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 위한 대화 나설것” 우리 정부도 용인한듯
북한의 핵 협상을 총괄하고 있는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28일께 미국 뉴욕 방문길에 오른다. 그는 방미 기간에 스티븐 보즈워스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비롯한 북핵 협상 관련 주요 당국자들과 만날 예정이다. 북-일 대화도 곧 다시 열릴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6자회담 재개 흐름에 한층 속도가 붙고 있다.
아세안지역포럼(ARF) 참석차 인도네시아 발리를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성명을 내어 “지난 22일 열린 남북 비핵화 회담 직후, 김 제1부상을 다음 주말께 뉴욕으로 초청했다”며 “김 제1부상이 관계부처 당국자들과 6자회담 재개를 위한 ‘탐색적 대화’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북-미 당국자 사이 직접 대화는 2009년 12월 보즈워스 특별대표의 방북 이후 1년7개월 만이다.
남북 6자회담 수석대표 사이 비핵화 회담에 이어 기다렸다는 듯 북-미 대화 재개가 공식화된 것은 “남북이 비핵화 회담을 주도해야 한다”(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는 한국의 외교 전략에 중대한 도전이 되고 있다. 북한은 북-미 대화 재개로 가기 위한 요식적 통과의례 차원에서 남북 수석대표 회담에 나온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역시 남북 수석대표 회담에서 비핵화 진전 방안이 명확히 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북-미 대화 재개로 넘어감으로써 한국의 협상력을 낮춘 셈이 됐다. 남북은 후속 비핵화 회담 일정도 잡지 못한 반면, 미국은 북한의 6자회담 수석대표인 리영호 부상보다 한 급 높은 김 제1부상과 직접 대화에 나서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정부는 어쩔 수 없이 북-미 대화 재개를 용인하면서도, 남북 비핵화 회담과의 병행 추진 방침을 강조하고 있다. 아세안지역포럼에 참석했던 정부 고위 당국자는 23일 기자들과 만나 “미국과의 협의에서 김 제1부상의 방미 기간에 공식 레벨의 인물들을 만날 수 있으면 만나도록 하라고 말했다”며 “일본한테도 북-일 접촉을 할 수 있으면 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다른 정부 당국자는 “그러나 남북 비핵화 회담을 한번만 하고 계속 북-미 대화로 넘어가는 방식은 있을 수 없다”며 “한-미가 서로 대화 결과를 리뷰해, 대화의 두 줄기를 병행 추진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식량·비료 등 대북 지원을 남북 비핵화 회담 지속을 위한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비핵화 협상을 주도하겠다는 정부 태도가 자칫 북-미 대화를 발목 잡는 방식으로 나타나선 곤란하다”며 “6자회담 재개 흐름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한-미 간 역할 분담과 조율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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