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정상회담’ 수용 가닥
미 요구 마냥 무시할 수 없는데다
‘핵안보 논의’ 모양새 자연스러워
일 진정성 있는 조처 아직 없고
중 견제하는 것처럼 비칠까 ‘신경’
미 요구 마냥 무시할 수 없는데다
‘핵안보 논의’ 모양새 자연스러워
일 진정성 있는 조처 아직 없고
중 견제하는 것처럼 비칠까 ‘신경’
정부가 한-미-일 3자 정상회담을 수용하기로 가닥을 잡은 것은 무엇보다 미국의 강력한 요구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다음달 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방한하기 때문에 미국의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분석이 많다. 미국은 그동안 안정된 한-일 관계가 자국의 전략적 이해에 부합한다는 판단에 따라 다양한 채널을 통해 한-일 관계 개선을 압박해 왔다.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를 활용해 열리는 점은 박근혜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준 측면이 있다. 의제를 북한 핵 문제 등 안보 현안으로 좁힌다면 핵 안보 문제를 논의하는 국제회의에 참석한 3국 정상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그렇게 어색한 모양새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일 과거사 문제와 안보 현안을 연계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기존 기조에도 크게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조건 없는 한-일 정상회담을 희망해온 일본은 이번 3국 정상회담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을 착착 진행해 왔다. 먼저 사이키 아키타카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이 12일 방한해 조태용 외교부 1차관과 3시간 넘게 한-일 관계 개선 방안을 협의했다. 이틀 뒤인 14일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참의원에 출석해 “고노 담화를 수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다음날인 15일 “(담화 계승을)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화답했다. 그러자 아베 총리는 18일 중의원에서 다시 “한국은 기본적 가치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국가”라며 “여건이 허락한다면 핵안보정상회의에 출석해 미래 지향적 관계 구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적극적인 대화 자세를 보였다.
청와대는 내부적으로 3자 정상회담 수용을 결정해놓고도, 공식적인 발표는 미루고 있다. 오히려 일찌감치 3자 회담 개최를 기정사실화하는 일본의 태도에 불편한 표정도 보이고 있다. 박 대통령이 그동안 한-일 정상이 만나려면 일본의 ‘진정성 있는 조처’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는데, 비록 3자 회담 형식이긴 하지만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고 있는 아베 총리를 만나는 것에 대한 부담 때문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한-미-일 3자 회담이 중국을 견제하는 모양새로 비치는 것도 신경 쓰는 눈치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은 핵안보정상회의 기간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동에도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이 열린다고 해도 한-일 관계가 바로 개선될 것으로 속단할 수는 없다.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선 과거사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변함없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17일 “(한-일 간) 생산적인 대화가 가능한 여건이 조성되기 위해서는 일본이 역사인식 문제와 과거사 현안 등에 대해 진정성 있는 조치를 조속히 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박 대통령도 아베 총리의 고노 담화 계승 발언 이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상처를 덜어 드려야 한다”고 일본의 후속 조처를 요구했다. 향후 한-일 관계는 박 대통령의 이런 요구에 아베 총리가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병수 선임기자, 석진환 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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