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원자력협정 42년만에 개정
한국의 평화적 핵 활동을 규율하는 틀이 돼온 한-미 원자력협정이 42년 만에 개정됐다. 한국의 독자적인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는 계속 불허된다. 다만 이후 제한적인 우라늄 저농축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용후 핵연료 파이로프로세싱(건식 재처리) 연구의 폭을 넓히는 등 한국의 자율성은 어느 정도 확대된 것으로 평가된다. 자칫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뚜렷해진 핵발전 확산 기조에 가속이 붙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시민사회 한쪽에서 나온다. ▶관련기사 6면
박노벽 외교부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 전담대사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는 22일 오후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에서 ‘한-미 정부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력협정’에 가서명했다. 이로써 1973년 발효된 현행 협정이 42년 만에 개정됐다. 2010년 10월 1차 개정 협상 착수 이래 4년6개월여 만이다.
새 협정은 핵심 쟁점이었던 핵연료(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와 관련해, 이 두 가지를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이른바 ‘골드 스탠더드’ 조항을 포함하지 않아 핵 활동 연구의 자율성은 확대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존 협정에는 특수 핵물질을 재처리하거나 연료 성분의 형태나 내용을 변형할 경우 건건이 또는 5년마다 미국 쪽의 사전동의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새 협정에선 사용후 핵연료 연구 등과 관련해 협정 기한인 20년 내 포괄적 장기동의만 받으면 되도록 틀거리를 넓혔다.
파이로프로세싱과 관련해서는 미국산 사용후 핵연료를 이용한 첫 단계 연구(전해환원)를 자유롭게 수행할 수 있게 됐다. 또 앞으로 한-미 합의를 통해 미국산 우라늄을 20% 미만으로 저농축 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놨다. 파이로프로세싱 후속 연구나 우라늄 저농축 허용 등을 협의할 차관급의 고위급위원회도 개설하기로 했다. 그동안 전량 수입에 의존했던 암 진단용 방사성동위원소(몰리브덴-99)도 미국산 우라늄을 이용해 국내 생산하고 이를 수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이번 협정은 가서명에 이어 1~2개월 뒤 양국 대통령의 정식서명, 미 의회의 비준과 우리 국회에 대한 보고 등 국내 절차를 거쳐 기존 협정의 유효기간인 내년 3월 이전에 발효될 예정이다.
중남미 순방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이 협정 가서명에 대해 “우리의 실질적 국익이 최대한 반영된 것으로 평가한다”며 “선진적이고 호혜적인 협정으로 대체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병수 선임기자, 김외현 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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