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2011년 남북정상회담 실패’의 교훈
남북이 새해를 맞아 모처럼 대화 의지를 밝히면서 남북관계 개선의 전망도 밝아지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당장 행동보다는 상대방의 진의를 조심스럽게 저울질하는 탐색 분위기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이처럼 남북간 불확실성이 크고 어려운 상황에서 과거 이명박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 등을 추진하다 실패했던 사례가 이번 기회를 살리기 위한 반면교사로 많이 거론된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과 2011년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북한과 비밀 접촉을 했다. 그러나 두차례 모두 남북간 이견을 끝내 좁히지 못한 채 무산됐다. 특히 2011년 5월 베이징 접촉의 경우 북한이 비밀접촉의 관례도 무시하고 접촉 경위와 내용을 폭로하는 등 서로 불신만 증폭시키는 후유증까지 남겼다.
이런 실패는 무엇보다 최고 정책결정권자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분석이 많다. 실제 남북은 2009년 10월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과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의 싱가포르 비밀 접촉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기로 하고 한반도 비핵화, 국군포로 및 납북자 문제, 이산가족 문제, 인도적 지원 문제, 국군 유해 공동발굴 사업 등에 사실상 합의했다. 그러나 다음달 개성에서 열린 실무회담에서 최종 합의에 실패했다. 정부 대표단이 개성 실무회담에서 북한에 국군포로·납북자 문제 및 인도 지원 문제와 관련해 추가적인 양보를 요구하면서 회담이 좌절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서명
김정은 신년사에서도 두루 언급
남 강경파 이견에 합의 파탄 경험
박대통령 정치력·의지로 풀어야 이명박 정부는 2011년 베이징에서 다시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지만 한해 앞서 발생한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둘러싼 입장과 대북 식량 지원 규모 등을 놓고 이견을 극복하지 못했다. 특히 2009년과 2011년 두차례 모두, 북쪽이 ‘신뢰의 징표’로 여기는 식량 지원 규모를 남쪽 협상단이 이명박 대통령의 허가를 얻어 무리하게 줄이려 했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많았다. 일종의 ‘소탐대실’인 셈이다. 김창수 코리아연구원 연구실장은 “사실 이런 격차는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일관된 남북관계 개선 의지가 없으면 결국 메울 수 없다는 게 그동안의 경험이며,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북한을 바라보는 국내의 다양한 이견들을 절충하고 조정할 정치력도 중요한 교훈으로 꼽힌다. 2009년 당시 싱가포르 접촉의 합의사항이 파탄되는 과정에서는 정부 내 대북 강경파들의 이의 제기가 중요한 구실을 했다. 강경파들은 언론에 정상회담 추진 사실을 흘리는가 하면, 북한에 대한 추가 양보를 요구해야 한다고 이명박 대통령을 설득해 관철시켰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북한의 반발을 샀고 결국 정상회담이 무산된 것이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남북 문제는 항상 국내 강·온파 간 대립이 불가피한 뜨거운 이슈였다”며 “이런 이견을 조정하고 조율할 수 있는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남북관계를 원만히 끌고 가기 어려운 게 우리 현실”이라고 말했다. 과거 정부에서 이룬 남북간 합의 사항에 대한 존중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필요한 조처라는 지적이 많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취임 때부터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북한의 불신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 북한 입장에선 특히 6·15와 10·4의 경우 북한 최고권력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서명한 문서인 만큼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고, 또 무시될 경우 반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창수 연구실장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신년사에서 7·4 공동성명, 6·15 공동선언, 10·4 선언 등을 두루 언급했는데, 박 대통령으로서는 이들 합의문의 정신은 계승하고 내용은 발전적으로 현실에 맞게 조정해 추진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김정은 신년사에서도 두루 언급
남 강경파 이견에 합의 파탄 경험
박대통령 정치력·의지로 풀어야 이명박 정부는 2011년 베이징에서 다시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지만 한해 앞서 발생한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둘러싼 입장과 대북 식량 지원 규모 등을 놓고 이견을 극복하지 못했다. 특히 2009년과 2011년 두차례 모두, 북쪽이 ‘신뢰의 징표’로 여기는 식량 지원 규모를 남쪽 협상단이 이명박 대통령의 허가를 얻어 무리하게 줄이려 했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많았다. 일종의 ‘소탐대실’인 셈이다. 김창수 코리아연구원 연구실장은 “사실 이런 격차는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일관된 남북관계 개선 의지가 없으면 결국 메울 수 없다는 게 그동안의 경험이며,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북한을 바라보는 국내의 다양한 이견들을 절충하고 조정할 정치력도 중요한 교훈으로 꼽힌다. 2009년 당시 싱가포르 접촉의 합의사항이 파탄되는 과정에서는 정부 내 대북 강경파들의 이의 제기가 중요한 구실을 했다. 강경파들은 언론에 정상회담 추진 사실을 흘리는가 하면, 북한에 대한 추가 양보를 요구해야 한다고 이명박 대통령을 설득해 관철시켰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북한의 반발을 샀고 결국 정상회담이 무산된 것이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남북 문제는 항상 국내 강·온파 간 대립이 불가피한 뜨거운 이슈였다”며 “이런 이견을 조정하고 조율할 수 있는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남북관계를 원만히 끌고 가기 어려운 게 우리 현실”이라고 말했다. 과거 정부에서 이룬 남북간 합의 사항에 대한 존중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필요한 조처라는 지적이 많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취임 때부터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북한의 불신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 북한 입장에선 특히 6·15와 10·4의 경우 북한 최고권력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서명한 문서인 만큼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고, 또 무시될 경우 반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창수 연구실장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신년사에서 7·4 공동성명, 6·15 공동선언, 10·4 선언 등을 두루 언급했는데, 박 대통령으로서는 이들 합의문의 정신은 계승하고 내용은 발전적으로 현실에 맞게 조정해 추진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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