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협정 체결 50주년을 맞아 20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일 관계 재설정 캠페인 2015’에 참석한 양국 시민들이 지요다구 재일한국와이엠시에이(YMCA)회관에서 인근 오가와 광장까지 행진하며 “역사를 왜곡하지 말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오른쪽) 21일 일본을 방문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묵는 호텔 근처에서 일본 우익 인사들이 반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왼쪽) 도쿄/길윤형 특파원, 연합뉴스
윤병세-기시다 외교장관 회담
아펙 등 다국적 회담서 성사 가능성
‘위안부 해법’ 논의가 관건
‘일 징용시설에 역사 기록’ 협력키로
아펙 등 다국적 회담서 성사 가능성
‘위안부 해법’ 논의가 관건
‘일 징용시설에 역사 기록’ 협력키로
한·일 양국이 한-일 국교 정상화 50돌 기념행사를 계기로 전면적인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각각 22일 상대 정부 주최로 열리는 기념행사에 전격 교차 참석하기로 함에 따라, 양국 관계의 개선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이뤄지는 분위기다.
지난달 재무장관 회담과 국방장관 회담으로 관계 개선의 운을 뗀 한·일 양국이 21일 외교장관 회담에 이어 곧바로 다음날 양국 정상이 직접 나서는 모양새를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1965년 수교 이래 최악이라는 한-일 관계가 두 정상의 이번 교차참석을 계기로 급물살을 타면서, 박근혜 정부 첫 한-일 정상회담의 개최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실제 이날 도쿄에서 열린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의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한-일 정상회담 개최 문제가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박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사실상 정상회담 개최의 전제조건으로 고수해왔으나, 최근 이런 강경한 태도를 누그러뜨리는 등 기류 변화를 보여왔다. 이 때문에 이번 회담에서 올 하반기 예정된 여러 다자 정상회의 등을 계기로 한·일 정상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유흥수 주일 대사는 20일 <마이니치신문> 인터뷰에서 ‘위안부 해결이 정상회담의 전제냐’는 질문에 “전제가 아니다”라며 “(다만) 정상회담이 실시될 때는 어느 정도 정상간에 이(위안부) 문제에 대한 양해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두 사안을 연계해온 고리를 푼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11월 필리핀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펙) 회의 등 다국간 정상회담 자리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0일 “한·일이 올 9~11월 서울이나 부산, 제주도 등에서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일 정상회담을 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정상회담까지는 여전히 넘어야 할 벽들이 있다. 위안부 문제에서 피해자와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지와 아베 총리가 오는 8·15 담화에서 과거 침략과 식민지배에 분명한 사죄와 반성을 담을 수 있을지가 관건으로 보인다. 10년 전인 2005년 한-일 국교 정상화 40돌 행사 때도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이번처럼 각각 기념행사에 교차 참석하며 우의를 과시했으나,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는 등 도발하면서 한-일 관계가 급속히 냉각된 바 있다.
이날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큰 진전을 보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병세 장관은 회담 뒤 이와 관련해 “국장급 협의가 진행 중이고 진전되는 상황에 따라 상세한 얘기를 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그동안 8차례 진행된 한-일 국장급 협의에선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에게 재정지원을 하고 아베 신조 총리의 사과 등이 포함된 성명을 발표하는 대신 한국도 위안부 문제의 최종해결을 보증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는 책임 인정과 배상 등을 원하는 피해자들의 요구에 못 미치는데다, 한국에 수요집회 중지, 위안부 소녀상 철거 등을 요구하는 것이어서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이 한국인의 강제징용이 이뤄진 시설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것과 관련해선, 일본이 ‘전시 과정에서 1930~40년대 조선인을 강제징용한 역사를 병기하라’는 한국의 요구에 비교적 유연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보인다. 윤 장관은 이와 관련해 “양국이 협력을 해나가기로 했으니까 가까운 시일에 양국 수석대표간 협의가 있게 되면 세부 내용을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회담장인 일본 외무성 이쿠라 공관 앞에서는 일본 우익들의 반한 시위가 벌어졌다. ‘근황 친위대’ 등의 이름을 내건 100여명 정도의 시위대는 ‘독도 탈환’, ‘일-한 국교 단절’, ‘종군위안부 사실을 왜곡하는 한국 필요 없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 때문에 경찰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도로를 통제하기도 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도쿄/길윤형 특파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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