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세웅 주권자전국회의 상임고문이 13일 오전 서울 중구 시민청 태평홀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와 일본 평화헌법 수호를 위한 한일 시민평화회의에서 환영사를 하고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한국의 촛불 시민혁명과 일본의 헌법 9조 수호의 평화운동이 만났다. 3월13일 서울시청 본관 지하 2층 태평홀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와 일본 평화헌법 수호를 위한 한일 시민평화회의’라는 긴 이름의 심포지엄에서다.
13일 한반도 평화와 일본 평화헌법 수호를 위한 한일 시민평화회의에서 인사말을 하는 김영호 전 산자부 장관.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번 회의를 여는 데 숨은 주역인 김영호 전 산업자원부 장관은 한일 간의 평화운동 시민운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심포지엄을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12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사학 스캔들로 크게 흔들리며 사과 성명을 내면서 반아베 총공세가 오늘부터 시작되는데 일본의 양심 평화운동세력을 움직이는 핵심 멤버들 ‘산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다 여기에 와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10년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병합조약은 불법·무효임을 선언하는 1000인 한일시민 공동선언 등 한일 시민연대를 이끌어 왔다.
실제로 이날 회의에는 제3회 리영희상을 수상한 다카다 겐 ‘다함께 행동 실행위’ 공동대표, 도쿄대 교수인 고모리 요이치 ‘9조회’ 사무국장, 또 다른 대표적인 평화인권운동가인 후쿠야마 신고 ‘자치단체노동조합’ 부대표 그리고 오다가와 요시카즈 전국노동조합총연합 의장 등이 직접 나와 아베 정권에 맞서 힘을 결집하고 있는 일본의 평화운동에 대해 주제 발표를 했다.
13일 한반도 평화와 일본 평화헌법 수호를 위한 한일 시민평화회의에서 인사말을 하는 다카다 켄 총결집행동실행위원회 공동대표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한국 쪽에서는 주권자전국회의를 대표해 함세웅 상임고문이 환영사를 했으며, 이삼렬 ‘2017 민주평화포럼’ 상임공동 대표, 안진걸 참여연대 시민위원장,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박석진 ‘열린 군대를 위한 시민연대’ 상임활동가 등이 촛불시민혁명과 평화운동 그리고 한일 평화연대에 대한 발표와 함께 토론을 벌였다.
이번 회의는 마침 문재인 정부의 평화외교가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기에 참가자들은 새로운 기대와 전망을 내놓았다. 김 전 장관은 “아베의 위기 때마다 구원투수가 있었는데 그게 북의 김정은 위원장이었다”며 “한반도의 위기가 심화되면 심화될수록 일본 보수정권의 기반이 강화되는 적대적 상호의존관계가 존재했다면 이제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의 평화를 함께 논의할 수 있는 때가 된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13일 한반도 평화와 일본 평화헌법 수호를 위한 한일 시민평화회의에서 인사말을 하는 정근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장.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도 환영사에서 “(지금 한반도에는) 냉전 3각동맹이 흔들리고 있는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면서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한일 시민운동 세력 간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공동주최기관인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정근식 원장은 인사말에서 “4, 5월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 이어 6월 또는 7월에는 북일 정상회담이 열려서 미완의 한반도 탈냉전이 해소돼 평화로 가는 길을 열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일본의 시민 평화운동이 평화헌법 수호와 아베 퇴진으로 결집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사단법인 국민주권연구원이 주관한 이번 심포지엄은 민족문제연구소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후원했다.
아베의 ‘전쟁법’ 이후 개헌과 맞서는 일본 평화운동의 향방
지난 2월9일 평창 겨울올림픽에 참석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일행과 만난 문재인 대통령. 두 정상은 묘하게도 비슷한 시기 완전히 다른 맥락에서 개헌을 추진하고 있다. 청와대 자료사진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1월1일 연두소감(신년사)을 통해 개헌을 염두에 두고 “새로운 국가 만들기를 향해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자민·공명의 연립 여당은 중의원·참의원에서 개헌 발의가 가능한 3분의 2 의석을 확보하고 있다. 이에 앞서 자민당은 지난해 12월20일 ‘헌법 개정에 관한 논점 정리’를 발표했다. 최근 드러난 아베를 직접 겨냥하는 사학 스캔들 문서 조작으로 차질을 빚을 수도 있지만 이를 바탕으로 3월25일 당대회에서 자민당 안이 결정되면, 헌법심사회에 회부된다. 묘하게도 한국과 일본 양쪽에서 전혀 다른 성격의 개헌이 동시에 추진되고 있는 셈이다.
전국노동조합총연합 의장이자 ‘다함께 행동 실행위원회’의 공동대표인 오다가와 요시카즈는 13일 심포지엄 발표에서 일본 헌법의 역사적 의미를 “한반도 등 아시아 전역에서 2천만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 저지를 목적으로 제정된” 것으로 “국민주권, 기본적 인권의 실현, 영구적 평화주의가 그 기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메이지 유신 150년인 올해를 기념하며 식민지 지배 군국주의로 치달은 일본을 무시한 채 근대 일본의 발전만을 언급하는 아베 정권의 역사인식을 “북한의 폭주를 최대한 이용해 군사대국화를 진행하는 것과 (식민지 지배를 반성하는) 역사의 수정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비판했다. ‘속죄하는 정치로의 회귀’는 일본 평화운동의 과제라고 그는 강조하기도 했다.
개헌의 중대국면을 3천만명 서명운동으로 맞서
고모리 요이치 도교대 교수가 13일 오전 서울 중구 시민청 태평홀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와 일본 평화헌법 수호를 위한 한일 시민평화회의에서 기조연설 `9조회의 행보와 역할, 그리고 전망'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일본의 평화운동 세력에게 이 아베 개헌을 둘러싼 2018년이 중대 국면이 될 것이다. 평화운동은 시민운동과 입헌 야당과의 공동 투쟁을 바탕으로, 전례 없는 시민 공동행동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 결집체가 ‘3천만명 서명’을 목표로 한 ‘아베 9조 개헌 노(NO)! 전국시민행동’의 호소다.
그리고 이 ‘전국시민행동’의 사령탑이라 할 수 있는 연대조직이 ‘전쟁을 허용하지 않는다·9조를 부수지마! 다함께 행동 실행위원회’다. 평화헌법 제9조를 지키는 시민모임인 ‘9조회’도 2004년 창립 이래 처음으로 조직으로서 지난해 여름 이 ‘전국시민행동’에 참여할 것을 결정하고 공동행동에 나섰다. 13일 심포지엄에 참석한 ‘9조회’ 사무국장인 고모리 요이치 도쿄대 교수는 발표에서 이 운동단체의 ‘비문학적인 조직 명칭’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나는 학자로서의 전문 분야가 일본 근대문학인데, 이렇게 비문학적인 조직 이름은 본 적이 없다. 이름 중간에 ‘가운뎃점’과 느낌표가 들어간 것도 일본어로는 이례적이지만, 이 비문학적 명칭 속에 2014년 말에 생긴 항시적이고 지속적인 시민의 공동투쟁 조직의 특성이 새겨져 있다.”
그에 따르면 이런 이상한 형태의 일본어가 생겨난 건 세 가지 다른 단체의 명칭을 하나로 묶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는 ‘전쟁을 허용하지 않는 1000인 위원회’로 일교조와 자치노조 등 ‘연합좌파’와 지식인, 문화인이 함께 만든 조직이다. 그 대표가 후쿠야마 신고 자치단체노동조합 부대표다. 또 하나는 정당으로 일본 공산당이 들어 있는 ‘헌법공동센터’다. 그 대표가 오다가와 요시카즈 전국노동조합총연합 의장이다. 이는 1989년에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가 연합으로 흡수된 이후 분열되어온 일본의 노동조합 운동의 두 조류가 하나로 된 것이라고 고모리 교수는 말했다. 그리고 여러 시민운동단체에서 만든 ‘해석으로 헌법 9조를 부수지마! 실행위원회’가 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 대표가 다카다 겐이다. 이번 한일 시민평화회의에는 이 세 사람이 모두 참석해 한일 평화연대에 대한 일본 쪽의 의지를 보여줬다.
고모리 교수는 이 세 조직이 2015년 전쟁법 반대 공동행동의 주축이 됐고, ‘다함께 행동 실행위원회’와 함께 행동한 ‘엄마 모임’, ‘학자 모임’ 등이 ‘정치단체’로 참석해 ‘시민연합’으로서 ‘아베 9조 개헌 NO! 전국 시민행동’이 결성됐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9조회’가 조직으로서 여기에 참여한 것이다.
‘9조회’는 말 그대로 일본의 양심이라 할 지성인들로부터 시작됐다. 고모리 교수에 따르면 2004년 6월 극작가이자 소설가이기도 한 이노우에 히사시, 철학자이자 일본 문화 연구자인 우메하라 다케시, 노벨 문학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 ‘베트남에 평화를 시민연합’을 조직한 소설가 오다 마코토, 헌법학자 오쿠다이라 야스히로, 전후 일본의 사상계를 견인한 평론가 가토 슈이치, 논픽션 작가 사와치 히사에, 오다 마코토와 함께 베헤이렌(베트남에 평화를 시민연합) 운동을 조직한 철학자 쓰루미 혣스케, 그리고 이 시기 일본군의 성노예가 된 할머니들에게 국가가 제대로 배상을 해야 한다는 운동의 선두에 선 사회운동가로 미키 다케오 총리의 부인이었던 미키 무쓰코 9인이 모였다.
이들 9인의 발기인은 ‘9조회 호소’를 통해 9조의 평화헌법 일본국 헌법을 주권자로서 선택한다는 다짐을 매일 운동으로 지켜나가자고 촉구했다. 이들은 세 명씩 분담하여 전국 주요 도시에서 강연하고 참여를 호소했다. 이 ‘9조회’의 요청은 전국의 지역, 직장, 학교로 들불처럼 번져 ‘9조회’가 만들어졌으며, 1년여 만인 2005년 헌법기념일인 5월3일에는 전국에서 3천개의 ‘9조회’가 결성됐다. 2년 뒤인 2007년 9조회는 그 두배인 6천개로 늘어났다.
고모리 교수는 9조회 사무국이 2010년까지 파악한 9조회가 7258개였으나, 그 이후 늘어나기도 하고 중단된 것도 있어 정확한 규모는 말할 수 없지만 ‘전국 약 7천개 9조회’라는 말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전쟁법’이 촉발한 일본 평화운동의 승리를 향한 전환
일본시민운동을 평가하는 발표를 한 후쿠야마 신고 일본자치단체노동조합 부대표.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일본의 평화운동 세력은 아베 정부가 추진한 집단자위권 행사를 허용하는 내용의 안보 관련 법 제·개정(안보법)을 ‘전쟁법’이라 부른다. 아베 정부는 2015년 9월19일 새벽 국회에서 이를 강행 통과시켰다.
일본 자치단체노동조합 부대표이자 ‘아베 개헌 NO! 전국시민행동’ 실행위원회 공동대표인 후쿠야마 신고는 이날 발표에서 “그러나 이 전쟁법은 (역설적으로) 아베의 자민·공명당 정권에 대항해 일본의 운동세력들에게 평화·민주주의 확립에서 분명한 희망과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일본의 평화운동은 이를 계기로 한 단계 높은 과제를 추구하게 됐고, 운동의 양상 또한 크게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노동운동, 헌법 옹호 운동, 반전·반기지 투쟁, 탈원자력발전소 운동, 원폭·수폭 금지 운동 등 평화운동, 시민운동 등 일본의 주요 운동은 치열하게 전개됐으나 전부 분열되어 있었다. 이는 운동 전체를 약화시켜 역대 자민당 정권, 현재의 자민·공명 정권에 대항하는 시민의 힘을 결정적으로 약화시켜 왔다. 그러나 2014년 하반기부터 2015년 9월 이른바 전쟁법의 성립은 이를 폐기하는 운동을 결집시킴으로써 1960년의 미-일 안보조약 반대 운동에 육박하는 큰 투쟁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후쿠야마 공동대표는 이는 “분열을 지속해온 일본의 전후 평화 민주주의 운동 진영에 첫 경험이었으며, 획기적인 사건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의 시민 평화운동이 “저항투쟁형 싸움 방식에서 승리를 향하는 방식의 운동으로 전환한다는 새로운 문제의식에 기반해 재출발”을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2015년 8월30일 평화헌법 수호 및 전쟁법안 반대 시위 전단지와, 국회를 포위하는 일본의 평화운동 시위대와 아베 총리 지지자들(위)의 모습. 출처: 흥사단 자료
실제로 다함께 행동 실행위는 2015년, 그전까지는 민주당계와 사민·공산당 계열로 분열 개최된 5월3일의 헌법집회를 통일시켜 크게 성공시켰다. 그리고 아베 내각이 집단자위권 용인 등의 안보법제(전쟁법) 발의를 결정하자 5월14일엔 다함께 행동 실행위가 역사적인 대규모 국회 포위운동을 전개했다. 고모리 교수도 이를 지난 1960년 안보투쟁보다 더욱 발전한 운동으로 평가했다. 도쿄 중앙의 국회 앞 행동에 호응해 전국에서 말 그대로 자발적으로 시민들이 나서는 ‘총결집(다함께) 행동’이 전개됐기 때문이다. 주요 도시의 역전은 물론이고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모든 장소에서 전쟁법인 안보법제에 반대하는 집회 홍보 행동, 스탠딩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거리 행동이 벌어졌다.
일본 평화운동은 지금 ‘아베 9조 개헌 NO! 전국시민행동’의 호소에 3천만명의 서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고모리 교수는 “3천만명은 유권자 셋 가운데 하나로 과거 이 정도의 목표를 내건 운동은 없었다”며 ‘사상 유례가 없는 운동’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일 간의 평화연대를 다짐하며 이날 발표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한국의 정권 교체 운동에서 우리도 제대로 배우면서 아베 정권 헌법 개악을 저지하고 평화헌법 9조를 가진 일본 정부야말로 한반도 평화와 동아시아 평화 체제를 만드는 데 책임이 있음을 명확히 하고 싶다.”
후쿠야마 부대표는 아예 발표 서두에서 이렇게 말했다. “2017년 한국의 박근혜 퇴진 운동은 저희들 일본에서 평화 민주주의 운동을 해온 입장에서는 동경의 대상이었고 저런 투쟁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강태호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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