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미 ‘차관보급 협의채널 구축’ 제의 수용
대북억지서 변모…한-중관계 악영향 예상
대북억지서 변모…한-중관계 악영향 예상
한·미 양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공통 현안에 대응하기 위한 고위급 협의채널 구축에 합의했다. 미국의 제의를 한국이 수용한 것으로, 한·미동맹을 대북 동맹에서 중국 견제를 위한 지역동맹으로 탈바꿈하려는 미국의 의도에 한국이 끌려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는 지난 7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만난 뒤 약식 기자회견을 통해 “한·미 양국은 동맹을 확대 강화하는 차원에서 아·태 지역의 다양한 문제를 논의할 차관보급 공식 대화를 출범시키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외교부 핵심 당국자도 9일 “앞으로 역내의 다양한 이슈들과 다자회의에서의 공동보조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미 아·태 협의체는 캠벨 차관보와 김재신 외교부 차관보가 수석대표를 맡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캠벨 차관보의 설명 가운데 눈길을 끄는 부분은 “한·미동맹의 확대 강화 차원”에서 아·태 협의체를 추진한다는 대목이다. 대북 억지를 주목적으로 하는 한·미동맹의 범위를 아·태 지역으로 확대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경우 한·미가 공동대응을 논의하게 될 대상은 아·태지역에서 급속도로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는 중국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중국과 미국은 남중국해 문제, 스프래틀리 군도 영유권 문제, 대만 관계 등에서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
문제는 미-중 간 이해가 부딪치는 지역 현안들을 두고 한국이 미국과 보조를 맞출 경우 한-중 관계에 악영향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중국은 “한·미동맹은 냉전시대의 유물”이라며 한·미동맹 강화가 아·태지역에서의 대중 봉쇄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외교부 핵심 당국자는 “한·미동맹이 지역동맹화한다는 주장의 핵심은 군사적 협력과 관련된 것으로, 이번 합의와는 무관하다”며 한·미동맹의 성격 변화 가능성을 부인했다. 그는 “이번 한·미 아·태 협의체 구성은 한·미간 여러 채널을 마련해 현안 협의의 수준을 올리자는 것으로 대중 봉쇄 의도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의 뜻과 달리 이후 미-중 사이 외교적 갈등이 불거질 경우, 미국이 한·미 아·태협의체를 대중 견제용으로 활용하려 들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이 많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한·미가 동아시아정상회의(EAS)나 아·태경제협력체(APEC) 등 지역협의체에서 논의할 사안을 정례적으로 협의하는 차원이면 몰라도, 중국 견제를 위한 채널로 아·태협의체가 활용된다면 지역 긴장 격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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