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중 외교수장 이례적 동반행보 왜? -
26일 라오스에서 ARF 외교장관회의
남중국해 분쟁·북핵 갈등 등
동북아정세에 미칠 영향 주목
북 리용호 외무상, 다자외교 데뷔
윤병세 외교장관이 오는 26일까지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포럼(ARF)를 비롯한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관련 연쇄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24일 오후(현지시각) 비엔티안 공항으로 입국하고 있다. 비엔티안/연합뉴스.
24일 오후 2시께(현지시각) 라오스 비엔티안 와타이 국제공항에 베이징을 출발해 쿤밍을 거친 중국남방항공 여객기가 착륙했다. 여객기 문이 열리자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검정 양복에 노타이 차림으로 가장 먼저 걸어 나왔다. 대기하던 한국·일본 등 각국 취재진 수십명이 에워싸고 질문을 쏟아냈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비행기를 함께 타고 오셨나요?” “함께 타고 왔습니다. (오는 동안) 서로 안부를 물었습니다.” 왕이 부장은 웃는 낯빛으로 짧게 답하곤 질문 세례를 뒤로하고 귀빈터미널로 향했다.
왕이 부장과 1분여의 시차를 두고 회색 계열의 양복을 차려입은 거구의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비행기에서 내렸다. 북한이 참여하는 유일한 역내 다자 안보 회의체인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하러 온 것이다. 제7차 노동당대회(5월6~9일) 직후 외무상에 임명된 그의 다자외교 데뷔 무대다. 왕이 부장 때보다 더 많은 취재진이 리 외무상 일행을 둘러쌌다. 질문이 비처럼 쏟아졌다. “중국과 양자회담 계획이 있습니까?”, “윤병세 한국 외교부 장관과 만날 계획이 있나요?”, “(회의가 끝난 뒤인) 28일까지 라오스에 계신다는데 어떤 일정이 예정돼 있나요?”, “소감이라도 한말씀 해주시지요”….
북한 리용호 신임 외무상이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24일 오후(현지시각) 비엔티안 공항으로 입국하고 있다. 비엔티안/연합뉴스.
리 외무상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외무상에 오르기 전 6자회담 수석대표 등으로 일할 때 능숙한 영어 구사 능력과 유연한 태도로 ‘북한 외교관답지 않다’는 평을 들어온 리 외무상은 침묵 속에서도 옅은 미소로 일관했다. 리 외무상의 ‘침묵’은 북한 당국의 공식 견해를 ‘선전’하지 않았다는 점만으로도 ‘부정적 메시지’로 볼 일은 아니다. 리 외무상은 공항을 벗어나 라오스 대통령궁에 들른 뒤 숙소인 ‘돈 찬 팰리스’ 호텔로 향했다. 돈 찬 팰리스는 중국 대표단의 숙소이기도 하다.
‘주북한 중국대사의 리 외무상 출국 배웅(23일)→ 리 외무상과 왕이 부장의 라오스행 여객기 동승→ 북·중 대표단의 숙소 같은 곳 잡기’로 이어진 북-중 대표단의 이례적인 ‘동반 행보’는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북·중 양국은 지난해 아세안지역안보포럼 땐 당시 냉랭한 양국 관계를 반영하듯, 양자 외교장관회담을 하지 않았다. 북·중 양국은 올해 들어서도 북한의 4차 핵실험 등에 대응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결의 2270호 채택 등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중국이 참여해 갈등을 빚어온 터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24일 오후(현지시각) 비엔티안 공항으로 입국하고 있다. 비엔티안/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북·중의 이례적인 ‘동반 행보’는, 중국의 ‘북한 끌어안기’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한국·미국 정부의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 결정 발표에 중국 정부가 격하게 반발해왔음을 고려할 때, 중국 정부의 ‘무언의 외교적 메시지’로 볼 수 있다. 더구나 남중국해 분쟁, 북한 핵·미사일 문제, 사드 배치 논란 등으로 동북아 정세가 요동치는 와중에 6자회담 당사국 외교장관이 모두 참여하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26일)을 비롯한 아세안 관련 연쇄 외교장관회의는 ‘외교전쟁’의 장이자, 한·미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 발표 이후 대북공조 이완 여부를 가늠할 시금석으로 불려왔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24일 늦은 밤 왕이 부장과 한-중 외교장관회담을 했고, 25일엔 한-미 및 한-일 외교장관회담이 예정돼 있다.
비엔티안(라오스)/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