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스기 겐지 일본 외무성 이사아대양주국장이 9일 오전 서울 세종로 외교부청사에서 열린 위안부 합의 후속 이행을 위한 국장급 협의에 참석하기 위해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오늘 협의 결과를 각각 상부에 보고하고 (내부 결재를 받으면) 그 결과에 따라 후속 조처를 취해 나갈 예정이다.”
9일 서울에서 8시간 동안 진행된 정병원 외교부 동북아국장과 가나스기 겐지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의 ‘한·일 국장 협의’ 결과에 대한 외교부 당국자의 설명이다. 이날 협의의 핵심 쟁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12·28 합의 이행을 목적으로 설립된 ‘화해·치유 재단’(재단)의 사업 내용과 일본 정부의 10억엔 출연 시점 등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재단의 차질없는 사업 시행을 위한 협의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일본 외무성 당국자도 “생각보다 깊이 있는 의견을 교환했다. 일정한 진전이 있었다”며 “일·한 쌍방이 상부에 보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상부에 보고”하기로 했다는 건, 재단 사업 내용과 10억엔 출연 문제와 관련해 ‘국장선의 잠정 합의안’을 마련했다는 얘기다. 여기서 ‘상부’란 양국 정상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당국자는 ‘상부란 외교부 장관을 뜻하나, 더 위(정상)를 말하나’라는 질문에, “말 그대로 상부”라고 답했다.
하지만 10억엔 출연 시점과 재단 사업 내용을 둘러싼 한·일 양쪽의 이견이 완전히 해소된 것 같지는 않다. 첫째, 10억엔 출연 시점과 관련해 외교부 당국자는 ‘출연 시점이 정해졌냐’는 질문에 “상당한 진전이라는 표현에 그 문제도 들어간다”고 답했다. 하지만 일본 외무성 당국자는 같은 질문에 “(10억엔) 거출 문제도 논의했지만, 타이밍 등은 미정”이라고 말했다.
둘째, 재단 사업과 관련해 외교부 당국자는 “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재단 사업 방향과 관련해 양쪽 생각의 방향에 큰 차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일본 외무성 당국자는 “일정한 진전은 있었지만 최종 판단은 상부에서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10억엔의 법적 성격을 두고는 양쪽이 기존 공식 견해를 재확인하며 평행선을 그은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당국자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배상 문제는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고 말했다. 반면 일본 외무성 당국자는 “(식민 지배에 따른 배·보상 문제는 청구권협정으로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일-한 청구권협정의 우리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셋째, 12·28 합의의 아킬레스건인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문제도 변수다. 외교부 당국자는 “소녀상 문제에 대한 일본 쪽의 기본 입장 설명이 있었고 우리도 우리 기본 입장을 설명했다”며 “주된 논점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일본 외무성 당국자는 “소녀상은 (12·28) 합의(발표문)가 전부이지만, 한국 쪽의 노력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다”고 말했다. ‘한국 쪽의 노력’이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 지켜볼 대목이다.
한·일 양국은 이달 중 일본 도쿄에서 열릴 예정인 한·중·일 3국 외교장관회의 계기에 이뤄질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의 양자 회담 때 10억엔 출연 문제 등을 최종 조율·확정하리라 예상된다. 이에 앞서 추가 실무협의 가능성도 있다.
한편 이날 국장급 협의에서 일본 쪽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독도 방문(7월25일)에 대해 ‘항의’했으나, “독도는 우리 영토이므로 일본의 반응 자체가 적절치 않다며 유감을 표했다”고 외교부 당국자가 전했다.
이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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