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원자력협정 비교해보니
미-인도·베트남 협정에도 못미쳐
아랍에미리트보다는 좀더 자율성
미-인도·베트남 협정에도 못미쳐
아랍에미리트보다는 좀더 자율성
22일 체결된 한-미 원자력협정은 핵연료의 재처리나 농축을 포괄적으로 용인하고 있는 미-일 원자력협정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1988년 7월 개정 체결된 미-일 원자력협정을 통해 일본은 우라늄 농축과 핵연료 재처리 등 핵 프로그램 전반에 대한 포괄적 동의를 보장받았다. 원자력 시설 등 특정 조건을 미리 정하고 해당 범위 안에서는 모든 과정을 승인받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일본은 핵 활동의 폭넓은 자율성을 확보했다.
하지만 한-미 협정은 사용후 핵연료 관리나 농축 문제에 대해 결론을 미룬 채, 필요시 차관급 상설협의체인 ‘고위급위원회’에서 다루기로 했다. 고위급위원회에서 다룰 수 있는 우라늄 농축 문제도 20% 미만 저농축에 한정하고 고농축에 대해서는 언급도 하지 않았다. 미-일 협정이 고농축은 ‘미국 동의 필요’ 사항으로, 저농축은 ‘포괄적 동의’에 포함시킨 것과는 대조적이다.
정부는 미-일 협정이 체결된 시기와 지금의 환경은 다르다고 설명한다. 냉전 해체 이후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1998년 파키스탄의 핵실험 등 미국의 핵 비확산 정책을 강화시키는 국제적 사건들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협상 당시 경기가 최고조를 달리던 일본이 자동차시장 개방 등 ‘물량 공세’에 가까운 외교·통상적 노력을 기울일 수 있었던 것도 배경으로 꼽힌다.
농축에 대한 미국의 태도가 까다로워진 건 우라늄 매장량 예상치가 늘어난 것도 한 원인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당시엔 우라늄 고갈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비교적 농축을 허용하는 분위기였다면, 지금은 매장 예상치가 늘어나다 보니 무기화 가능성 축소 차원에서 최대한 제한하는 추세로 간다는 뜻이다. 정부 당국자는 “농축을 당장 해야 하느냐 하는 판단은 산업적 시장이나 농축 서비스 시장의 추세, 앞으로의 에너지 안보 대비 등 우선 고려해야 할 게 많다”고 말했다.
미국이 각각 2009년과 2013년 체결한 아랍에미리트, 대만과의 원자력협정보다는 한국의 자율성이 더 많이 확보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당시엔 농축과 재처리를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이른바 ‘골드 스탠더드’가 적용됐다. 하지만 미국은 일본 외에 인도와도 농축·재처리 권리를 인정하는 내용의 원자력협정을 체결한 터여서, 이번 한-미 원자력협정 결과를 성과로만 자평하기는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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