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존 미어샤이머 미국 시카고대 교수가 강연을 하고 있다. 노지원 기자
“더이상의 ‘최대 압박’ 정책은 안 된다. 미국과 한국의 대북 정책은 바뀌어야 한다.”
국제정치이론 분야의 권위자 존 미어샤이머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23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미국 정부의 대북 정책’을 주제로 열린 특별 세미나에서 이같이 말했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비핵화와 (권위주의에서 자유민주주의로의) 체제 변화라는 두 가지 목표를 핵심으로 한 미국의 대북 정책에는 두 가지 큰 모순이 있다”며 “미국이 북한을 민주화시키려고 하면, 정권 교체 위기를 겪는 북한 입장에서는 오히려 핵을 가지려는 강력한 동기가 생긴다”고 말했다. 체제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이 핵 포기를 선언할 이유가 없고, 미국이 북한의 체제 전환을 목표로 할수록 북한 입장에서는 체제를 지키기 위해 핵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밖에 없는 ‘딜레마’가 발생한다는 얘기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특히 북한에 대한 미국의 ‘최대 압박’ 전략 자체에 모순이 있음을 강조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최대 압박 정책이 오히려 북한에게 반드시 핵무장을 해야하는 명분을 제공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최대 압박 정책에는 군사적 차원, 경제적 차원이 있는데, 군사적 차원의 경우 북한에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는 군사력을 사용할거야’라고 선언하는 것”이라며 “문제는 미국과 한국이 그렇게 할수록 북한에게는 지속적인 핵무기 개발을 해야한다는 강한 동기가 생긴다. 왜냐하면 핵무기를 가지는 게 미국, 한국이 북한의 면전에 주먹을 들이대지 못하게 하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핵을 가진 나라를 공격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 한다”라고 짚었다.
이날 세미나에서 미어샤이머 교수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기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로 북-미 간 ‘신뢰의 부재’ 문제를 들었다. 그는 “만약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명백하게 미국과 한국이 북한의 체제를 위협하지 않겠다는 협상을 했기 때문일 것”이라며 “(이때) 북한은 미국을 믿어야 한다. (북한 입장에서) 미국을 믿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성사시킨 이란 핵협상을 파기하려고 한다. 그런 미국 정부를 미국이 믿을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북-미가 서로 각각 핵 포기와 체제 보장을 교환하는 ‘거래’를 성사시키려면 상호 신뢰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바람직한 대북 정책 방향, 전략에 대해 “미국과 한국의 대북 정책이 아주 크게 바뀌어야 한다. ‘코피 전략’(제한적 대북 예방타격)과 같은 최대 압박 정책은 더이상 안 된다”고 덧붙였다.
5월 중으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서 미어샤이머 교수는 다소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그는 “한국과 미국 모두 정상회담에 기대를 많이 걸고 있다”며 “내가 볼 땐 정상회담이 비핵화와 관련해서 성공적인, 실행 가능한 해결책을 낼 것 같지 않다. 미국은 북한에 핵을 포기하라고 하겠지만, 북한은 하지 않을 것이다. (북-미 간) 거래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비관적 전망을 보이는 이유에 대해서는 “우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둘이서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이라 생각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외교 경험이 없다”며 “김정은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복잡한 문제를 어떻게 협상하는지 알겠는가. 의미있는 해결책을 내는 협상을 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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