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부임한 주한 영국대사 사이먼 스미스. 주한영국대사관 제공
염상섭의 장편소설 ‘삼대’를 탐독하고,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사랑하는 영국인이 서울 종로구 정동의 대사관저에 짐을 풀었다. 지난 6일 취임한 32년차 직업 외교관, 사이먼 스미스 신임 주한 영국대사 이야기다.
“안녕하십니까. 2주 전에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지난해) 6개월 동안 서울에서 한국말 공부를 계속 했습니다.” 스미스 대사는 21일 주한영국대사관저에서 취임 뒤 첫 기자간담회를 열어 우리말로 이렇게 말했다. 그는 “30여년 동안 외교관으로 일하면서 여러 외국어를 공부할 기회가 있었지만, 한국어가 가장 어렵더라”라는 말도 덧붙였다. 자신의 경력과 소감, 한국말 배우기의 어려움을 우리말 열 문장에 담았다.
공직생활은 1981년 영국 고용노동부에서 시작했다. 1986년부터 현재까지는 32년째 줄곧 외무부에서 일하고 있다.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한 그는 모국어인 영어를 비롯해 독일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일본어, 우크라이나어에 이어 이제 한국어까지 7개 국어를 말할 줄 안다. 언어학 전공자답게 일본, 러시아(구소련), 오스트리아, 우크라이나 등 파견국가에 갈때마다 어학연수를 하며 언어를 배웠다.
“대사, 외교관으로서 한 나라의 수도에 머물 수 있는 것은 행운이다. 런던부터 도쿄, 모스코, 빈, 키예프, 서울 등을 다녔다. 하지만 수도가 그 나라를 대변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미스 대사가 외교관으로서 한 나라를 이해하는 방법은 말 배우기뿐만이 아니다. 다양한 지역을 돌아다녀봐야 그 나라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실제로 스미스 대사는 지난해 반년동안 한국에서 어학연수를 하는 동안 부산, 대구, 울산, 강원도, 태안반도 등 많은 지역을 다녔다. 특히 해인사에서 팔만대장경을 본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소개했다. 대사를 지내는 기간 동안 짬을 내어 최대한 많은 곳을 돌아다니는 것이 그의 목표 가운데 하나다.
그는 한 나라를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좋은 방법으로 ‘문학작품 읽기’를 꼽는다. 외교관으로서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그 나라의 문학작품을 탐독했다. 그가 7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필살기다. 이날 그는 지난해 대구 경북대에서 한 교수에게 1시간동안 문학 강연을 들었던 일을 소개하며 “20세기 한국 문학작품 제목이 적힌 도서 목록을 받았다”며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한국어 실력을 키우고 싶다. 그 교수에게 가서 숙제를 다 했다고 자랑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이미 인왕산 자락에 있는 윤동주 문학관, 만해 한용운 시인의 고향에도 다녀왔다. 지금은 염상섭의 소설 ‘삼대’를 영어로 읽고 있지만, 한국말로 다시 읽는 게 목표다.
이날 간담회에서 스미스 대사는 한반도가 놓인 동아시아와의 특별한 인연을 소개했다. 1989년부터 1992년까지 주일본 영국대사관에서 1, 2등 서기관을, 1998년에는 주러시아 영국대사관에서 경제·무역 담당 참사관을 지냈다. 2002∼2004년에는 영국 외무성 동북아시아·태평양국에서 심의관으로 일하며 한국뿐 아니라 북한에도 다녀왔다. 1992∼1994년 외무부 안보정책과 핵정책팀장을 지내고, 2007년부터 5년동안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는 국제원자력기구 영국 대표로 근무했다.
한편 그는 이날 간담회에서 최근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올림픽으로 계기를 만들어 낸 한국의 노력을 지지하고, 한국 정부에 존경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어 “(남북 정상회담 등) 이번 기회는 비핵화를 논의할 수 있는 진짜 기회다 영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기도 하고, 핵 안보, 핵 해체 과정에 많은 기술과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진행 과정에서 지원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북핵 문제 해결에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영국도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얘기다. 한-영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 등을 통한 경제 협력, 문화 교류 등을 통한 친선관계 강화도 스미스 대사가 꼭 이루고 싶은 과제다.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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