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중국 역할론’ 역설
시진핑과 통화 불발에 ‘간접대화’
중국쪽 ‘화답’ 가능성 거의 없어
러 외무도 “추가적 긴장악화 없길…”
시진핑과 통화 불발에 ‘간접대화’
중국쪽 ‘화답’ 가능성 거의 없어
러 외무도 “추가적 긴장악화 없길…”
박근혜 대통령은 13일 대국민담화에서 “중국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필요한 역할을 해줄 것으로 믿는다”며 ‘중국 역할론’을 강조했다. 주권국 최고지도자가 국제적인 다자 정상 외교 무대가 아닌 국내용 연설에서 제3국 정부에 뭔가를 직접 촉구하는 건 외교 관례상 이례적인 일이다. 때론 외교적 결례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이 ‘중국 역할론’을 공개적으로 강조한 건, 북한의 4차 핵실험 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직접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을 고려한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언론을 통한 간접 대화 시도인 셈이다.
문제는 박 대통령의 “어렵고 힘들 때 손을 잡아주는 것이 최상의 파트너”라는 ‘간절한 호소’에 시 주석이 화답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시 주석은 이미 왕이 외교부장을 통해 자신의 분명한 대응 방침을 사실상 밝혔기 때문이다. 왕이 부장은 지난 8일 밤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70분간의 ‘전화회담’에서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 실현, 한반도 평화와 안정 수호, 대화를 통한 (평화적) 문제 해결이라는 세가지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 이 세가지는 어느 하나라도 빠져서는 안 된다. 핵 문제의 협상 궤도로의 복귀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차원의 제재뿐만 아니라 한반도 정세 안정 및 대화·협상 재개 노력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는 메시지다. 뒤집으면 정세 안정과 대화·협상 노력의 병행을 전제로 좀더 진전된 제재 동참이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사정 탓에 박 대통령의 이날 메시지는 중국 정부에 모순적이거나 일방적인 태도로 비칠 소지가 많다. 박 대통령은 이날 담화·연설에서 한반도 정세 안정과 협상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 정부가 무엇을 할지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북 확성기 방송을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심리전 수단”이라며 “북한 주민에게 진실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강경 기조를 천명했다.
박 대통령은 회견에서 “내일(14일) 6자회담 수석대표 협의가 있으니까 최대한 효과적인 것이 나올 수 있도록 논의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14일 중국 베이징에서 이뤄질 6자회담 한-중 수석대표 협의에서도 중국 쪽의 태도가 달라질 가능성은 낮다. 우다웨이 한반도사무특별대표는 이미 8일 황준국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의 “이전과 차별화된 강력한 대응” 촉구에, “합당한 대응”을 주문한 바 있다.
문제는 중국만이 아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13일 윤 장관과의 ‘전화회담’에서, 유엔 안보리의 대응 조처가 “북한의 도발에 상응하는 내용”이어야 하며 “이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추가적 긴장 악화가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외교부가 전했다. 강경 제재 일변도는 곤란하다는 뜻이다. 이런 사정 탓에 박 대통령이 강조한 “북한이 뼈아프게 느낄 실효적 제재”가 가능하려면 중·러의 운신 폭을 넓힐 한반도 정세 안정 및 대화·협상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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