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길 외교부 동북아시아국장(왼쪽)과 가나스기 겐지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이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일 외교부 국장급 협의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9일 발표할 후속 조처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12·28 합의)가 절차적·내용적 중대한 흠결이 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을 뒷받침하면서도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해 명시적인 합의의 ‘파기’ 또는 ‘재협상’을 피하는 방안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에 사실상 12·28 합의의 ‘흠결’을 수정·보완할 수 있는 ‘진정성 있는 태도’를 촉구함으로써 공을 일본으로 넘기고 시간을 버는 모습이다.
앞서 문 대통령은 12·28 합의 2년을 맞이한 지난달 28일 “지난 합의가 양국 정상의 추인을 거친 정부 간의 공식적 약속이라는 부담”을 언급하면서도,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다시금 분명히 밝힌다”고 말했다. 지난 4일엔 피해자 할머니 8명과 관련 단체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12·28 합의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피해자 중심 해결 원칙에 따른 후속 조처’를 주문받은 강 장관은 지난주부터 피해자 할머니들을 비롯해 관련 단체들과의 면담에 나서고 있다. 김복동 할머니 등 일부 피해자들은 정부에 12·28 합의에 따라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의 해체와 일본 정부가 출연한 10억엔의 반환을 요구했다. 이에 여성가족부는 재단 축소를 검토하는 등 구체적인 후속 조처를 위해 범정부 차원의 검토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강 장관이 7일 김복동 할머니의 병실을 찾아 “돈 문제는 할머니 마음에 들게 잘 처리하겠다”, “우리 정부에 그런 돈이 있다”고 말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정부 안팎에선 10억엔 처리 방안에 대해 여가부 예산으로 보전해 예탁하는 방법 등 다양한 안이 나오고 있으나, 아직 결론을 내리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문 대통령이 “고통스럽고, 피하고 싶은 역사일수록 정면으로 직시해야 한다”고 언급한 점에 비춰, 정부가 ‘구체적인 추가 조처’보다는 진정성 있는 태도를 일본 쪽에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는 이런 정부 입장을 8일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일 외교부 국장급 협의에서 일본 쪽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용길 외교부 동북아시아국장이 티에프 결과 보고서 발표 이후 정부의 후속 조처 추진 동향을 설명하자, 가나스기 겐지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은 “(12·28 합의의) 성실한 이행”을 요구하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강조했다고 외교부는 설명했다.
정부가 직접적으로 12·28 합의의 파기나 재협상 의사를 밝히지 않더라도 합의의 ‘중대한 흠결’을 짚고 화해치유재단 또는 10억엔 처리 문제를 언급하면, 12·28 합의는 사실상 무력화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입장 발표 뒤 양국 관계가 다시 ‘위안부’ 문제를 두고 냉각될 것으로 보이지만, 최근 남북 관계가 급물살을 타고 있어 과거만큼의 치명적인 상황을 피할 가능성도 있다.
남북 고위급 회담을 하루 앞둔 이날 오전 열린 한-일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 협의에서 일본 쪽은 남북 관계 개선 움직임의 정확한 내막을 파악하고 대응책을 모색하는 데 관심을 쏟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껏 대북 강경노선을 유지하며 “북한과 대화할 때가 아니다”라고 문재인 정부를 압박해온 만큼 일본 정부로서도 급박한 정세 변화에 맞춰 대북 정책을 점검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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