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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미-러 동북아 가스시장 격돌…미국에 백기투항하는 한국

등록 2017-04-06 11:17수정 2017-04-06 11:44

트럼프 무역보복 내세워 셰일가스 판매

러시아가 북극해 인근 야말반도에서 2017년 1단계 생산에 들어갈 야말 LNG 시설 및 저장탱크
러시아가 북극해 인근 야말반도에서 2017년 1단계 생산에 들어갈 야말 LNG 시설 및 저장탱크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식물상태에 빠진 무책임한 박근혜 정부 각료들을 압박해 셰일에너지(가스와 오일)를 팔려 한다는 건 이제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너무나 노골적이기 때문이다. 석유·가스 등 에너지 거래는 정치·경제·외교·환경 등 다양한 변수가 조합된 고차방정식이라고 한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을 이끌고 가는 이들에게 이는 ‘더하기 빼기’의 산수에 불과한 듯하다. 대미 무역흑자를 줄이기 위해 우리가 사줘야 하는 물건 정도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는 그냥 자원이 아니다.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거대한 권력이다. 에너지 문제에서 영향력 있는 전문가인 대니얼 여긴은 ‘석유(가스)는 권력과 세계 지배의 동의어’라고 말하고 있다. 굳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2016년 아카데미상 기술부문 6개 분야를 석권한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Mad Max: Fury Road)의 광고 카피는 “자원 획득이 곧 권력이 되는 세상”이라고 말한다.

트럼프의 미 에너지 우선주의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은 화석에너지 전성시대를 예고한다. 미국 우선을 내세운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정책 가운데 하나가 ‘(화석)에너지 우선’이다. 트럼프에게 ‘기후행동계획’(The Climate Action Plan) 등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화석에너지 규제는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유해하기까지 하다. 트럼프는 셰일(가스·오일) 혁명을 통해 일자리를 복원할 것이라면서 7년 동안 300억달러 이상의 임금 인상 효과가 있다는 말로 표를 모았다. “우리는 아직 개발하지 않은 50조달러 규모의 셰일 원유 및 가스를 개발해 이용해야 한다. 우리는 에너지 생산을 통해 벌어들인 소득으로 도로를 건설하고 학교와 다리, 공공 기반시설을 지을 것이다. 또한 깨끗한 석탄을 생산하는 기술 개발에 주력해 너무 오랫동안 침체돼온 미국의 석탄산업을 재건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 셰일가스든 석탄이든 국제시장에 내다 팔아야 한다.

일본에 이어 한국도 셰일가스 구매

일본은 일찌감치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월10일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안보·경제 동맹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소노우라 겐타로 외무성 차관은 “미국이 에너지 수출국이 되려 하고 있다”며 “국제 정세와 에너지 수급 변화에 대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월21~24일 외무성의 ‘에너지·광물자원 관련 재외공관 전략회의’는 미국산 원유 수입 확대를 집중 논의했다.

다음은 한국 차례였다. <월스트리트 저널>(3월15일치)은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3월5~9일 미국 방문 중 윌버 로스 상무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무역 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해 셰일가스 수입을 늘리는 방안을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주 장관은 3월13일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는 세계 2위의 천연가스 수입국”이라며 “중동, 아시아산뿐만 아니라 미국산으로 에너지 수입원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방침 아래 공기업인 가스공사는 올해 6월부터 20년간 연간 280만t의 셰일가스를 도입하기로 했다. 민간기업인 에스케이 이앤에스(SK E&S)가 2019년부터 20년간 220만t을, 지에스 이피에스(GS EPS)가 60만t을 수입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2019년 이후엔 셰일가스를 연간 560만t 들여온다는 것인데, 이 규모를 더 확대할지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경우 그동안 액화천연가스(LNG·엘엔지)는 카타르, 인도네시아, 오만 등에서 들여왔다. 2016년의 경우 수입액은 119억달러다.

수요예측 무시한 마구잡이식 찍어내리기

국내의 엘엔지는 그 비중이 2000년에는 석유, 석탄은 물론 원자력에도 뒤지는 9.8%에 머물렀으나 2015년엔 1차 에너지 공급에서 15.3%를 차지해 석유와 석탄에 이어 세번째로 중요한 에너지원이다. 그러나 최근의 엘엔지 수입 추이를 보면 2013년에 약 4천만t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이래 2014년 3711만t, 2015년 3310만t 선까지 하락해 연간 ?8.5%의 감소세를 보였다. 무엇보다도 이호무 에너지경제연구원 가스정책연구실 실장이 지난 1월 언론에 기고한 글을 보면, 장기적으로도 국내의 천연가스 수요는 크게 늘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2015년 말에 발표된 제12차 장기 천연가스 수급계획도 2029년 천연가스 수요는 3465만t으로서 2014년보다는 200만t 가까이 낮고 2015년보다는 100여만t 높은 수준으로 전망했다. 게다가 당장 이 셰일가스로 운용되는 엘엔지 발전소는 비싼 발전단가로 인해 지난해 가동률이 36%에 그쳤다. 그럼에도 임기를 한달 남짓 남겨둔 이 정부는 수입처 다변화와 대미 무역흑자 축소를 내세워, 그것도 전체 수요의 거의 15%에 해당하는 미국산 셰일가스를 앞으로 20년 동안 수입하겠다는 방침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미국산 석탄 수입도 늘리기로 한 것으로 보도됐다. 최근 산업부는 남동·동서·서부·중부·남부발전 등 5개 한국전력공사 산하 화력발전사들이 올해 미국산 석탄 수입을 늘리도록 방침을 정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발전사 관계자는 “정부 방침에 따라 발전 5사가 ‘미국 석탄 공동구매’를 추진하고 있다”며 “미국산 석탄 가격과 각 사별 필요 규모 등을 파악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석탄 매장량 세계 1위 국가다.

러시아와 미국의 동북아 가스 시장 격돌

동시베리아 석유가스 프로젝트(2013년 현재). 이미지를 누르면 확대됩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극동 시베리아 지역을 ‘아시아의 중동’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해왔다. 에너지의 대부분을 중동에 의존해온 한·중·일 세 나라에 인접한 시베리아가 저렴하고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기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푸틴의 이 야심찬 계획은 이제 현실이 됐다. 동시베리아의 거대 에너지통합공급망 사업은 큰 틀에서 마무리되거나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일본 석유천연가스금속광물자원기구(JOGMEC)가 2015년 작성한 ‘세계 석유·가스 개발 정세를 좌우하는 3국의 동향’ 보고서를 보면, 러시아 석유 수출에서 아시아 지역의 비중은 2012년 20%에서 2014년 30%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수출량 증가는 무엇보다 2012년 개통한 4739㎞의 동시베리아·태평양 송유관(ESPO) 때문이다. 이 송유관의 수송능력은 연간 5800만t이며 러시아는 이를 8000만t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러시아의 주력 수출품은 천연가스다. 엘엔지에서 러시아가 완공했거나 추진 중인 프로젝트는 총 6개다. 이 가운데 가스프롬의 블라디보스토크 엘엔지와 사할린-2, 로스네프트의 사할린-1, 노바테크가 추진해온 야말 엘엔지 등 4개가 동북아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사할린-2의 설비용량 확장과 2017년 이후 2019년까지 3개 트레인을 순차적으로 가동해 본격 생산에 들어가는 야말 엘엔지를 고려하면 5년 내 2200만t의 액화용량이 추가된다. 러시아의 연간 엘엔지 생산 규모는 총 3300만t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 이미지를 누르면 확대됩니다.
미국은 트럼프의 등장과 2차 셰일 붐을 배경으로 10년 안에 엘엔지 3대 수출국이 되려 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2019년 미국의 엘엔지 수출량이 오스트레일리아, 카타르에 이어 2550만t으로 세계 점유율 3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세계 엘엔지 시장은 공급 과잉일 수밖에 없다. 이 가운데 일본, 한국, 중국, 대만을 포함하는 동북아시아 네 나라는 국제 엘엔지 수입의 3분의 2가량을 차지한다. 순위로는 일본이 세계 1위의 엘엔지 수입국이며, 한국은 2위다. 중국은 가스파이프라인의 비중이 크다. 결국 거대 가스(엘엔지 포함) 시장을 놓고 후발 주자로 나선 미국은 러시아와 치열한 시장 쟁탈전을 벌일 수밖에 없다.

모든 에너지 전문가들이 천연가스는 이제 구매자가 주도하는 시장이 될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음에도 박근혜 정부는 무기를 버리고 미국에 백기투항하고 있다. 2011년 이명박 정부 때만 해도 남북은 러시아와 연결되는 한반도가스관 사업을 추진했다. 사드 배치가 중국을 무시한 일방적 조처였다면 이 정부의 미국산 엘엔지 장기도입 물량 방침은 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관계의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에너지 문제는 한반도를 둘러싼 남북관계를 포함해 지정학적 에너지 공간의 재편이라는 큰 흐름을 내다본 국가전략의 관점에서 검토돼야 할 문제다.

강태호 한겨레평화연구소장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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