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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북-미 개선 돌파구 필요한데 옥죄기만…앞이 안보인다”

등록 2015-10-18 19:48수정 2015-10-18 22:06

문정인 연세대 교수(왼쪽)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18일 낮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한-미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에 관하여 대담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문정인 연세대 교수(왼쪽)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18일 낮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한-미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에 관하여 대담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한반도 주변 정세 어디로’ 전문가 대담
한-미 정상회담 이후 청와대는 한-미 동맹 강화, ‘중국경사론’ 불식 등의 결실을 맺었다고 자평하지만, 전문가들은 외화내빈일 뿐 미국과 중국 사이의 ‘널뛰기 외교’, 남북관계 악화 등의 후유증을 낳게 될 우려가 크다고 짚었다. 한-미 정상회담 결과가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에 끼칠 영향을 짚어보려고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과 문정인 연세대 교수가 18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서 마주했다. 이제훈 <한겨레> 통일외교팀장이 사회를 맡았다.

사회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전반적으로 평가해달라.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하 정)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에 유난히 한-미 동맹의 밀착성을 과시하려는 퍼포먼스에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박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가한 뒤 한-중 관계가 밀착돼 가는 게 아니냐는 국내 보수층, 한·미 양국의 안보지상주의자·동맹주의자들을 과하게 의식한 것 같다. 박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설득해 북한이 6자회담에 돌아올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는 식으로 6자회담 재개의 모멘텀을 만들면 좋겠다고 기대했는데, 결국 그렇게 되지 못했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이하 문) 북핵·북한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건 의미가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전략적 인내 정책’을 내세워 북한 문제에 무관심했는데, 양국 정상이 공동성명을 낸 것 자체는 평가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북-미 간 교착 상태의 돌파구 마련을 기대하며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이번 정상회담은 오바마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 정책과 박 대통령의 대북 제재·압박 정책을 재확인했을 뿐이다. 한-미 동맹 부분도 전통적 동맹 관계를 재확인하는 데 그쳐 아쉽다. 또한 필요 이상으로 중국경사론 불식에 신경을 쓴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중국 쪽은 ‘전승절 때 와서 한 말과 미국에서 한 말이 왜 이렇게 다른가’라며 의아해할 것이다. 미-중 사이의 ‘널뛰기 외교’가 돼버린 것 아닌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한-미 공동성명 새로운 게 없어
북핵 상호주의로 풀어야 하는데
미국의 정책 갑을논리로 가고 있어

북 중국 고려해 당장은 미사일 안쏠것
이산상봉도 그대로 하지 않겠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결국 대북 압박이 주류를 이뤘다. ‘5 대 1’로 북한을 포위·압박하는 전략까지 나온 걸 보면 오히려 후퇴했다는 느낌이다. 한-미 정상이 공동성명에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비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강조했는데, ‘5 대 1 전략’이나 ‘시브이아이디’ 모두 부시 정부 시절 네오콘의 용어다. 네오콘 시절 용어가 다시 나온 것을 보고 박 대통령을 비롯해 외교안보 참모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의아했다.

사회 한-미 양국의 북핵 대응에 변화가 있나? 변화가 있다면 6자회담 재개에 긍정적인 쪽인가 부정적인 쪽인가?

오바마 대통령이 ‘비핵화 협의를 원하면 곧바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반부가 조건부이지만 이건 과거보다 진일보한 것이다. 그러나 북-미 간에 물밑 후속 논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북한이 이를 신뢰하기 어려울 거다. 문제는 오바마 대통령의 남은 임기가 1년뿐이라는 사실이다. 이란 핵협상도 의회의 비준을 아직 받지 못했는데, 북한과 핵협상에 나서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거다. 그래서 박 대통령이 이번에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과 대화에 나서도록 강하게 설득했어야 했다. 8·25 남북합의 이후 남북관계가 서서히 개선되고 있으니 이제 북-미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 이런 점들이 공동성명 등에 들어갔다면 북한이 대화로 나올 텐데, 5자 공조를 통한 대북 압박, 제재 강화 등을 한다고 했으니 앞이 안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 발언을 보면 북한에 대한 불신이 굉장히 크다. 이런 불신을 바탕으로 공동성명이 나왔다. 압박이란 단어도 노골적으로 사용했다. 북한을 대화로 이끌어내려는 진정성이 안 보인다.

한-미 정상은 북한한테 ‘핵·경제발전 병진노선’을 포기하고 비핵화 의지를 진정성 있게 보이라는 것인데 북한이 당장 그걸 어떻게 하겠나. 6자회담 언급이 한 번도 없는 것도 문제다. 지금 필요한 일은 6자회담을 조기에 재개해 북한의 핵활동을 중단시키고, 2007년 6자회담 ‘2·13 합의’ 이전 수준으로 돌려놔야 한다는 게 국내외 전문가들의 일반적 인식이다.

한-미 정상은 6자회담 등 협상을 통해 얻어내야 할 결과를 북한한테 먼저 보장하라는 것인데, 순서가 뒤바뀐 접근법이다. 마차를 말 앞에 매고 어떻게 달리나. 한-미 정상의 공동성명은 용어는 현란해도 새로운 게 없다. 북핵 문제는 9·19 공동성명에 명시한 대로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이라는 균형잡힌 상호주의로 풀어야 한다. 전략적 인내 이후 미국의 북핵 정책은 ‘갑과 을의 논리’로 가고 있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

“오바마 비핵화 대화 뜻 밝힌건 진일보
북, 후속조처 없으면 억센소리 낼 것
박 대통령, 북-미 대화 설득했어야

한국, 미국 중국 사이에서 저글링중
두개의 공 던지다 엇박자 나면 공 깨져”

문정인 연세대 교수
문정인 연세대 교수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을 악마화해왔는데, 그 이미지가 개선된 게 없다는 게 문제다. 미국 정부에서 북핵 문제를 다루는 이들이 이런 집단심리를 갖고 있는 한 북핵 문제에서 돌파구를 찾기가 어렵지 않겠나 싶다. 북한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 쪽의 후속 조처가 뭔지 보고 당분간 지켜보려 할 것이다. (미국의 물밑 대화 제의 등) 별다른 게 없으면 북쪽에서 억센 소리가 나올 것이다.

북한이 당장 미사일을 쏘거나 하지는 않을 거 같다. 조심스럽긴 하지만, 이산가족 상봉 행사도 예정대로 하지 않겠나 싶다. 북한이 노동당 창건 기념행사를 전후해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을 하지 않은 건 최근 중국이 보여준 대북 친화적 행보 등을 의식한 결과로 봐야 한다. 중국을 봐서라도 북한이 당분간은 군사적 위협 행위는 안 하리라고 본다. 문 교수의 지적처럼 미국에서 어떻게 물밑에서 움직이는지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사회 박 대통령이 방미 기간 ‘한-미 동맹의 기적의 역사를 한반도 전역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박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기념행사 참가 등과 연결해 그 의미와 파장을 짚어달라.

박 대통령이 북한붕괴론에 빠져 있는 것 같다. 통일은 북핵 문제가 진전되고 남과 북이 불가분의 관계로 가까워진 뒤에 기대할 수 있는 일이다. 한-미 동맹의 한반도 전역화는 주한미군이 압록강·두만강까지 올라온다는 것이어서 중국한테는 엄청난 이야기다. ‘전역화’라는 표현에 중국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한-중 관계에 신뢰 문제가 생길 것이다.

중국이 평화통일을 지지한다고 말했다고 우리 정부는 설명했지만, 실제로 지지한다고 한 것은 ‘자주적 평화통일’이다. 통일의 주체는 남과 북이므로 중국과 미국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뜻이다. 중국은 남과 북이 관계를 개선해 자주적·점진적으로 평화통일을 이뤄나가는 데 도움을 주겠다는 뜻이다. 남북 합의 통일이 아닌, 한국 주도의 일방적 통일을 지지한다는 게 아니다. 중국 정부의 기존 방침 그대로다. 우리 대통령이 통일을 너무 쉽게 보는 것 같다. 통일로 가기 전에 교류협력, 평화공존의 과정을 생략하는 것은 오해를 줄 수밖에 없다.

오바마 대통령이 박 대통령한테 중국이 국제규범과 국제법을 안 지키면 한국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는 소유권이 일본에 있으므로 중국이 자국 영토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게 미국의 공식 견해다.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해서도 한국이 미국 편을 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중국으로선 굉장히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중국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보며 한국이 완전히 미국 편으로 기울었다고 여길 것이다.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저글링’(곡예)을 하고 있다. 양손에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개의 공을 놓고 공중에 던지며 돌리다 엇박자가 나면 공이 떨어져 깨진다. 그 자체가 위험한 게임이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연설을 한 것은, 그곳이 중국경사론과 한-일 관계 악화의 한국 책임론을 강하게 제기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미국 쪽이 외교적 수사로는 중국경사론 없다, 한-미 동맹 중심론 확인했다고 하지만 미국 쪽의 의구심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고 본다. 오바마 대통령이 제시한 리트머스 시험지는 남중국해, 센카쿠열도 문제다. 한국이 중국을 향해 공개적인 비판의 목청을 높이라는 거다. 한국이 목청을 높인다면 미국의 신뢰를 얻겠지만 중국과의 관계는 어려워진다. 중국은 북한 문제도 상당히 불편했을 것이다. 중국의 유화 조처로 북한이 정치적 결단을 통해 로켓 실험 발사를 하지 않았으니, 중국으로선 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을 설득해 북-미 대화 등 관계개선에 나서도록 힘을 쓰는 ‘화답’을 기대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번 정상회담은 중국이 섭섭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결과다. 현실적으로 중국경사론에 대한 미국의 인식 변화는 크지 않고, 중국은 한국 의심론이 더 증폭되지 않을까 싶다.

사회 마지막으로 정부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박 대통령의 동북아평화협력구상(동평구)의 출발점은 당연히 남북관계 개선이다. 남북관계가 막혔는데 한·중·일이 날마다 만난들 뭐하겠나. 평화통일로 북핵·북한인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얘기는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북한은 쏙 빼놓고 미·중과 손잡고 통일을 달성하겠다는 것은 비현실적일뿐더러 매우 잘못된 접근법이다. 통일은 민족내부문제이자 국제문제라는 근본적 이중성이 있는데다, 최근 미-중의 신냉전 본격화로 상황이 더 복잡해졌다.

박근혜 정부가 주도적 외교를 이끌어나가는 것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지만, 남북관계 개선 없이 주도적 외교엔 한계가 분명함을 깨달아야 한다. 주변 상황에 대한 아전인수식 해석은 하지 말아야 한다. 국민을 오도하고 잘못된 정책이 나올 수 있다. 타성을 넘어서는 상상력 있는 외교를 해야 외교적 돌파구가 나올 수 있다.

요즘은 아전인수에 더해 견강부회까지 하더라.

정리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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