제로 한 수순 밟기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킹 특사 방북은 대북 식량지원에 한국이 부정적인 상황에서 북한 식량상황 평가의 객관성을 직접 확보함으로써 식량지원의 명분을 만들려는 출발점”이라며 “평가단이 갔다 와서 식량 사정이 괜찮다면서 식량을 주지 않는다면 북한의 반발을 불러 아니 간 것만 못한 결과가 될 텐데, 미국이 그런 식의 외교를 하겠느냐”고 했다.
다만 미국도 식량지원의 규모와 속도에선 한국 태도를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한국 정부는 10만t 이상의 대규모 식량지원은 인도적 사안이 아닌 정치적 사안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평가단이 북한에서 돌아와도 미국 내부 조율과 한국과의 협의 등에 걸리는 시간 등을 고려하면 실제 식량지원은 하반기에나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식량 모니터링에 강한 조건을 걸 경우 북한과의 합의가 지연될 수도 있다. 미국은 2008년 북한에 50만t의 식량지원을 결정했으나 분배 모니터링을 둘러싼 이견 끝에 17만t만 전달한 채 2009년 8월 중단한 바 있다. 중단 당시 북한에 남겨뒀던 2만2000t의 식량에 대해서도 미국은 분명한 소명을 받아내겠다는 태도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