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힐.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회고록 한글판 낸 크리스토퍼 힐
“외교관 시절 2쪽 이상 보고서를 쓴 적이 별로 없다. 보고서가 3쪽으로 넘어가면 (대통령 등 매우 바쁜 고위 인사들은) 아무도 읽지 않는다. 회고록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뒤 3쪽째에 이르렀을 때 덜컥 겁이 났다.”
미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로 2005년 ‘9·19 공동성명’의 산파 노릇을 했던 크리스토퍼 힐(덴버대학 학장) 전 주한 미국대사 겸 국무부 아시아태평양 차관보는 22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회고록 한글판 출간기념 간담회에서 ‘긴 글 쓰기의 어려움’으로 말문을 열었다.
20일 출간된 <크리스토퍼 힐 회고록: 미국 외교의 최전선>(메디치 펴냄)은 523쪽으로, 두껍다. “나는 참을성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6자회담장에선 참을성이 많이 필요했다. 회고록을 쓸 때처럼.” 고생을 많이 했다는 말이다. 그래서일까? “내 책이 많이 팔린다는 얘기를 들었다. 재밌게 읽어주면 고맙겠다”고 거듭 당부한 그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외교 협상 과정을 읽으며 ‘나도 외교관이 돼 이런 일을 해보고 싶다’고 꿈꾸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말했다.
입말투로 써내려간 힐의 회고록은 술술 읽힌다. 내용은 말랑말랑하지 않다. 지난해 10월 영문판이 미국에서 출간된 뒤 네오콘의 비판 글이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리는 등 격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보스니아 협상, 코소보 협상, 이라크 문제 등을 다룬 전체 23개 장 가운데 한반도, 특히 북핵 6자회담과 관련된 내용이 6개 장이다. 사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은, 협상 핵심 당사자의 증언이다.
“(2000년대 중반) 부시 행정부가 6자회담과 미-북 양자 대화에 나선 데에는 한국과 동맹관계를 잘 풀어가야 한다는 판단이 크게 작용했다. 당시 미국이 네오콘 등 탓에 한-미 동맹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 북한·북핵 문제에서 정책의 활로를 모색하기 어렵다는 여론이 한국에 강했기 때문이다.” 그의 얘기는 7년째 중단된 6자회담을 재개하고 날로 악화하는 ‘북핵 문제’를 풀려면 한국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조언으로 들린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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