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현재 정권교체의 과도기이고, 미국은 얼마 전 도널드 트럼프 새 행정부가 들어섰다. 한반도 정세가 전환기이다. 향후 ‘북핵 문제’ 등 한반도 정세의 핵심 이슈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북·중 관계 전문가인 존 델러리(?사진♣?])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북핵 문제 진전은 미국이 직접 북한을 상대할 때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역할론’에 대해선 “미국에 이스라엘의 핵 포기를 이끌어내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고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델러리 교수는 23일 연구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한 뒤 27일 추가 이메일 인터뷰를 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계속 “모든 옵션을 고려 중”이라며 ‘군사적 선택지’를 배제하지 않고 있다.
“(대북) 정책 리뷰가 군사적 옵션으로 결론 날 것이라는 우려는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미 국무장관) 렉스 틸러슨의 지난 순방 발언을 봐도 정말 ‘선제 타격’으로 향하고 있다는 신호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정책 리뷰를 하는 정부·국가안보실 관계자들이 (이 상황을) 제대로 계산할 수 있는 냉철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북한의 핵을 없앨 방법은 없다. (타격 시) 북한은 보복할 것이다. 그럼 우린 북한과 전쟁을 할 것인가?”
-트럼프 행정부에서 선제타격의 가능성이 커졌다고 보는 시각이 많은데.
“그것은 트럼프 출범 이전에 시작된 것으로 전직 군 관료 등 전문가들 사이에서 일종의 방향 전환이 있었다. 선제타격 관련 논의들이 외각에서 주류를 향해 슬금슬금 오고 있었다. 트럼프 일각에서는 ‘어쩌면 타격 외에 다른 방법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 바깥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일반화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물론 그에 대한 반론도 있다. (선제타격 등이) 결코 주류, 합의된 의견은 아니지만 논의에 들어온 것이다. 한국에서 ‘핵무장’ 논의와 비슷하다. 2010년 내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핵무장설’은 정몽준 전 의원 등 소수의 생각에 불과했다. 그러나 현재는 소수만의 입장은 아니게 됐다.
그러나 우리는 선제타격이라는 말조차 꺼내지 말아야 한다. 선제타격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이 치밀한 계획 공격을 할 것이냐 아니면 갑자기 우발적인 전쟁을 일으킬 것이냐로 구별하는 게 더 정확하다고 본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건 후자다. 여기(한반도)에서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갑자기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부터 새 (한국) 대통령이 들어서기 전까지 남북한 교전 등이 벌어질 수도 있다. 난 향후 약 4개월이 이 특히 위험한 시기라고 보다. 북한은 자주 위험을 감수하는 전략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리스크를 감수한다는 건 위험한 일이다. 약체인 북한이 자기 능력 밖의 행동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룻밤 새 (트럼프의) 트윗에서 비롯된 갑작스러운 군사 행동 등을 걱정해야 할 것이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역할론이 황금률처럼 여겨왔지만 작동하지 않았다.
“미국적 관점에서 보면, 미국인들은 정말로 북한을 상대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북한을 상대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인센티브가 없다. 돈이 되는 것도, 표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상징하는 바도 없다. 미국 정치인 입장에서는 득 될 게 없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이 문제가 중국의 문제가 되길 원한다.
또 미국은 60개국과 일종의 군사동맹을 맺고 있다. 반면 중국은 단 한 개의 방위조약을 맺고 있는데 그게 바로 북한이다. 미국적 시각에서는 미국 정부가 1970년대 박정희의 핵 개발을 두 번 막았는데 중국이 북한을 단속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지난 방중 때) ‘신대국관계’를 비롯해 중국식 표현을 써서 도마에 오르고 있다. 그가 말한 건 ‘우리 그레이트 파워가 되자’는 건데 여기엔 일종의 냉소가 묻어있었다고 본다. 예를 들자면 그는 중국에게 ‘그레이트 파워가 되고 싶어했지? 이제 너도 그레이트 파워로 인정해줄게. 그럼 그레이트 파워들처럼 행동해봐. 북한을 막아보란 말이야’고 말한 셈이다.
그러나 반대로 얘기하면 미국에게 ‘사우디아라비아의 인권문제를 해결하고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만들라’고 하는 것과 같다. 똑같은 논리로 (미국을 향해) 반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그레이트 파워’들이 실제로 많은 경우에 ‘리틀 파워’를 움직일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게 바로 중국과 북한 간의 역학관계다.”
-4월에 있을 미-중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도 나온다.
“북한은 미-중 관계에서 (주요) 이슈가 아니다. (북한 문제는) 미-중 관계에 영향을 미치며 미-중의 역학관계의 영향을 받을 뿐이다. 북핵문제에 있어서 진전은 미국이 직접 북한을 상대할 때 이뤄질 것이다. 더 포괄적으로는 남북 관계 개선을 통해 진전이 가능하다. 한·미가 중국을 그만 쳐다보고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본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은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들이 주도적 위치에 있을 때보다 보조적 입장에 섰을 때 훨씬 도울 수 있는 게 많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을 보면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유일한 길은 대화와 협상이라고 적었다.
“트럼프가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큰 기대를 갖고 있었다. 트럼프는 유세 기간 북한에 대해 똑똑한 언급들을 했다. 그러나 지금껏 우리가 확인한 바로는 (협상) 가능성이 그렇게 크지 않다. 최근 (트럼프) 각료들 사이에서 약간의 방향 전환이 있었다.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대사가 “김정은은 비성적이며 대화를 할 이유가 없다”고 했는데, 그가 트럼프 행정부를 대신해 그렇게 말하고 대통령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큰일이다.”
-‘핵 동결’을 시작으로 북한과 협상을 재개하자는 주장도 나오지만 한·미 보수 진영은 이를 옵션으로 고려하지 않는 듯하다.
“최근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 회장이 직설적으로 “(핵) 동결은 현명한 판단”이라고 주장하는 칼럼을 썼다. 깜짝 놀랐다. 그는 보수주의자이며 특히 북한 문제에 대해 붕괴론 등 매파적인 입장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그들이 동결에 반대하는 이유는 북한은 신뢰할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밖에 보수진영이 핵 동결을 반대하는 논리 중 하나는 스테프 해거드 등이 주장하는 ‘모럴 해저드’ 논리다. 아무것도 안 해 북한의 핵 능력만 키울 바에야 동결이 낫지만, 세계를 향해 (핵을 만들고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미국이 이란 핵협상을 진행 중일 때 문제가 됐을 것이다. 이란 핵협상이 타결된 상황에서 (북한) 핵 동결이라는 게 (북핵 문제 해결의 ) 시작점이 될 가능성이 조금 더 생겼다고 본다.”
-박근혜 정부 말의 대북정책은 제재와 압박으로 일관했다. 제재와 압박만으로 북핵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보나?
“결코 그럴 수 없다. 하지만 우선 박근혜의 대북정책을 말할 때 나는 다른 인식을 갖고 있다. 난 그가 이명박과 달랐다고 본다. 선거 기간과 임기 첫 3 년간 그는 전형적인 보수 강경노선과 거리를 뒀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어떤 측면에서 진보진영의 정책을 훔쳐왔다고 할 수 있다. 2015년 8월 북한의 지뢰(도발) 사건 당시에도 그는 (북한과) 대화에 나섰다. 밀도 있는 남북 고위급 회담이 열렸고 공동합의문이 나왔다. 그러다 그가 돌연 3개의 중대 결정을 통해 모든 것을 바꿔놨다. 그 셋은 일본과의 위안부 합의, 개성공단 폐쇄 그리고 사드 배치다. 몇 개월 새 잇따라 내려진 이 결정들은 한국 외교가 처한 상황을 급격하게 바꿔놨다. 이제 한국의 차기 대통령이 그것을 해결해야 한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당연히 제재와 압박 접근으로는 북한 문제의 진전을 볼 수 없다. 아마 엠비 후반기가 가장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그 접근법은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차기 찬국 대통령은 그보다 더 나은 것을 들고나와야 한다. 다만 녹록지 않은 것은 트럼프 행정부도 북한에 충분히 고통을 주면 북한이 항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 막다른 골목으로 향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 정권과 사회의 핵심적인 속성에 대해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드러낸다.
북한은 고통을 감내하는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아마도 그들은 지난 100여년 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통을 겪었다. 그들은 고통이 주어지면 그걸 그냥 감내한다. 마치 복싱선수 같다. 결코 당신을 이길 수 없지만 그들을 쓰러뜨릴 수도 없다.”
-새로 들어설 한국 정부에 북한·북핵 문제와 관련해 조언한다면?
“첫째, 새 정부는 김정일이 아닌 김정은과 상대해야 하므로 전체 대북 전략 자체를 새로 짜야 한다. 김정은은 아버지와 다르다. 김정일은 경제개혁에 대해 늘 불편함을 감추지 못했는데 그건 김대중과 노무현에게 큰 문제였다. 차기 지도자가 김정은이랑 훨씬 관계 회복에 좋은 기회를 지녔다고 본다. ‘병진노선’의 후자(경제발전)에 집중하면 되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기본적 개혁을 단행했고 시장경제를 말살하지 않았으며 기본적으로 (시장경제)를 인정하고 있다. 그가 차기 한국 지도자로부터 약간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정말 병진노선의 후자(경제발전)에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병진노선의) 전자에 대해서는 미국 파트너들과 핵 동결을 받아내기 위해 협력하기 바란다.
또 불쌍한 북녘 동포를 돕는다는 식의 구호에서 벗어나 상호 경제 성장 모델을 이룩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입장의 전환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진보진영이 차기 대통령을 하게 된다면 무턱대고 북한과 일을 도모하기보다는 ‘새로운 스토리’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진보진영은 2007년으로 돌아가는 것을 넘어선 무언가를 반드시 보여줘야 한다. 상황은 바뀌었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빠질 수는 없다. 달라야 한다. 대중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동기’가 필요하다. 젊은 층 세대를 고려해야 한다. 이들에게 가장 각인된 (남북 간의) 사건은 동년배 젊은이들이 죽은 천안함 사건일 수도 있다. 그들의 기반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제안하고 싶은 마지막은 촛불시위로 분출된 에너지를 새 시대 새로운 남북관계를 만드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면 이는 훌륭한 일일 것이다.
한국 시민들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뒤엎었다.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했다는 게 고무적인 것이다. 이 에너지와 건설적인 동력이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분단을 치유하는 작업을 다시 시작해 한반도를 살만한 평화적인 곳으로 만드는 작업에 현재 한국의 엄청난 시민 권력과 에너지를 투영할 수 있기를 바란다.”
-현재 한국은 미-중 사이에 낀 형국이다. 차기 한국 정부의 대외전략 포지셔닝은 어떻게 돼야 할까?
“어느 한쪽의 편을 들기보다는 사안별로 이해득실을 따져 입장을 결정하는 게 좋은 전략이 될 것이다. 한국의 국가적 이익에 깊이 뿌리박힌 원칙적 입장을 고수한다면 미-중 모두 탐탁지 않아도 아마 한국 정부의 입장을 수용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트럼프 행정부에도 조언한다면?
“유일한 군사적 옵션은 전쟁이다. 한반도에서 전면전을 펼칠 생각이 없으면 선제 타격이나 정밀타격 등을 하겠다는 시늉도 하지 말아야 한다. 전쟁을 원한다면 한국 정부와 시민들의 동의를 얻어야 할 것이다. 이에 더해 나는 북한이 전쟁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미국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만일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미국이 일어나게끔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당분간은 북한에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본다. 곧 오바마 행정부가 직면한 똑같은 좌절감에 휩싸일 것이다. 설령 북한을 더 옥죄이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그 결과는 북한의 핵 능력 향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내 두 번째 조언은 최소한 (제재와 압박 정책이) 실패했을 때 실패했다는 것을 인지할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빨리 이 단계를 넘어서야 한다. 그래야 한국의 차기 정권과 새로운 (대북) 접근을 하는데 건설적인 협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새로운 접근은 협상이 될 것이며 힘을 과시하는 게 아니라 긴장을 완화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