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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북, 추방전 여행증 등 신분세탁 치밀…정부는 관행만 믿었다

등록 2013-05-31 20:28수정 2013-05-31 21:27

(※클릭하면 이미지가 커집니다.)
라오스 탈북자 9명 북송 전말
북한쪽 만반의 준비
북한 말투 노부부 통역 참여
24일밤 자필서명 받아간 뒤
외식·외출 금지 등 상황 돌변
북-라오스 고위급 교류 ‘반영’

정부선 안이한 대처
라오스쪽 “기다려라”만 믿고
한국대사관, 면담도 한번 안해
중국 입국 뒤 ‘추방’ 통보 받고
북송 하루뒤 사태 파악 ‘뒷북’

라오스 당국에 적발된 탈북자 9명의 북송은 북한의 대응이 전례없이 적극적인 개입으로 바뀌었는데도 정부가 이런 사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안이하게 대처해 일어난 사건으로 풀이된다.

경찰 불심검문…북한 말투의 노부부가 통역

탈북자 9명이 라오스 당국에 붙잡힌 것은 지난 5월10일 낮 12시께. 안내인 한국인 주아무개 선교사 부부와 15~22살 청소년 9명(남자 7명, 여자 2명) 등 11명이 라오스 국경지역에서 이동하는 것을 수상히 여긴 경찰이 이들을 불심검문한 것이다. 안내인 부부는 즉시 전화로 한국 현지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다. 대사관 직원은 검문 경찰과 통화한 뒤 안내인 부부에게 “북한에서 온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으니 경찰에 협조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대사관은 이 전화를 받고 곧바로 라오스 공안부를 접촉해 억류 탈북자의 면담을 요청했다고 한다. 당시 라오스 당국은 대사관에 “과거 전례에 따라 협조하겠다. 기다려 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서울 주재 라오스대사관 관계자는 <월스트리트 저널>에 “라오스 정부는 남북한 대사관 양쪽에 이들의 체포를 알렸으나 한국은 공식 면담을 요청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우리 대사관이 먼저 탈북자들의 체포 사실을 라오스 정부에 알리고 면담 주선을 요청했다. 또 ‘탈북자를 국외로 추방하지 말아달라’는 내용의 공안도 따로 보냈다”고 반박했다.

탈북자들은 16일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 있는 이민국 수용소로 옮겨진 뒤 본격 조사를 받았다. 조사 과정에는 북한 말투의 노부부가 통역으로 참여했다. 이들과 함께 억류된 주 선교사는 이튿날 대사관에 전화해 이 사실을 알리고 “아이들이 불안해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사관은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주 선교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대사관은 ‘탈북자들이 정말로 한국행을 희망하는지 떠보려는 것’이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북한이 개입하고 있다는 징후였으나, 대사관은 라오스가 탈북자들의 한국행에 협조적이던 관행만 믿고 대수롭지 않게 넘긴 것이다. 대사관은 탈북자 면담도 전혀 하지 않았다. 외교부는 이에 대해 “여러 차례 영사 접견을 요구했으나 라오스 정부가 거부해 이뤄지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라오스 고위인사 방북 뒤 분위기 급랭

탈북자 일행은 이민국에서 조사를 받으면서도 외식이나 외출도 하는 등 비교적 자유롭게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라오스 당국의 태도가 급변한 것은 23~24일 전후였다. 24일 밤 통역을 맡았던 노부부가 나타나 탈북자 9명의 자필 서명을 받아갔고, 외부출입도 엄격히 금지됐다. 이즈음 현지 대사관도 상황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느낀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당국자는 “라오스 쪽이 20일 ‘탈북자들을 인계하겠다’는 뜻을 비쳤는데, 23일 갑자기 ‘시간이 더 필요하다. 기다려달라’고 태도를 바꿨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 전후에 북한과 라오스간 고위급 인사 교류가 있었다. 라오스의 집권 인민혁명당 중앙위 비서 겸 비엔티안 시장인 수칸 마할랏이 20~24일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하고 있었던 것이다. 라오스 정부의 탈북자 문제 처리에 어떤 형식으로든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는 변수였다. 그러나 정부나 현지 대사관이 미묘한 시기에 이뤄진 이런 중요한 북한-라오스의 외교접촉에 얼마나 경각심을 갖고 주의를 기울였는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며칠 뒤인 27일 한국 대사관은 라오스로부터 “이들을 중국으로 추방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북한 대사관이 이들의 신병을 인계받아 이들을 여객기에 태워 중국 쿤밍으로 데려간 뒤였다. 북한은 쿤밍에 도착한 뒤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여객기를 갈아타게 해 이날 밤 베이징으로 이들을 이동시켰다. 주 선교사는 “(조사 과정에서) 아이들의 증명사진을 찍고 서명을 받아간 것이 이들의 여권을 만드는 과정이었음을 뒤늦게 알았다”고 말했다. 북한은 이들 탈북자 이동을 위해 여러 명의 요원을 동행시키는 등 전례없이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북한 탈북자 여행자로 신분세탁 중국으로. 정부는 뒷북 대응

한국 정부는 갑작스런 상황 전개에 크게 당황했다. 대사관은 곧바로 본부에 탈북자들의 중국 추방 사실을 보고했고, 서울에서는 이날 저녁 윤병세 외교부 장관 주재로 긴급 대책회의가 열렸다. 대책회의에서는 라오스, 중국 등 관련국에 협조를 요청하기로 하고, 이경수 차관보를 단장으로 하는 태스크포스가 꾸려졌다. 그러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였다.

탈북자들은 이미 북한 요원들의 통제를 받으며 중국을 여행중이었다. 게다가 이들은 라오스 주재 북한 대사관이 마련한 것으로 보이는 여행증명서 등 관련 서류를 모두 갖춘 합법적 여행자로 ‘신분 세탁’을 마친 상태였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들이 다른 탈북자와 달리 합법적인 중국여행자가 됐기 때문에 중국 당국이 이들의 북송을 막고 싶다고 해도 법적으로 그렇게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정부의 무능은 탈북자들의 북송 행로를 파악하는 데서 또 한번 드러났다. 북한은 탈북자 일행을 베이징 도착 바로 다음날인 28일 낮 고려항공기에 태워 평양으로 보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하루가 지난 뒤인 29일에야 파악했다. 정부는 이번 탈북자 문제를 인권 관련 국제기구에 호소한다는 방침이지만, 이미 탈북자가 북한 땅에 들어간 이상 ‘뒷북’에 그칠 공산이 크다.

외교부는 탈북자 일행이 평양에 들어간 28일 이정관 재외동포영사 대사를 윤 장관의 특사 자격으로 라오스에 급파했다. 탈북자 북송의 경위를 파악하고 라오스에 재발 방지를 요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대사는 라오스 고위 당국자로부터 앞으로는 탈북자 문제에 원칙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라는 설명만 들었다. 라오스 쪽은 “법적으로 불법 입국자는 소속 국가와 협의해 송환하도록 돼 있다”며 “불법 입출국을 용인하는 나라, 인신매매범들이 경유하는 나라라는 라오스의 오명을 씻기 위해 노력하기로 최근 고위급 회의에서 결정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앞으로는 라오스가 탈북자 문제에 과거처럼 협력하기 어렵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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