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제 11회 한겨레-부산심포지엄 이틀째 회의 4번째 세션의 주제는 <광복 70년 해양질서의 변화와 동아시아 평화>다. 해양질서와 관련해서 본다면 러시아의 해양정책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낮은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안드레이 시드로프 모스크바 국립국제관계 대학 부교수가 발표한 러시아의 동아시아 해양정책에 의하면 극동 연해주 인근 해역과 베링해에서 러시아와 미국, 그리고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영유권을 둘러싼 갈등과 분쟁은 매우 심각하며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남중국해 못지않게 이들 북방의 해역에 대한 관심과 함께 러시아의 해양정책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이유다. △러시아 내해로 바뀌는 오호츠크해, △남쿠릴열도 개발과 군사화로 인한 일본과의 분쟁 격화 가능성, △베링해 경계획정을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간 대립 등 쟁점 현안을 중심으로 시도로프 박사의 발표를 정리한다.
-러시아 내해로 바뀌는 오호츠크해
오호츠크 해는 일본에 속한 남쪽의 작은 연안을 제외하고 사실상 전 방향에서 러시아 영토에 둘러싸여 있다. 그럼에도 러시아 내해 영해 및 배타적 경제 수역 이외에 공해가 존재하고 있었다. 오호츠크해 중심부에는 영어권 문헌에 피넛츠 홀(땅콩 모양의 길쭉한 모양의 독립영역)로 알려진 법률적으로 공해인 구역이 있었다. 이 해역은 모든 국가의 어선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어업이 가능했다. 그러나 2013년 11월 러시아가 이 공해에 속하는 5만2천 ㎢에 달하는 해저 지형이 러시아 대륙붕과 이어져 있음을 증명했다. 이 면적은 네덜란드, 스위스, 벨기에 같은 나라보다 큰 크기다. 이 결정으로 이제 오호츠크해 중심 해역은 러시아 영해로 귀속됐다. 여기서 발견되는 모든 자원은 전적으로 러시아법에 근거하여 채굴하게 된다. 지질학자들이 평가한 바에 따르면 이곳에서 발견된 탄화수소 연료는 수십억 톤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는 2015년 12월1일 오호츠크해 전체 대륙붕이 러시아 연방의 대륙붕이라고 통보할 예정이다. 이때부터 오호츠크해는 러시아의 내해로 편입하게 된다.
-베링해 수역에서의 미러 갈등
남쿠릴열도에서의 일본과의 영유권 문제는 러시아와 일본과의 북방영토 문제로 잘알려져 있다. 그에 비한다면 베링해 수역에서 미-러간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은 생소하다. 그러나 시도로프 박사에 따르면 이 문제로 북동 태평양 지역에서 미러관계가 심각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소련과 미국은 1990년 6월 1일 추코츠키 및 베링해 경제 수역과 대륙붕, 베링해협 내 작은 구역에서의 영해 수역 경계를 확정했다. 이른바 해양 공간 국경선에 관한 조약인 셰바르나제-베이커 협약이다. 1990년까지 베링해 수역에는 1800km 및 총면적 약 8만 ㎢에 달하는 분쟁 지역이 있었다. 미러가 이 협약에 따라 경계를 획정한 결과 3만1400 ㎢ 면적의 배타적 경제 수역과 4만6300 ㎢ 면적의 대륙붕 구역이 미국에 넘어갔다. 이때 베링해에서 소련에 귀속된 대륙붕 구역은 기껏해야 4600 ㎢였다. 미국 상원은 1991년 9월16일 곧바로 이 조약을 비준했다. 그러나 시도로프 박사는 러시아가 현재까지 이를 비준하지 않았으며 비준할 계획이 없다고 보고 있다. 러시아 의회에서나 러시아 내에서 이 조약은 불평등한 문서로 러시아가 합당하지 않은 양보를 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베링해에서 러시아 어업은 이로 인해 타격을 받았다. 이 협약이 발효된 뒤 러시아 어선들은 베링해 중부 구역에서 어업할 권한을 상실했다. 1990년 협약 전까지 러시아 어선들은 여기서 매년 15만t의 어류를 포획했다. 그러나 포괄적으로 이 해역을 양보하면서 그 권리를 상실했다. 이 협약을 근거로 1991년 이후 미국의 연안 경비정이 러시아의 트롤 어선과 예인망 어선을 정기적으로 단속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국립회계원의 평가에 따르면, 협약이 시행된 이후 11년 동안에만 러시아가 입은 손실은 어류 160~190만t에 이르며, 금액으로 환산하면 18~22억 달러에 이른다. 앞으로 시도로프 박사에 따르면 이 문제가 북동 태평양 지역에서 미러 관계에 더 심각하고 자극적인 분쟁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남쿠릴열도를 둘러싼 일본과의 갈등 심화
일본과의 영유권 분쟁을 빚어 온 쿠릴열도를 둘러싼 갈등은 러시아가 올들어 이 지역에 대한 적극적인 개발 정책을 발표한 이후 더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 8월 2016-2025년간 쿠릴 열도 사회 경제적 개발 연방 특별 프로그램을 승인했다. 쿠릴 개발의 총 재원 규모는 10년간 700억 루블(11억달러 상당)에 이르며, 러시아는 이 지역 인구를 25% (최대 2만4000명) 증가시킬 계획이다. 총 면적 12만㎡의 주택, 17개의 사회시설, 총 연장 100km 이상의 도로 및 안벽을 건설한다. 이는 새로운 해상항로를 통해 러시아 중심부와 극동 연해주 그리고 태평안 연안을 연결시키는 원대한 계획의 일부다. 또한 지난 10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는 이 지역에 일본 투자자들을 포함 외국인 투자자들을 위한 세제 혜택 등 신속 개발 구역을 설치한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메드베데프 총리는 다시 남쿠릴 열도를 재방문할 계획이다. 그는 대통령 재직 당시인 2010년과 2012년에도 이 지역을 방문했다. 최근 몇년간 다른 고위직 러시아 관리들도 방문했다.
이와 함께 지난 6월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부 장관은 남쿠릴 열도의 군사시설 건설에 박차를 가해 올해 말까지 군사도시 건설을 완료할 것을 지시했다. 11억달러의 남쿠릴 열도 개발 자금 가운데 상당액은 이들 군사시설 건설에 투입될 것으로알려지고 있다. 러시아는 이미 이투루프(일본명 에토로후)와 쿠나시르(일본명 구나시리) 섬에 군사 주둔지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쇼이구 장관은 또 러시아 북극에도 군사 인프라를 신속하게 개발하라고 촉구했다.
시도로프 박사에 따르면 러시아의 이런 정책은 쿠릴 열도의 지정학적 경제적 잠재가치와 관련이 있다. 공식적인 데이터에 의하면 남 쿠릴에서 탐사된 광물 매장량만 해도 458억 달러로 평가되고 있다. 이투루프(일본명 에토로후) 섬에는 쿠드랴비 화산 분화구에 20세기 말에 세계 유일의 레니움 매장지가 발견됐다. 이 금속은 우주 금속으로 1킬로그램 가격이 3600달러에 달한다. 또한 사할린 섬 인근 석유가스 프로젝트의 성공에 힘입어 에너지 기업들은 쿠릴 열도 근해를 탐사했다. 또한 원시림과 화산, 폭포로 둘러싸인 이들 섬은 관광산업 개발을 위한 엄청난 잠재력도 갖고 있다. 최근에는 북극항로와 관련해서도 쿠릴열도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다. 또한 쿠릴열도는 중요한 군사-전략적 가치가 있다. 러시아 해군의 태평양 진출을 위한주요 관문 가운데 하나이며, 쿠릴열도를 지배하면 오호츠크 해에 미국 및 일본의 군함이 통행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남쿠릴열도의 4개섬을 둘러싸고 소련과 일본 사이에는 70여년에 걸친 오랜 영토분쟁의 역사가 있다. 그러나 소련의 계승자로서 러시아는 1956년 일본과 소련 국회가 비준한 선언을 고수하고 있다. 이 선언의 9조는 일본에 두 개의 섬을(하보마이와 시코탄)을 양도하는 선결 조건은 평화조약 체결로 돼 있다. 즉 모든 영토 분쟁의 조정과 일본 정부가 향후 영토 문제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두개 섬을 양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4개 섬 전체를 반환할 것을 요구해왔다.
일본의 전문 잡지<섬 연구 리뷰(Review of Island Studies)>는 남쿠릴 열도에서 증가한 러시아 군사 활동이 북극해 연안을 따라 이어지는 북극항로 개통을 내다보고 나온 것으로 분석했다.
부산/강태호 선임 기자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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