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현지시각) 라오스 비엔티안 국립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포토세션. 북한 리용호 외무상이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태극기 옆에 서 있다.비엔티안/연합뉴스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26일 열린 제23차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가 회의 결과를 담은 의장성명을 발표하지 못하고 끝났다.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판결(12일) 이후 한층 격화하고 있는 남중국해 분쟁에 이해관계가 있는 다수 회원국들 사이에 이견이 좁혀지지 않은 게 가장 큰 원인이다. 이 회의의 전통적 현안인 ‘한반도 문제’(사실상 북핵 문제)에 더해 최근 한국·미국 정부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주한미군 배치 결정을 둘러싼 회원국 간 논란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의는 북한이 참여하는 역내 유일한 다자안보협의체이자 6자회담 당사국(남·북·미·중·러·일)이 모두 참여해, 전통적으로 한반도 문제가 비중있게 다뤄져 왔다. 회원국은 모두 27개국이다. 이 회의에 앞서 사드 배치 논란과 남중국해 분쟁 등 동아시아 정세의 격동으로 박근혜 정부가 공을 들여온 대북제재 국제공조에 균열이 발생하리라는 지적이 많았는데,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한국 대표단의 한 관계자는 26일 “최종 의장성명 채택 때까지는 며칠 정도 더 걸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핵심 쟁점은 남중국해 분쟁”이라고 전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지난해 8월6일 열린 제22차 아세안지역안보포럼 때도 닷새 뒤인 8월11에야 의장성명 최종본이 발표됐다. 정부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남중국해 문제와 한반도 문제가 최종 쟁점이었다”고 말했다. 올해는 남중국해 분쟁이 더 격화하고 있어 시일이 더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이 많다.
26일 오후(현지시각) 라오스 비엔티안 국립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포토세션. 윤병세 외교장관이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오성홍기와 인공기 앞에 서 있다. 비엔티안/연합뉴스
앞서 25일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외교장관회의 결과를 담은 의장성명엔 남중국해 분쟁 관련 국제상설중재재판소 판결이나 중국의 영유권 비판이 명시되지 않아 중국이 ‘선방’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26일 오후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 앞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외교장관회의에선 미국이 필리핀·일본·오스트레일리아 등과 함께 중국을 비판해 분위기가 험악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회의에서 “아세안의 남중국해행동선언(DOC)을 지지하며, 평화적이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분쟁이) 잘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발언했다.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스탠스다.
북핵 문제는 올초 북한의 4차 핵실험 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270호 채택(3월2일)·이행이라는 국제사회의 공론이 마련된 터라, 애초 예년보다 더 논란이 될 사안은 아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남중국해 분쟁 판결과 ‘사드 주한미군 배치’ 논란으로 미국과 중국이 날카롭게 대치하고 있어, ‘유탄’을 맞을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실제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라오스 일정을 마친 뒤 27일 남중국해 문제로 중국을 제소한 필리핀을 방문한다. ‘사드 주한미군 배치’ 반대 공조를 해온 중국·러시아 등은 이번 아세안지역안보포럼 의장성명에 사드 문제가 담겨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정부 관계자는 “의장성명 최종본에 사드 문제가 언급될 확률은 0%에 가깝다”고 말했다. 앞서 중·러는 ‘사드 한반도 배치가 동북아의 전략 균형을 훼손한다’는 내용이 담긴 양국 정상의 공동성명(6월25일)을 유엔에 제출해 사드 문제의 ‘국제 쟁점화’에 나섰다. 윤 장관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 회의 머리발언에서 “북한의 도발 위협이 어느 때보다 엄중해지고 있다”며 “악순환을 끊기 위해 국제사회의 일치된 경고 목소리를 보내자”고 말했다.
비엔티안(라오스)/이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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