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전 위안부 분들의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을 설립하고, 이에 일본 정부 예산으로 자금을 일괄 거출하고 (중략) 대략 10억엔 정도를 상정하고 있음.”
지난해 12월28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공동기자회견에 나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이렇게 말했다. 한·일 정부가 ‘재단’과 ‘10억엔’을 위안부 문제를 풀 ‘열쇠’로 공표한 순간이다. 당사자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비롯한 시민사회의 반발에도 박근혜 정부는 7월28일, 10억엔으로 피해자를 지원하겠다며 ‘화해·치유재단’(이사장 김태현)을 출범시켰다.
재단이 지금까지 진행한 유일한 사업은 ‘개별 피해자 지원’뿐이다. 12·28 합의 당시 생존 피해자 할머니 46명한테는 1억원씩, 사망 피해자 유족 등에게는 2천만원씩 현금으로 지급하는 사업이다. 재단은 23일까지 수령 의사를 밝힌 34명의 생존 피해자 가운데 29명한테 1억원씩 지급을 마쳤고 추가로 2명에게도 연내에 지급을 완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재단은 내년부터는 12·28 합의 전에 숨진 피해자(199명) 유족의 신청을 받아 지원할 계획이다. 하지만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27일 “추모사업과 명예 회복 등 상징적 사업과 관련해선 아직 정해진 게 없다”고 말했다.
재단은 출범 전부터 지금껏 ‘정당성 논란’에 휘말려 있다. 재단이 현금 지원을 시작한 10월14일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는 기자회견을 열어 “위로금을 받고 우리를 팔아먹은 것”이라고 반발했다. 앞서 8월에는 김 할머니와 강일출 할머니 등 피해자 12명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각 1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이행 조치”라며 정부와 재단이 ‘할머니들의 지지’를 자랑한 것과는 간극이 크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23일 “돈으로 피해자를 우롱하는 사기극”이라고 비판했다.
논란의 중심에는 재단이 일본 정부한테서 받은 10억엔이 ‘법적 배상금은 아니다’라는 일본 정부의 확고한 방침이 있다. 김태현 재단 이사장은 9월 외교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나와 “배상금적 성격을 띤 치유금”이라고 말해 빈축을 샀다. 그나마 재단의 현금 지원이 할머니들한테 실질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10명의 피해 할머니들이 거주하는 ‘나눔의 집’의 안신권 소장은 할머니들한테 입금된 돈이 곧바로 가족 통장으로 빠져나가는 사례가 빈번하다고 말했다.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무효화와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전국행동’은 27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화해치유재단 해체”를 촉구했다.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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