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 강원 평창 블리스힐스테이에서 평창겨울올림픽 개막식 참가차 방한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평창/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9일 열린 세번째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2015년 한-일 합의(12·28 합의)를 놓고 정면으로 맞섰다. 북한·북핵 문제 해법을 둘러싼 강조점도 달랐지만, 두 정상은 셔틀외교 복원을 본격화하기로 하는 등 관계 개선에 대한 끈을 놓지는 않았다.
이날 오후 강원도 용평리조트 블리스힐스테이에서 만난 두 정상은 12·28 합의에 대한 논의로 회담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 보고서 발표 뒤 두 정상이 처음으로 만난 자리였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회담 뒤 기자들과 만나 아베 총리가 “위안부 합의는 국가 대 국가의 합의로 정권이 바뀌어도 지켜야 한다는 게 국제 원칙”이라며 “일본은 그 합의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약속을 지켜온 만큼 한국 정부도 약속을 실현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회담에서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의 철거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도통신>은 아베 총리가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은 외교상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이런 요구를 했다고 보도했다.
문 대통령은 이에 “위안부 합의가 해결되지 못했다는 결정은 지난 정부의 합의 이후 위안부 할머니들과 국민들이 합의 내용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응수했다. 김 대변인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는) 정부 간의 주고받기식 협상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며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해서는 “양국 정부가 계속해 함께 노력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과거사와 미래의 실질 협력을 분리 접근하는 ‘투 트랙’ 원칙을 되풀이한 것으로 보인다. 회담에 앞서 “양국이 마음이 통하는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기를 진정으로 바란다”며 “(역사를 직시하면서도)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을 추진하고자 한다”고도 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 역시 예고했던 대로 ‘일본의 입장’을 직접 문 대통령에게 전함으로써 양국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다만 두 정상이 이 부분에 대해 “진솔한 의견을 나눴다”거나 “자유롭게 의견을 나눴다”는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전언에 비춰 보면, 어느 때보다 격론이 오간 것으로 보인다. ‘진솔한 의견’, ‘자유로운 의견’이 개진됐다는 것은 외교가에서 ‘의견 충돌’을 일컫는 전형적인 표현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한-일 관계가 당분간 다시 냉랭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두 정상은 북한·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다른 접근법을 부각했다. 아베 총리는 “북한은 평창올림픽 기간 남북 대화를 하면서도 핵과 미사일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며 “북한의 미소외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북 제재와 압박 기조하에 한-일 및 한-미-일 3국의 대북 공조 강화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반면 문 대통령은 “남북 대화가 비핵화를 흐린다거나 국제 공조를 흩뜨린다는 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며 “남북관계 개선과 대화가 결국 비핵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이런 분위기를 살려나갈 수 있도록 일본도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주요 현안을 놓고 팽팽히 맞서면서도 두 정상은 이날 1시간가량 진행된 회담에서 양국의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에 대한 필요성도 공유한 것으로 보인다. 김 대변인은 “양국 정상은 지난해 양 정상이 합의했던 셔틀외교의 복원을 본격화하기로 했고,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을 이른 시일 내 일본에서 개최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현안이 있을 때 양국 정상이 오가며 정상외교를 펼치는 셔틀외교 복원 문제는 지난해 7월 첫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바 있으나, 그간 진전을 보지 못한 상태다. 아베 총리의 이번 방한이 문 대통령의 일본 방문으로 이어지면 셔틀외교가 복원되는 셈이다. 아베 총리의 방한은 2015년 11월 한-중-일 정상회의 이후 2년3개월 만이다.
김지은 기자,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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