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을 위해 필리핀을 방문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이 6일 오후(현지시각) 마닐라 시내 한 호텔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만나 양자회담을 하기 전 악수하고 있다. 마닐라/연합뉴스
“(문재인 정부가) 개선되고 있는 양자 관계에 찬물을 끼얹었다.” “유감스럽다.”
제24차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필리핀 마닐라를 방문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6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만나, 지난달 문재인 정부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 가속화 결정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정부는 사드에 대한 양국의 기존의 입장차를 재확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정부의 사드 배치 가속화를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체계(MD) 가담으로 규정하며 사실상 공개적으로 반감을 표출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날 오후 6시부터 마닐라의 콘라드 호텔에서 약 1시간 동안 열린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왕 부장은 지난달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급(ICBM) ‘화성-14’형 발사 뒤 문재인 정부가 경북 성주 기지에 사드 발사대 4기를 추가로 임시배치하기로 한 결정에 유감을 표시하며 “이번 기회를 이용해 어떻게 다음 단계에 대응하고 우리 양자 관계를 개선·회복시킬지에 대해 (강) 장관과 깊이 있게 의견을 나누고자 한다”고 했다. 회담에 앞서 취재진이 보는 가운데 먼저 말문을 연 왕 부장은 말하는 내내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강 장관에게 유감을 표명하기 직전 왕 부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중국 관계를 개선하고 과거 잘못된 행동을 바꾸자는 의사를 보여줬다”며 “(중국을) 배려하는 행동도 보여줬다. 이는 양국 관계의 좋은 시작”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이내 “어쩔 수 없이 반드시 지적해야 하는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의 결정을 꼬집었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왼쪽)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제24차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를 계기로 6일(현지시각) 양자회담을 하기에 앞서 인를 나누고 있다. 마닐라/AP 연합뉴스
이에 강 장관은 “사드 배치 문제와 관련해서 최근의 북한의 추가적인 미사일 도발로 인해 위협이 상당히 고조된 게 사실이고, 이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와 걱정이 깊이 심화된 가운데 대통령이 내린 결정”이라며 “방어적인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강 장관은 또 “양국 관계에 약간의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고 어려움을 자주 소통을 통해 풀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양국 관계의 중요성과 회담의 의미를 강조했다.
왕 부장의 문제 제기는 회담이 끝난 뒤에도 계속됐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왕 부장은 “사드가 아이시비엠(ICBM)을 막을 수 있는가”라고 반문한 뒤 “내 생각에 이 문제에 대한 정답은 매우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에 많은 의문점을 품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한국이 안보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을 이해한다”면서도 “그러나 안보와 관련한 한국의 관심사가 중국의 불안 요소를 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왕 부장은 또 강 장관에게 “만약 한국이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체계에 가담하는 것이 한국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느냐와 한국 시민들이 (그 결정을)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이 진지하게 생각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 배석했던 한 외교부 당국자는 “사드 배치가 엠디 가입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설명했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기자들과 만난 강 장관은 “(사드에 대해 왕 부장은) 기본적인 중국의 입장을 반복했고 우리는 북한의 고도화되는 도발 상황에서 (발사대) 4대를 임시배치하게 된 배경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다”고 말했다. 강 장관과 외교부가 충분한 소통과 설명을 강조했지만 이날도 사드를 둘러싼 한-중의 입장차는 한 치도 좁혀지지 않았다.
마닐라/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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